기생충 옴니버스 VOL. 2 (2)
본격! 기생충학 전공자가 들려주는 기생충 이야기
기생충 분류의 첫 번째 막을 '원충류'로 열게 되었다. 혹시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생기거나 부족한 맥락이 보인다면 주저 없이 '구글 검색'을 추천한다 (궁금한 것을 댓글로 달아줘도 좋다). 기생충 분류가 내용은 조금 복잡하지만 이것을 알고 기생충을 바라본다면, 재료의 맛을 알고서 음식을 즐기는 것과 같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기생충 분류의 첫 번째, 원충류를 만나러 떠나보자.
"기생 생활을 하는 기생체 가운데 동물성 기생체(animal parasite)를 주로 연구하는 학문을 기생충학이라 한다.
기생충 중에서 단세포 단위 (single cell-like unit)로 된 원생동물인 원충 (protozoa)에 대한 학문을 원충학 (protozoology)이라고 하며...
- 임상기생충학 (채종일 외 11명 저) [1] -
기생충의 분류 중 '원충류'는 이전 편에서 잠깐 다루었듯이 동물계의 기생충 중 단세포성 생물체에 속하는 기생충을 이야기한다. 원충류 (Protozoa)는 "최초의" "원래의"라는 뜻의 접두사인 'Proto-'와 "동물" "유기체"라는 뜻의 접미사인 '-zoa'가 합쳐져 "원시형태의 동물, 최초의 동물"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원충류의 생김새는 '최초의 동물'이라는 이름처럼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구조와 형태의 생물체를 생각하면 쉬운데, '아메바'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 원충 (protozoa, 원생동물) 중에서는 앞으로 다루게 될 기생성 원충류뿐만 아니라 공생 (symbiosis) 그리고 기생을 하지 않고 홀로 자유생활 (free-living)을 할 수 있는 생물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2]. 문헌으로 보고된 바로는, 지금껏 추정되는 모든 원충의 종류는 모두 200,000여 종 이상이 된다고 하며 그중 10,000종 정도 만이 숙주에 기생을 하며 살아가는 기생성 원충류라고 한다 [3].
원충의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를 가장 먼저 손에 꼽으라고 하면, 바로 하나의 세포로만 구성되는 '단세포성 (Unicellularity)'이다. 생명체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구성단위가 작은 '세포 (cell)'인 것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예로, 사람의 경우 보고된 문헌에 따르면 대략 37조 2천만 개 정도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4]) 하지만 원충은 단세포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하나의 세포 안에서 영양물을 섭취하고,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으며 자손을 번식할 수 있다.
다세포생물인 인간은 37조 2천만 개의 세포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조직되어 생명활동을 해 나가는 반면 원충은 단 하나의 세포만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대사 (metabolism)부터 자손을 증식하는 생식 (reproduction)까지 할 수 있다. 이 어찌 경이롭지 않을 수 있는가. 시대가 흐를수록 더 작은 기기에 집적화와 소형화를 시켜나가는 지금 기술의 유행으로 본다면, '아메바 같은 놈'이라는 조롱 섞인 표현은 조금 다르게 정의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기생충 전공자의 시각이다.
원충은 단세포로 이루어진 덕에 크기가 작아 숙주의 체내나 숙주의 세포 안에서 기생하며 살아가기에 용이한 생존전략을 갖고 있다. 주로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영양물을 공급받아 생활하고, 특별한 경우엔 직접 다른 세포를 잡아먹거나 하는 방식으로 영양물을 섭취하기도 한다. 적응할 수 있는 온도와 염도, 산도, 습도 및 삼투압도 다양하여 넓은 범위에 걸쳐 생존할 수 있고 동물뿐 아니라 식물에서 기생하는 원충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6].
또한 모든 세포들이 자신의 유전물질을 복제하여 그 수를 늘리는 '세포분열'을 하듯이, 원충 또한 세포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세포분열을 할 수 있다. 특히 단세포로 이루어진 원충들은 (하나에서 둘로 쪼개지는) 세포분열을 통해 새로운 개체가 형성되고 증식되는데, 이들에겐 분열이 곧 자손을 이어나가는 '생식 (reproduction)'인 셈이다. 원충은 이분법, 내부출아법 (아래 그림)과 같은 여러 가지 분열 방법을 통해 자신을 꼭 닮은 또 다른 개체의 증식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
이때 분열로 만들어지는 개체는 암수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위 분열 방법을 일컬어 성별이 없는(asexual) 생식(reproduction)이라 하여 무성생식 (asexual reproduction)이라 한다. 이밖에도 종류에 따라서는, 사람의 정자와 난자와 같이 암생식세포와 수생식세포를 통해 자손을 번식하는 유성생식 (sexual reproductino)을 하는 원충류도 존재한다. 작지만 할 거 다 하는 원충이다!
