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옴니버스 VOL. 2 (4)
본격! 기생충학 전공자가 들려주는 기생충 이야기
원충류의 분류에 이어 연충류에 대해 알아볼 계획이다. 본 내용 중에는 원충류에 대한 정보들이 함께 섞여있으므로, 본편을 읽기 전에 이전 편의 원충류 분류를 먼저 읽고 오기를 추천한다.
(아래 링크 click)
기생충 제국 - 기생충의 분류체계 (3) 원충류 2편 끝
앞서 (동물계의 기생충 중) 단세포성 생물체에 속하는 '원충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다음으로 다세포성 생물체에 속하는 연충류와 절지동물, 그중 연충류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도록 하자.
기생충 중에서 단세포 단위 (single cell-like unit)로 된 원생동물인 원충 (protozoa)에 대한 학문을 원충학 (protozoology)이라고 하며,
조직과 기관이 발달한 후생동물(metazoa)인 연충(helminth)에 대한 학문은 연충학 (helminthology) 또는 윤충학이라 한다 [1].
기생충의 분류 중 '연충류'는 단세포로 된 원충(protozoa)에 비해서 조직과 기관이 발달된 다세포 기생충군을 지칭하며 이들은 모두 후생동물 (metazoa)에 속한다. 그렇다면 먼저 후생동물이란 무엇일까? 아래 간단한 표를 통해 알아보자.
위 표의 두 번째 갈래 (subkingdom, 아계)를 통해 볼 수 있듯이, 후생동물이란 전체 동물계 중에서 단세포로 구성된 원생동물을 제외한 다른 모든 동물을 뜻하는 단어이다 (한 마디로 다세포 동물군!). 전편에서 함께 살펴본 단세포의 원충류가 원생동물에 속하고, 우리가 오늘 알아볼 연충류 (그리고 절지동물까지)는 다세포로 구성된 후생동물에 속하는 기생충군이다.
연충류 (Helminth)라는 단어는 "벌레 (worm)"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Helmins'에서 유래되었다. 지금 바로 "기생충!" 하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혹시 기다란 실 모양을 갖고 있는 하얀 우윳빛의 '꼼지락' 거리는 생물체? 그렇다! 그것이 바로 연충류에 속하는 기생충의 한 종류인 선충이다 (위 그림의 왼쪽 위). 직접 기생충을 보지 못한 이들도 순간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기생충의 모습과 가장 비슷한 생김새를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이들 '연충류'이다. 하지만 연충류에는 선충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함께 속해있다 (위 그림).
연충류는 다양한 분류의 동물군이 모여 함께 구성하고 있는데, 위의 표를 들여다보자. (후생동물에 속하는) 연충류를 구성하는 동물들로는 선형동물, 편형동물, 환형동물, 구두동물, 유선형동물이 있다. 이 중 의학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기생충들은 주로 선형동물 (선충), 편형동물 (흡충, 조충)에 속해 있다. 대부분의 연충류는 인체나 동물 체내에서 기생생활을 하지만, 일부는 숙주가 아닌 자연계에서 자유생활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본 시리즈에서는 숙주 내에 기생하는 기생성 연충류를 위주로 다루도록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전 편에서 다루었던 원충류에 대한 특징들을 한번 복습할 겸 (원충류와) 본 편에서 다룰 연충류와의 차이점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원충류와 연충류를 정확하고 쉽게 구분하기 위해선 먼저, 단세포와 다세포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점들을 위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는 단세포로 구성된 탓에 원충류에는 조직과 기관이 따로 발달하지 않았고, 연충류는 다세포로 구성되어 있어 조직과 기관이 발달해있다. 이로 인해 연충류의 경우엔 종류에 따라 소화관이 발달한 경우 기생충 내부의 소화관으로 영양물을 소화시킬 수도 있고 생식기관이 발달한 경우 교미와 생식활동이 가능하며, 흡착기관이 발달한 경우 빨판처럼 어딘가에 붙을 수도 있다. 연충류의 대표적인 기생충 중 하나인 회충의 경우 소화기관, 생식기관, 감각기관, 운동기관 등 다양한 조직과 기관이 발달해 있다 (아래 그림).
