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옴니버스 VOL. 2 (3)
본격! 기생충학 전공자가 들려주는 기생충 이야기
기생충 옴니버스 1편에서 다루었던 '기생충의 생활사'를 기억하는가. 다시 한번 개념을 살펴보면,
기생충 생활사 (Parasite Life cycle)의 의미는 '기생충이 하나의 숙주에서 또 다른 숙주에 도달 (감염)하며 겪는 성장과 발육 그리고 번식에 대한 일련의 과정 또는 순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기생충은 생활사의 단계 단계마다,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다양한 숙주로 이동 및 도달하게 된다. 각 숙주에서 기생충은 (곤충과 같이) 유충기에서 성충기로의 발육과 이행을 보이기도 하고, 외계 환경으로부터 저항성이 강한 모습으로 탈바꿈을 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기생충들은 숙주의 입을 통해 장(腸)에 들어가기도 하고, 피부를 뚫고 숙주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흡혈하는 매개체 (vector)를 통해 숙주의 혈관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1편의 숙주를 알면 생활사가 보인다 - 기생충의 생활사 (클릭) 편에서 지도를 읽기 위해서는 독도법 (讀圖法)을 알아야 하고 기생충의 생활사를 알기 위해서는 숙주 개념 (중간숙주와 종숙주)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혹시 기생충의 생활사 개념에 대해 아직 알고 있지 못하거나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께서는 위 링크를 통해 1편에서 다룬 생활사에 대해 읽고 나서 본편을 읽기를 권한다.
원충류의 생활사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숙주 개념과 더불어 기생충의 발육 단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원충류에겐 다른 분류의 기생충들에게는 없는 독특한 발육 단계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양형 (trophozoite)'과 '포낭 (cyst)'이다.
원충류는 성공적인 생활사를 이어가기 위해 '영양형'과 '포낭'이라는 독특한 발육 단계를 갖는다.
먼저 영양형은 숙주 체내 기생 부위에 기생하면서 능동적으로 운동을 하고 영양물을 흡수하며 증식해나가는 시기이다. 그리고 포낭은 숙주 체외 (외계 환경)로 배출되는 형태로 낭벽 (cyst wall)이라는 강력한 보호막에 둘러싸여 외계의 불리한 환경 속에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는 시기이다 [1].
영양형과 포낭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지구와 인간만큼 이해하기 쉬운 관계도 없다. 아래 모식도를 통해 영양형과 포낭에 대해 알아보자.
지구가 커다란 숙주라고 가정했을 때 우리 인간은 지구에 기생하는 기생충으로 비유할 수 있다. 지구의 풍족한 환경 속에서 인간은 생명활동에 부족함 없는 공급을 누리며 음식을 섭취하고 일을 하며 자손을 늘려나가는 생식활동을 영위한다. 원충류의 영양형이 바로 이와 같은 단계인 것이다. 영양형은 움직임을 통해 숙주 체내의 기생 부위에 도달하고 그곳에서 영양물을 섭취하며 개체의 증식을 이루어나간다. 원충의 발육 단계에 빗대어 보았을 때 우리 인간은 영양형의 상태로 지구에 기생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지구 밖을 나간 인간은 산소와 대기가 부재한 우주 외계 환경 속에서 우주복의 도움 없이 결코 생존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외계에서, 우주복을 입은 인간은 간단한 움직임을 제외한 복잡한 생명활동을 영위해나갈 수 없다. 원충류의 포낭이 꼭 우주 밖 우주인과 같은 단계이다. 낭벽에 둘러싸여 숙주 체외로 배출된 포낭은 숙주에게 섭취되어 다시 감염되기 전까지는 영양형처럼 생명활동을 지속하기 어렵다. 원충의 발육 단계에 빗대어 보았을 때 우주 밖의 우주인은 낭벽에 둘러싸여 외계로 배출된 포낭의 상태와 비슷하다.
포낭을 형성하는 경우는 주로 자손을 증식하는 기생충의 생식 (reproduction), 외계 환경으로부터의 보호, 그리고 다른 숙주로의 전파의 목적을 갖는다. 예를 들어 작은와포자충이라는 원충의 경우 숙주의 장 내에서 유성생식을 통해 포낭 (oocyst)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때 만들어진 포낭은 숙주 내에 감염되는 기생충의 '증식 (생식)'과, 숙주 밖으로 배출되었을 때 외계 환경으로부터의 '보호' 그리고 다른 숙주로의 '전파'에 이르기까지 위 목적을 모두 갖고서 포낭 단계를 거친다.
