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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Dec 26. 2015

좋은 가방

본질, 메시지, 도시의 너절한 상식

좋은 가방의 조건을 생각할 때는 하노이에 있었다. 작은 여행자 거리 2층에 있는 카페의 테라스 자리여서 가방을 메고 가는 도시의 여행자들이 잘 보였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또 왠지 여행자 같고 그래 보일지도 모르지만 제 삶은 멋이나 낭만와는 거리가 멉니다. 얼음 넣은 베트남 커피를 좋다고 마셨다가 하루 꼬박 앓았으니 베트남 여행 가실 30대 초반 독자 여러분은 참고해주시길 바란다. 아무튼 그 사람들의 가방은 동남아시아 여행자 차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눈에 띄게 번들거리고 두꺼운 어깨 패드가 달린 등산 가방.

짐이 많이 실리면서 몸이 덜 고통스러운 게 가방의 본질이라면 저게 좋은 가방이다. 하지만 등산용 나일론 배낭이 세상 모든 곳에서 좋은 가방일 수 있을까. 이를테면 발렉스트라 부티크와 이브닝 드레스 차림의 여자들이 있는 고가품 매장 거리에서도. 그렇다면 좋은 가방이 좋다는 건 무슨 뜻일까.

(하루 앓았으니까)다다음 날 나는 하노이의 메트로폴 호텔에서 시저 샐러드를 먹고 있었다. 자꾸 가방 말고 다른 이야기 해서 죄송한데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 되게 좋다. 하노이가 프랑스 인도차이나 제국의 수도이던 때 생긴 호텔이다. 바에서는 서머셋 모옴이 즐겨 먹던 레시피대로 칵테일을 타 준다. 아무튼 그 호텔 앞 사람들과 여행자 거리 사람들의 차림은 불곰과 북극곰의 털 색처럼 달랐다. 값비싼 거리의 가방은 수납 말고 다른 기능도 있는 것 같았다. 그 기능의 이름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뭔가가 훌륭하면 좋은 가방이라는 건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관점은 열쇠 같아서 꼭 맞던 것이 다른 곳에서는 안 맞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에게 보이기 위해 가방을 고른다는 관점도 말이 될 수 있다. 장소와 상황에 따라 가방은 남의 시선 사이에서 괜한 푸대접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특히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게 매너의 일부인 대도시에서는.

그러니 남자들이 여자 가방을 일러 ‘뭐 그런 가방에 몇백 만원씩 써’라고 하는 말은 틀렸다. 우선 세상에는 그런 가방에 몇백 만원씩 써서 충분한 보람과 황홀한 감각을 맛볼 수 있는 세계가 엄연히 실재한다. 당신이 어떤 관점으로 세상과 가방을 바라보든 말든 그 세계는 그런 관점을 바탕으로 돌아간다. 난 이런 부분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가품 가방의 세계는 생각보다 심오하다.

좋은 가방을 만드는 법은 단순하다. 좋은 기술자가 비싼 소재를 잘 꿰매면 된다. 이야기가 붙으면 더 좋다. 제인 버킨의 너저분한 가방을 보고 버킨 백이 나올 수 있었다든가 하는. 방금 나열한 건 고가 패션 브랜드가 스스로의 물건에 가치를 입히는 가장 흔한 재료와 서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 사는 일이 그렇게 단순할 리 없다.

고가 브랜드의 가방이 팔리는 이유는 그게 좋기 때문만이 아니다. 말하려니까 좀 웃긴데…고가 브랜드는 고가 브랜드이기 때문에 잘만 하면 이상한 걸 만들어도 팔린다(이상한 걸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된다. 영등포 사는 박찬용 씨가 대단한 가방을 만들고 싶어졌다. 막 가죽이랑 장인이랑 다 준비했다. 가방 잘 나왔다. 값은 셀린의 반 수준. 그래도 150만원은 하겠지. 이런 가방 안 팔린다. 나라도 안 산다. 거창하게 말하면 둘의 차이는 정당성이다. 이게 이래서 비싸다는 정당성이 소비자를 납득시킨다면 그 물건은 팔린다. 그게 가방이든 얼마든 뭐든.