그리고 단세포인 원충류에게는 세포가 분열하여 유충을 형성하는 배아 (embryo) 단계가 따로 존재하지 않지만 (포낭과 영양형만), 다세포인 연충류는 다양한 배아기 (embryo)를 거쳐 유충 (larva)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 연충류는 기생충의 생식을 통해 산란된 알 (충란, egg) 속에서 각 기생충의 유충이 될 배아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 사이즈와 모양이 각양각색이기 때문에 연충류에 속하는 특정 기생충의 감염을 판별하기 위한 좋은 진단지표로 기생충 알의 모양과 크기가 사용되고 있다. 미국 질병관리센터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사람에 감염되는 다양한 연충류 기생충들의 충란 (egg) 모양과 사이즈가 잘 정리된 표를 확인할 수 있다 (아래 표).
이렇게 충란을 통한 산란과 (유충의) 발육 방식을 가진 연충류는, 특히 사람에게 있어서 원충류와 구분되는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는데 바로 인체 내에서의 증식가능 여부의 차이이다 [4]. 간단히 말하면, 다양한 종류의 단세포 원충류는 사람에게 감염된 이후 숙주 내에서 무성생식을 통해 개체를 자가 증식할 수 있는 데에 반해, 대부분 다세포 연충류의 경우 사람 내에서 증식이 불가하고, 사람에게 감염된 이후에도 다른 숙주 혹은 환경에서 발육을 통해 유충이 성충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연충류 중에서도 분선충, 장모세선충 그리고 왜소조충과 같은 종류는 인체 내에서도 다시 감염되어 증식하는 게 가능하지만, 많은 경우 충란 혹은 유충이 외부의 환경과 다른 숙주를 통해 발육을 거쳐야만 재감염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복잡하고 정교한 생활사로 인해서 사람에게 감염이 쉬워 보이지 않는 연충류가, 어떻게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나 감염되어있을 정도[8]로 번성(?)하게 되었을까? 여기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본 편에서는 두 가지 이유만 대표적으로 소개하도록 하겠다.
우선 연충류가 숙주 내에 감염될 경우 숙주의 면역체계를 회피하고 억제하는 전략을 갖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연충류의 감염에 의해 생기는 질환은 다른 감염성 병원체에 비해 발병이 느리고 만성적으로 진행되는데 [9], 특히 연충류가 숙주 내에서 오랫동안 감염되어있을 경우 숙주 내의 면역반응을 저하시키고 회피할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10-11].
쉽게 이야기해서 기생충이 외부에서 숙주 내로 들어온 것을 숙주로 하여금 못 알아채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숙주 내에 별다른 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게 되어, 감염된 사람은 일반적으로 별다른 증상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12]. 이와 같은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연충류 기생충들을 이용한 연구결과들이 아직까지도 활발히 발표되고 있는데, 각 기생충마다 갖고 있는 특정 단백질과 항원들이 숙주의 면역체계를 조절하여 일으키는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런 현상은 연충류에 속한 기생충들에 의해서 자주 나타난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부족한 위생환경과 기반시설을 통한 감염이다. 많은 종류의 연충류가 사람의 장 내에서 기생하기 때문에 주로 분변(대변)을 통해 충란(기생충 알)이 배출됨으로 기생충 생활사가 시작되게 된다. (토양매개성 연충의 경우) 분변으로 배출된 충란은, 그대로 거름으로 밭에 뿌려져 농작물과 함께 섞여 유충으로 발육되고, 이후 음식물을 섭취하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감염되게 된다.
특히 과거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고 화장실, 상하수도 시설 같은 기반시설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손 씻기와 같은 기본적인 위생 활동이 잘 이루어지지 못했다.
때문에 감염된 사람에게서 배출된 분변으로 뿌려진 거름으로 수확한 음식물을, 열악한 위생환경 속에서 그대로 섭취하는 과정에서 감염이 일어났고, 이는 여러 가족이 함께 모여사는 집단생활에서 더욱 가속화되었을 것이다 (위의 광고지면에서 보이는 것처럼 전 국민의 95%가 기생충을 보유하던 1960년 당시의 심각한 상황).