원충의 구별되는 특징 중 또 한 가지 재미난 특징은, 종에 따라 존재하는 각양각색의 운동기관이다. 단세포임에도 불구하고, 몇 종의 원충에게서 세포의 특정 부분이 운동성을 가질 수 있도록 변형된 여러 형태의 운동기관이 존재한다 (물론 여기서의 '기관'이란, 당연히 '세포'가 모여 이루는 생물학적 단위의 '기관 (organ)'이 아닌 '구조 (structure)'를 의미한다). 이것들은 원충에게 손과 발이 되어주기도, 때로는 날개가 되어주기도 하며 기생이 용이하도록 돕는다. 한눈에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직접 그린 만화 일러스트를 통해 한 가지 모식도를 만들어 보았다. 그림을 확대하여 살펴보자. (아래 그림)
(맨 왼쪽부터) 먼저 첫 번째 유형의 운동기관은 위족(pseudopodium, 僞足)이다. 처음 보면 '위족'이 무슨 말인지 의아할 수도 있지만, 한자어로 되어있어 글자를 알고 뜻을 풀이하면 오히려 이해가 쉽다. 위(僞, 거짓 위), 족(足, 발 족)이라는 말 그대로 '가짜 발' (僞足)이라는 의미이다.
주로 'OO아메바'라고 명명되는 아메바 군의 기생충에게서 관찰되며, 실제 발이 아닌 일정한 형태 없이 세포가 일시적으로 수축되고 이완되며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형태가 마치 '발'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래 모식도 속 첫 번째 사진에서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것이 바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아메바의 위족이다.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위족의 움직임을 관찰해보자 (글자를 클릭하세요) [8]
두 번째 유형의 운동기관은 편모(flagellum, 鞭毛)이다. 위 모식도의 두 번째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머리카락처럼 돋은 세포의 돌기를 일컬어 편모라고 하는데, 'OO편모충'으로 명명되는 기생충에게서 관찰된다.
편모충이 움직일 때 편모가 마치 채찍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것처럼 복잡하게 움직인다 하여 'jerky movement'라는 단어로도 그 움직임을 표현한다. 굳이 설명하자면 줄넘기 줄을 잡고 위아래, 양 옆으로 진동시킬 때 나타나는 움직임들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운동성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편모의 복잡한 운동이 한데 뒤섞여 어떻게 기생충의 움직임을 만들어낼까.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편모의 움직임을 관찰해보자 (글자를 클릭하세요) [9]
세 번째 유형의 운동기관은 섬모(cilium, 纖毛)이다. 섬(纖, 가늘 섬), 모(毛, 털 모)의 글자 뜻처럼 편모보다는 훨씬 가늘고 짧은 무수한 실 같은 돌기가 움직이며 운동성을 갖는다. 'OO섬모충'으로 명명되는 기생충에게서 관찰된다. 바닥 밑이 촘촘한 섬유로 덮인 로봇청소기가 움직이는 모습을 생각하면 딱 이해가 쉽다. 위 모식도의 세 번째 사진 속 대장섬모충 표면에 뒤덮인 촘촘한 돌기 (화살표)들이 바로 섬모이다.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섬모의 움직임을 관찰해보자 (글자를 클릭하세요) [10]
마지막으로 설명할 운동기관은 파동막(undulating membrane, 波動膜)이다. '물결의 파동'할 때의 바로 그 '파동 (波動)'이다. 이름에서 상상해볼 수 있듯 파동막의 운동은, 헤엄치는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움직이는 모습 (wave-like movement)과 흡사하다.
파동막은 특히 편모를 운동기관으로 갖는 질편모충과 파동편모충류의 기생충에게서 또 다른 (보조) 운동기관으로 존재한다. 파동막의 알려진 역할로는 혈액과 같이 점도가 높은 액체 속에서 원충의 움직임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한다. 위 마지막 사진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것이 파동막이다.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편모와 파동막의 움직임을 관찰해보자 (글자를 클릭하세요[11])
모든 원충들이 위와 같은 운동기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없는 채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원충들도 있다. 또한 앞선 유형의 운동기관들이 기생 원충에게서만 특별히 발견되는 것도 아니다. 세균을 비롯한 다른 단세포 생물들 (원생생물)에서도 위 운동기관의 특징들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당장에 우리 몸속을 외부의 침입 요인으로부터 방어해주는 백혈구도 아메바처럼 위족을 통해 움직이며 침입자를 잡아먹을 수 있다.
하지만 특별한 운동기관이 험난한 기생의 여정을 떠난 몇몇의 원충들에게 말할 수 없이 큰 도움이 되어준다는 사실만큼은, 기생충인 이들에게만 오롯이 해당되는 사실일 것이다.
경이로운 원충의 세계는 2편에 계속됩니다...
참고문헌
1. 채종일 외 11명. (2011). 임상기생충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p.23
2. Hegner, R. W. (1924). Parasitism among the Protozoa. The Scientific Monthly, 19(2), 140-155.
3. Cox, F. E. (2002). Systematics of the parasitic Protozoa. TRENDS in Parasitology, 18(3), 108.
4. Bianconi, E., Piovesan, A., Facchin, F., Beraudi, A., Casadei, R., Frabetti, F., ... & Canaider, S. (2013). An estimation of the number of cells in the human body. Annals of human biology, 40(6), 463-471.
5. Attias, M., Teixeira, D. E., Benchimol, M., Vommaro, R. C., Crepaldi, P. H., & De Souza, W. (2020). The life-cycle of Toxoplasma gondii reviewed using animations. Parasites & Vectors, 13(1), 1-13.
6. 채종일 외 11명. (2011). 임상기생충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p.73
7. Mehlhorn, H. (Ed.). (2001). Encyclopedic reference of parasitology: Biology, structure, function.
영상출처
8. 위족: https://www.youtube.com/watch?v=sbiK8JTjBFU
9. 편모: https://www.youtube.com/watch?v=IKYeaX8q4hQ
10. 섬모: https://www.youtube.com/watch?v=QiVuZq8GS3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