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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Dec 31. 2015

언젠가의 소녀였던 우리에게

'다시 만난 세계'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



이 글이 나가는 목요일이 12월 31일이란 걸 알기 전까지는 다른 노래 이야기를 하려 했다. 소개하려던 노래도 훌륭했지만 한 해의 마지막 노래 같지는 않았다. 어쩌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골랐다. 내가 이 노래에 대한 글을 만들게 될 줄은 몰랐다.


이 노래는 소녀시대의 2007년 데뷔 싱글이다. 나는 그때 소녀시대에게 감흥이 없었다. TV도 잘 안 보고 아이돌 노래도 잘 안 듣던 때였다. 그때는 외국 노래나 언더그라운드의 노래들, 뭔가 아무튼 덜 알려진 것들을 찾아서 들으려 했다. 그것도 하나의 편견이었단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다. 8년 전이다.


그 동안 내 주변의 모든 게 변했다. 천천히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느렸던 것도 아니었다. 아이돌의 위상이 달라졌다. 이들의 자질을 의심하는 게 우스운 일이 됐다. 세상도 변했다. 2007년만 해도 스마트폰, 강남스타일, 트위터, IS같은 건 없었다. 소녀시대도 변했다. 이제는 이 노래 마지막 부분의 고음부를 쳐주는 제시카가 없다. 무엇보다 내가 변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잡지사에서 일하게 됐다. 원고를 만들고 여러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자주 밤을 샜다. 재미있었지만 늘 즐겁지는 않았다. 나는 곧잘 실수했고 지쳤고 담배를 많이 피웠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아주 피곤할 때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듣고 있었다. 내가 아는 줄도 몰랐던 이 노래를.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근거 없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10대 초반의 아이들이 가능성이 불확실한 성공을 위해 한 곳에 모인다. 안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이들 9명이 ‘이제 너희들이 팀이야’라는 결정 하나 때문에 기계처럼 정밀하게 춤을 추며 노래를 불러야 한다. 얼핏 생각해도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대입, 취업, 잡지 에디터로의 성공 같은 것과는 비교도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소녀시대는 해냈다.


나는 이 노래에 묻어 있는 생명력을 느꼈던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거기서 빛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젊음의 에너지를. 스스로도 모르는 새 이들을 기념비적인 순간으로 인도한 그 기운을. 소녀시대는 결국 크게 성공했다.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내가 겪었던 가장 큰 압력보다 훨씬 센 압력을 견뎌서 결국 아주 멋진 무대를 만들었다. 이 노래에는 그 생기가 묻어 있는 것 같았다.


이름부터 소녀시대인 그룹의 첫 곡이라고 하기엔 이 노래의 가사는 너무 어른스럽다. 곡목부터 ‘다시’ 만난 세계다. 태연 씨는 노래의 처음부터 ‘슬픈 시간이 다 흩어진 후에야’ 하는 이야기임을 알린다. 노래 속 주인공은 슬픔이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이 노래의 후렴구 첫 가사인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를 좋아한다. 사랑할 때의 그 느낌이 영원하지 않음을 아는 사람의 고백 같다. 소녀의 목소리를 빌려 전하는 어른의 이야기같기도 하다. 미래에서 온 어른 여자가 지금의 소녀에게 하는 말 같은.


다시 만난 세계에는 소녀시대가 소녀이던 때의 에너지와 젊음이 밀봉되어 있다. 동시에 이 노래에는 뭔가 끝까지 다녀온 후 뒤돌아보는 어른의 마음도 들어 있다. 이 조화로운 부조화 혹은 부조화스러운 조화가 듣는 사람의 마음에 뭔가를 불러일으킨다. 12월 31일은 그렇게 떠오른 기억을 잠깐 들여다보기 좋은 때다.


그래서 2015년의 끝곡으로 이 노래를 골랐다. 사실 이 글은 편집자에게 채택되지 못했다. 너무 개인적이라는 이유였다. 지금 보니 정말 그렇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올해는 전반적으로 이럴 줄 몰랐던 한 해였기 때문에 정리 삼아 이 글을 올려 둔다.


나는 소녀시대의 노래를 주제로 글을 만들 줄도, 내가 이제는 그렇게 좋아하던 잡지 일을 하지 않을 줄도 몰랐다. 지금도 (적어도 내)삶은 어디로 갈지 대체 모르는 상황에서 나는 올해도 많은 실수와 잘못을 했다. 다행히 담배는 안 피웠네. 그러고 보니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될 줄도 몰랐다. 하지만 모르거나 말거나 시간은 간다.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면 내년이 된다. 내년엔 조금 덜 실수하고 싶다. 물론 생각처럼 잘 되지는 않겠지만.


한해동안 읽어 주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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