숙주 체내의 영양형이 포낭으로 발육 단계가 변하게 되는 원인에는 주로 영양물이 부족하거나 건조한 환경, 산소의 과다 또는 부족, 산도의 변화와 같이 외부의 환경 변화에 따른 자극이 주 요인이다. 다시 한번 위의 모식도에 표현되어 있는 지구 안의 인간과 우주 밖의 우주인을 생각하면 이해가 한결 쉽다.
하지만 모든 원충류 기생충들이 이러한 영양형과 포낭의 발육 단계를 둘 다 거치는 것은 아니다. 원충의 생활사는 종류에 따라 영양형만 있는 종류, 영양형과 포낭형을 거치는 종류,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사람의 정자와 난자 같은 암생식자와 수생식자를 통한 유성생식 (sexual reproduction) 단계를 거치는 종류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다. 또한 이들 원충은 각기 다른 발육 단계를 갖고서 다양한 전파 방식을 통해 숙주에게 감염되고 생활사를 유지해나간다.
원충류의 전파 방식은 위의 표처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앞서 배운 영양형과 포낭의 발육 단계를 생각하며 전파 방식에 대해 알아보자.
가장 첫 번째로 직접 전파 (Direct transmission)를 통해 숙주에게 감염되는 원충이다. 이들은 영양형 발육 단계만으로 직접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로 질편모충 이라는 원충이 있다. 질편모충은 성관계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파 (sexual transmission)되는데 여성의 생식기가 기생 부위이며 그곳에서 운동성을 갖고 영양물을 섭취하며 증식해 나간다. 이후 또 다른 숙주로 직접 접촉을 통해 감염되어 생활사를 이어간다.
두 번째로는 대변-구강 전파 (Fecal-oral transmission)를 통해 숙주에게 감염되는 원충이다. 이들은 숙주 체내에서는 영양형으로 발육하고 증식한 뒤 외계 환경으로 배출되면서 포낭형으로 변화한다. 대표적인 기생충으로는 이질아메바가 있다. 이들은 숙주의 장 내에서 영양형 발육 단계로 증식하며 염증을 일으키며 숙주의 분변과 함께 외계로 배출되는데, 이때 외부 환경으로부터 그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포낭으로 변하게 된다. 배출된 포낭은 오염된 식수 또는 채소에 섞여 숙주의 입 속으로 들어가 다시 감염을 통해 생활사를 이어간다.
세 번째로 매개체 전파 (Vector-borne) 경로를 통해 숙주에게 감염되는 원충이 있다. 이들은 숙주 체내와 매개체의 체내에서 각기 다른 영양형들로 발육해나가며 감염환 (infection cycle)을 유지해나간다. 주로 흡혈 곤충이 매개체 (vector)의 역할을 하며, 숙주를 흡혈할 때 기생충이 혈액을 통해 감염되게 된다. 이와 같은 전파 방식을 갖는 대표적인 기생충으로는 열대열원충이 있다. 열대열원충은 모기의 체내에서 발육 단계를 거친 뒤, 사람을 흡혈하는 모기의 입을 통해 사람에게 감염되게 된다. 이후 감염된 숙주 내에서 증식을 거친 열대열원충은, 흡혈하는 모기의 입을 통해 또다시 모기 체내로 감염되고 생활사를 이어나간다.
마지막으로 천적-먹이 전파 (Predator-prey) 경로를 통해 숙주에게 감염되는 원충이 있다. 이들은 먼저 중간숙주에서 독특한 발육 단계의 영양형 상태로 감염을 유지하며 증식해나간다. 이후 중간숙주를 먹이 (피식자)로 삼는 천적에 의해 생활사를 유지해나가는데 그 천적이 종숙주가 되는 경우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톡소포자충 이라는 기생충이 있다. 톡소포자충은 쥐 (중간숙주)의 체내에 감염되어 증식한 뒤, 쥐를 잡아먹은 고양이 (종숙주)의 체내에서 유성생식을 통해 자손을 번식하게 된다. 먹이에서 천적으로 기생충이 전파되며 생활사가 이어지는 것이다.
*특별히 톡소포자충은 두 번째로 설명한 대변-구강 전파경로를 통해 감염되는 특징도 동시에 갖고 있다. 고양이의 분변을 통해 배출된 톡소포자충의 난포낭이 다른 동물의 구강을 통해 감염 및 전파된다.
이렇듯 독특한 발육 단계와 함께 다양한 생활사를 통해 숙주에서 숙주로 생활사를 이어나가는 원충은, 다른 분류의 기생충보다 크기가 작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뿐만 아니라 원충은 바로 위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기가 막힌 전파 방식으로 숙주 체내로 감염되는 변신의 귀재이다.
