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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an 22. 2016

하비누아주의 90년대풍 안부 인사

겨울 하늘처럼 맑은 회상


여자는 묻는다. 독백에 가까워 보인다. 그녀는 기억하는지 궁금하다. 너무 행복했던 지난날의 꿈을. 기억한다면 그리워할 수도 있겠지? 여자는 오래 전의 오늘을 떠올린다. 사랑이 포근하던 그 겨울을. 연인의 겨울은 나쁘지 않다. 서로의 체온으로 서로를 덥혀줄 수 있다면 추위 같은 건 잘 생각나지 않는다.추위는 맑은 하늘을 불러 온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엔 그 하늘이 더 잘 보인다. 여자는 그때를 떠올린다.


이 이야기는 하비누아주가 부른 <혼자만의 겨울> 첫 가사다. 원곡은 1996년에 나왔다. 올해 무한도전 가요제에 나온 윤상 씨가 노래를 만들고 몇 년 전에 라디오스타에 나온 강수지씨가 가사를 붙였다. 중간중간 보이는 도치법은 그때의 흔적이다. ‘너무나 행복했던 지난날들의 수많은 꿈들을 기억할 수 있겠니’를 굳이 ‘기억할 수 있겠니/너무나 행복했던/지난날들의 수많은 꿈들을’라고 바꾼 건 역시 90년대풍이다. 지금 들으면 조금 촌스러울지도 모른다. 여러분들 엄마의 말투처럼.


마음은 촌스러움보다 조금 더 오래 간다. 노래의 후렴구에선 여자의 곁에 눈이 내린다. 여자는 계속 헤어진 연인을 생각한다. ‘너는 지금 어디에서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건지 궁금해’한다. 그러게. 너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때의 추위와 꿈과 눈빛을 나눴던 너는, 지금은 거짓말처럼 안 보이는 너는 어디 있을까. 이런 마음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리 없다.


여자는 의젓하다. 시간이 꽤 지났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있었을 구린 순간이나 날선 미움은 떠올리지 않는다. 더러운 거리에 쌓인 눈처럼 그녀는 조용히 예쁘게 지난 사랑을 덮는다. 네가 행복하다면 괜찮을 거라고 말한다. ‘쌓여가는 하얀 눈을 보며 행복해하고 있다면 너에 대한 아쉬움도 미움까지도 버릴 수 있을’ 거라고. 둘은 성숙한 사랑을 했던 모양이다.


겨울도 눈도 사랑도 영원하지 않다. 영원은 무슨 한 철도 못 간다. 여자는 그 사실도 안다. 이 노래의 2절 가사는 ‘희미해져 있겠지/많은 시간이 지나간 후에는/오늘도 어제처럼’이다. 그러게 말이다. 모든 오늘은 어제처럼 지나간다. 시간은 눈처럼 쌓여 지난 기억을 가린다. 겨울 같은 마음이 녹고나면 또 봄이 오겠지.





앱 매거진 <뷰티톡>에 연재하는 원고를 여기 옮겨 둡니다. 노래 가사를 빌어 말하는 일종의 연애 칼럼입니다. 연애도 여자도 노래도 화장품도 잘 모르는데 이런 일을 하게 됐습니다. 당연히 부족할 겁니다. 어떤 형태의 지적이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브런치에는 연재 시점의 2주 후인 매주 금요일에 원고가 올라갑니다. <뷰티톡>은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 있습니다.


+이 원고는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나왔습니다. 때가 때라 이런 부분을 맨 끝에 붙였습니다.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종교를 넘어 사랑의 명절 비슷한 게 됐다. 하지만 이걸 읽으실 분들 중엔 내일부터 연휴인데 약속도 없이 고기 냄새 나는 만원 지하철 같은 걸 타면서 엄지손가락으로 터치스크린을 만지작거리다 이 페이지까지 온 분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사정은 모르지만 힘 내시길. 무슨 기억이든 희미해질 것이다. 많은 시간이 지나간 후에는, 오늘도 어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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