아직까지도 연충류에 의한 감염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엔 위의 이유처럼 위생환경이 열악하고 상하수도와 같은 기반시설이 부족한 나라들이 많다 (아프리카, 동아시아, 인도 등) [13].
이밖에도 기생충에 감염된 생고기 또는 감염된 물고기 등을 날 것으로 섭취하는 경우, 그리고 제대로 된 기생충 약 (구충제)이 공급되지 않아서 감염이 지속되는 경우, 보건 환경 교육의 부재 등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도 연충 감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연충의 감염률이야말로 그 나라의 보건 및 의료 체계의 발달과 위생환경 및 기반시설의 확충과 더불어 감소한다는 사실이다. 과거 감염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준을 유지했던 한국이 (전례 없이) 약 30년에 걸쳐 박멸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나라의 경제 발전과 더불어 보건전문기구의 발족, 외부 국가들의 원조와 더불어 온 국민의 지속적인 교육과 같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14-15].
기생충의 분류 중 연충류는 선충, 흡충, 그리고 조충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특징들을 가진 다양한 기생충들을 한데 엿볼 수 있는 거대한 기생충군이다. 개요만 해도 벌써 1편과 2편으로 나누어 작성해야 하는 작금의 심정이 조금 막막하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비롭고 특별한 이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 준비기간이 조금 길어져도 인내를 갖고 남은 연충류의 연재를 기다려주면 좋겠다.
그럼 [기생충 제국 -기생충의 분류체계 (4) 연충류2-개요2 편]으로 다시 찾아오겠다!
참고문헌 및 각주
[1] 채종일 외 11명. (2011). 임상기생충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p.23
[2] Tortora, G. J., Funke, B. R., & Case, C. L. (2007). Microbiology: an introduction (p. 912). San Francisco: Pearson Benjamin Cummings.
[3] Mehlhorn, H. (Ed.). (2001). Encyclopedic reference of parasitology: Biology, structure, function (pp. 448-453).
[4] Fauci, A. S., Hauser, S. L., & Loscalzo, J. (2018). Harrison's principles of internal medicine (20th edition.) (Chapter 216). New York: McGraw-Hill Education.
[5] Roundworm-Ascaris Lumbricoides - Digestive System of Different Phylum's (weebly.com)
[6] Verma, P. S. (2001). Invertebrate Zoology (Multicolour Edition) (pp. 385-401). S. Chand Publishing.
[7] CDC - DPDx - Diagnostic Procedures - Stool Specimens
[8] McSorley, H. J., & Maizels, R. M. (2012). Helminth infections and host immune regulation. Clinical microbiology reviews, 25(4), 585-608.
[9] https://parasite.org.au/para-site/contents/helminth-intoduction.html
[10] Maizels, R. M., & Yazdanbakhsh, M. (2003). Immune regulation by helminth parasites: cellular and molecular mechanisms. Nature Reviews Immunology, 3(9), 733-744.
[11] Nutman, T. B. (2015). Looking beyond the induction of Th2 responses to explain immunomodulation by helminths. Parasite immunology, 37(6), 304-313.
[12] Figueiredo, C. A., Barreto, M. L., Rodrigues, L. C., Cooper, P. J., Silva, N. B., Amorim, L. D., & Alcantara-Neves, N. M. (2010). Chronic intestinal helminth infections are associated with immune hyporesponsiveness and induction of a regulatory network. Infection and immunity, 78(7), 3160-3167.
[13] Mascarini-Serra, L. (2011). Prevention of soil-transmitted helminth infection. Journal of global infectious diseases, 3(2), 175.
[14] 정준호, 박영진, & 김옥주. (2016). 1960 년대 한국의 회충 감염의 사회사: 사람과 함께 하는 인룡에서 수치스러운 질병으로. 의사학, 25(2), 167-203.
[15] 정준호, & 김옥주. (2018). “모든 것은 기생충에서 시작되었다”: 1960-1980 년대 한일 기생충 협력 사업과 아시아 네트워크. 의사학, 27(1), 4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