성공적인 감염을 기가 막힌 방법으로 이어나가는 원충 중에서는 숙주로 하여금 큰 피해를 입히는 악명 높은 기생충들이 많이 속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한 가지를 본 편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열대열원충이 그 주인공이다.
말라리아는 열원충속 (genus Plasmodium)에 속하는 기생원충에 의해 발생하는 기생충성 질병이다. 가장 많은 감염자를 발생시키고 악명 높은 열원충으로는 열대열원충 (Plasmodium falciparum)이 있다. 열원충은 세포 내에 기생하는 단세포성의 기생원충으로써 숙주의 적혈구 내에 기생하여 증식하게 된다. 말라리아는, 적혈구에 감염된 열원충이 증식하고 터져 나오는 것을 반복하며 빈혈을 비롯한 열 발작, 비장 종대와 같은 임상증상을 특징으로 하는 기생충성 질병이다.
열원충은 위의 여러 가지 전파 방식 중 '매개체(모기) 전파 경로'를 통해 사람에게 감염되는 원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38선 부근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크게 유행하지 않아서 그 심각성과 사망률의 무게에 대해 쉽게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았을 때 말라리아는 아직까지도 수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있으며 특정 지역에 따라서는 약제 내성 (Drug resistance)을 일으켜 쉽게 통제되지 않는 심각한 질병이다. 특히 아프리카와 같은 지역의 경우 말라리아의 질환 발생률이 높은 데 반해 제대로 된 방제와 구제는 이루어지기 힘들어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있다.
위 데이터는 COVID Data GitHub저장소에 기록된 2020년 1월 1일부터 5월 24일까지의 실제 전 세계 COVID19 관련 사망자 수 대비 (2017년 데이터 기준) 다른 원인으로 인한 사망자 수 증가를 나타낸 그래프이다 [3]. 위 데이터의 항목엔 암이나 에이즈와 같은 다른 질병들은 함께 표기되지 않았지만, 초록색의 말라리아 사망자 수가 영양실조와 살인으로 인한 사망자수보다 훨씬 더 많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 링크를 클릭하면 집계된 사망자 수 데이터를 애니메이션으로 볼 수 있다 Global Deaths Due to Various Causes and COVID-19 (borrowed and reproduced from Tony Nickonchuk) | Flourish)
최근 WHO에서 보고된 2021 말라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4], 2020년 한 해동안 2억 4천1백만 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되었던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그중 62만 7천 명의 사람이 말라리아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고 보고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3년 경기 북부 휴전선 부근에서 열원충 중 하나인 삼일열원충 (Plasmodium vivax)에 의한 삼일열 말라리아가 재유행한 것이 보고되었으며 최근까지도 매년 발병례가 보고되고 있는 추세이다. [5,6] WHO는 휴전선 이북인 북한에서도 1997년부터 말라리아가 발생하여 2001년엔 약 30만 명 정도가 감염되었을 것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7]. 말라리아는 우리에게서 그리 멀리 있지 않고 국제적으로도 더욱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중요한 원충성 질병이다.
얼핏 들여다보았을 때 원충의 특징은 세균(원핵생물)의 특징과 곰팡이(균류)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균처럼 단세포로 대사 하며 증식 분열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곰팡이처럼 유성생식을 통해 자손을 번식시키는 특징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기생충, 특히 원충의 경우엔 생활사가 정확히 알려진 후에야 그 분류가 확실히 정해지게 된다.
단세포이지만 이편과 저편의 경계에 위치해서 양쪽 모두의 특징을 고루 섭렵하고, 변화무쌍한 발육 단계와 전파 방식을 통해 지금껏 지구 상에서 유구한 세월을 영위해온 원충. 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도 결코 하찮게 만들지 않았음을, 내가 현재 연구하고 있는 원충을 통해 매일같이 느끼게 된다.
기생충의 분류체계 - 원충류 끝
1. 채종일 외 11명. (2011). 임상기생충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p.74-76
2. PARA-SITE (parasite.org.au)
4. World Health Organization. (2021). World malaria report 2021.
5. 채종일 외 11명. (2011). 임상기생충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p.175
6. Chai, J. Y. (1999). Re-emerging Plasmodium vivax malaria in the Republic of Korea. The Korean Journal of Parasitology, 37(3), 129.
7. Han, E. T., Lee, D. H., Park, K. D., Seok, W. S., Kim, Y. S., Tsuboi, T., ... & Chai, J. Y. (2006). Reemerging vivax malaria: changing patterns of annual incidence and control programs in the Republic of Korea. The Korean journal of parasitology, 44(4), 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