도시의 가방에는 무형의 이미지 순위표가 붙는다. 롱샴 위에 코치, 코치 위에 샤넬, 샤넬 위에 에르메스같은 식으로. 그 순위에 끼기 위해 세계의 브랜드는 세계 곳곳에 온갖 광고와 캠페인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가방을 둘러싼 이미지 게임에 빨려들어간다. 모두 유행을 이끄는 동시에 유행 산업에 휘말린다. 누가 뭘 들었는지, 언제 유행했는지, 옛날엔 유행이었는데 지금은 예전만 못한지 등의 요소가 모여 가방의 순위 차트가 만들어진다. 그런 게 현대 도시 생활의 너절한 상식이다.

이 모호한 차트는 실제 가격이라는 현실의 지표로 이어진다. 당신도 'ㅇㅇ가방 가격이 ㅁㅁ면 너무 비싼 거 아니야?'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건 신기한 발상이다. 어차피 다 프랑스산이나 중국산인데도 왜 A와 B 브랜드는 가격이 조금 다른가. 왜 A는 B보다 비싸서 팔리고 B는 A보다 싸서 팔리는가. 당신은 이 질문에 명료하게 답할 수 있는가. 그 답에 누구나 납득할 것 같은가.

어차피 모호한 관점이라면 그걸 갖고 노는 것도 자기 마음이다. 비싼 브랜드 가방을 세상에 알리듯 들고 다녀도 좋다. 동시에 속물적이고 값비싼 취향을 우스워하면서 그냥 에코 백(그런데 이 가방의 무엇이 에코 프렌들리한가?) 같은 걸 들 수도 있다. 형편이 좋지 않아도 어떻게든 손바닥 안에 샤넬을 끼울 수도 있는 거고.

그러므로 도시 생활에 좋은 가방을 가지려면 먼저 그 가방이 어느 상황에 쓰이는지를 떠올려야 할 것 같다. 당신의 직장이 백화점 1층 브랜드 가방을 안 드는 사람과는 점심도 안 먹는 분위기라면 당신도 어쩔 수 없이 고가품을 살 수밖에. 하노이의 뒷골목을 다닐 거라면야 여기서 2만원쯤이면 사는 가짜 노스페이스를 사도 상관없겠지만.

일반론 비슷한 게 있긴 하다. 오래 가는 게 낫다. 대개 브랜드보다는 소재가 오래 간다. 로고는 큰 것보다 작은 것이 오래 가고 작은 것보다 없는 것이 오래 간다. 화려한 것보다 심심한 것이 오래 간다. 다 만드는 곳보다는 가방만 하는 곳이 오래 간다. 새로 뜬 것보다 전부터 있던 것이 오래 간다. 이런 게 좀 비싸긴 하다.

그런데 비싼 게 꼭 나쁜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애초부터 비싼 게 나쁠 이유가 뭐 있겠어. 나쁜 건 비싸고 안 좋은 물건이다. 오래 가는 것이 비싸면 그만큼 오래 쓸 수 있으니까 살 만하다. 가방은 잘 쓰면 꽤 오래 간다. 아무리 써도 10년을 못 쓰는 노트북 컴퓨터 같은 것과는 다르다. 좋은 가방을 둘러싼 세계는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모처럼 하나쯤 사서 오래 쓰는 것도 괜찮다. 단정하고 좋은 물건이 살짝 낡으면 유행에 초연한 느낌이 난다.

나는 크고 튼튼한 가방을 좋아한다. 짐을 안 넣어도 큰 게 좋고 무거워도 큰 게 좋다. 나름의 이유는 있지만 설득력이 강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건이 많이 들어가는 가능성이 좋다. 내 몸집이 작아서 뭔가 큼직한 게 몸에 얹힌 모습이 내 미적 취향과 잘 맞아서 좋다(내게 미적 취향 같은 것이 있다면). 아무튼 그런 기준으로 산 가방은 오랫동안 잘 갖고 다닌다. 내가 만족하는 이유가 있으면 그 이유가 뭐든 어떨까 싶다. 가방뿐 아니라 무슨 물건이든. 내 이유가 확실하다면 남 눈이든 도시 상식이든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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