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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쥰 Jan 20. 2022

암세포와 정상 세포

암세포와 정상 세포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암'의 모습이 지금 사회와 개인에게 주는 통찰과 깨달음이 정말 많은 것 같다.


암세포와 정상 세포의 차이에는 수만 가지의 것들이 있겠으나,


내가 볼 때 가장 큰 차이는 결국 그 세포 활동의 끝이 개체를 죽음으로 모는지, 생명 활동으로 이끌어가는지의 여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죽음의 시작에 드리운 ‘탐욕’과 ‘욕망’의 그림자를 암세포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암은 빠르게 대사하지만 많은 양분을 효율적으로 소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분을 요구하다가 되려 주변 세포의 양분까지도 독점한다. 사람의 수명처럼 세포에도 시작과 끝이 있는데, 암세포는 제대로 된 세포주기를 돌지 않아 끝이 없는 분열만을 반복해나가며 거대해진다. 그러다가 때로는 주변 조직과의 조화를 깨뜨리는 이상한 조직으로의 분화까지도 일어나게 되면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기관을 돌연 망가뜨리기도 한다. 

결국, 암이 정복되지 못한 조직은 암으로 뒤덮이게 되고,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기관들로 인해 죽음을 초래하게 된다.


반면 정상 세포는 적당한 양분을 효율적으로 소화해낸다. 오히려 과도한 영양분이 섭취될 경우 골치를 먹는다. 정상 세포엔 시작과 끝이 있어서 더 이상 작동을 못 하는 경우 세포는 스스로 사멸하는 길을 택한다. 주변 조직과 조화를 이루는 정상 세포는 비정상적인 신호를 감지하고 외부의 침입 물질에 대항하며 체내 균형을 이루기 위해 항상 민감하게 반응한다. 세포는 각 조직과 기관의 필요에 맞게 작동하고 분화하며 생명 활동을 유지해나간다.


성서 속 야고보서에 아래와 같은 말씀이 등장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5)


위 문장에서 '죄'를, 본래의 작용을 벗어난 '역기능(逆機能)'이라는 단어로 대치하여 다시 살펴보게 되면, 암세포의 일생이 딱 위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탐욕스러운 암세포는 본래 세포의 기능을 잃어버린 역기능적인 구조물이 되어 자기 스스로와 개체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금 내가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세대와 사회 (자본주의 사회로 국한하겠다)의 한 구성원으로 조금씩 발돋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구성원이 되어 그 구조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 사회의 물결은 내 안의 욕망을 점점 더 부채질한다. 나 또한 이것에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본래의 순기능적인 '과학' 그리고 '노동'이라는 이름은 사라진 채 '성공'과 '체면'이라는 이름의 두 글자만 자꾸 새겨질 뿐이다. 때로 '성공'과 '체면'은 '생계'라는 단어로 치환되어 많은 부자연스러운 생각들을 한 번에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정상 세포의 기능을 잃어버린 암세포는 탐욕스럽게 많은 것들을 집어삼키지만 그것이 속한 조직과 기관은 점점 제 기능을 잃어갈 뿐이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를 계속 묻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속을 때가 많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계속 묻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속을 때가 많다.


암세포가 만들어지게 되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큰 원인은 세포에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내외부적인 스트레스(자극)이다. 처음 세포는 내외부적인 스트레스를 감지하고 반응하다가,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자극으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들을 끝끝내 처리하지 못해 마침내 암세포가 된다. 마음도 그와 같을 것이다. 계속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을 다잡으며 무엇이 정상인지를 인지하지 않다가는 금방 탐욕에 젖은 암세포와 같은 마음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으면 속게 되고 속게 되면 결국 속절없이 암세포처럼 변해갈 뿐이다.


암세포의 숙명은 주변 세포들을 망가뜨리고 그 세포가 속한 기관과 개체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다. 암세포와 같은 사람에게 주변 사람들이 살아 숨 쉬며 건강한 교제를 나누고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암세포와 같은 사람은 외롭다. 내 마음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내가 믿는 하나님 앞에서 다시 나를 돌아보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후학들에게 양보하고 내어주며 정상 세포처럼 삶을 마무리하는 선배와 어른들의 모습이 정말 큰 귀감이 된다. 얼마나 많은 몸부림이 있었을까?


우선은 실험과 연구를 하면서 겪는 숱한 '실패'와 더 친해지고 익숙해지고 싶다.


- 2022. 01. 20. 실험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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