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찬용 Jun 19. 2017

음악의 책

더 즐겁게 듣기 위해 읽는 책



나는 결코 괴짜가 아니다

브뤼노 몽생종, 모노폴리


글렌 굴드의 인터뷰집이다. 괴짜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제목에서부터 그가 얼마나 괴짜 취급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원곡을 쥐었다 폈다 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유명했다. 동시에 그 연주를 하기 위해 이상한 피아노 의자에 앉거나 거의 늘 장갑을 끼는 걸로도 유명했다. 사소한 재미 요소를 넘어서는 이 책의 진면목은 역시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천재적인 사유다. 그는 음악의 전통과 새로운 기술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지금의 눈으로 봐도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굴렌 굴드의 이야기는 정연한 논리로 흘러가다 깜짝 놀란 토끼처럼 갑자기 예상 못 한 방향으로 튀어 오른다. 자신이 연주한 골드베르크 협주곡처럼. 그 템포에 휘말리면 이 책을 덮기 힘들다.


책과 함께 

역시 골드베르크 변주곡. 1955년 연주.


이 문장 

(재즈 리듬이) 좋기는 하지만 어느 누구도 바흐보다 스윙을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은 다시 장황하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투팍 샤커

티아나 리 맥퀼러, 프레드 존슨, 1984

음악인의 평전을 꼭 읽을 필요는 없다. 다만 음악인의 전기를 읽고 나면 그의 음악이 더 재미있어지는 건 확실하다. 투팍 샤커의 전기는 특히 흥미롭다. 그는 20세기 후반 미국 서부 흑인 문화권의 커트 코베인이었다. 젊고 불안하고 불만에 차 있고 매력적이었으며 세상을 일찍 떠났다. 영웅의 면모를 지닌 이들처럼 투팍 샤커의 삶 역시 모순이었다. 그의 모순은 거친 랩 뒤에 자리한 예민한 시인의 감성이었고, 그 모순이 그를 성공으로 끌어올린 후 비극적으로 깨뜨렸다. <투팍 샤커>의 두 작가는 존경과 사랑과 연민을 담아 소년 샤커가 시대의 아이콘이 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읽다 보면 핫윙이 먹고 싶어진다. 샤커가 좋아한 음식이다.


책과 함께

keep ya head up. 투팍 샤커가 흑인 미혼모를 위로하는 노래.


이 문장

팍은 세상으로 하여금 그의 고향인 거친 길거리를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풍족한 교외의 사람들이 누리는 천국과 같은 부는 그들이 젠체하며 읊는 성서에 등장하는 지옥과 쏙 빼닮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모던 팝 스토리

밥 스탠리, 북라이프

<모던 팝 스토리> 같은 책은 흥미로운 제목과 달리 막상 읽기 시작하면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는다. 팝 음악을 잘 모른다면 이 책 내내 나오는 수많은 노래의 제목을 읽을수록 지루해진다. 하지만 우리에겐 인터넷이라는 축복이 있다. 현대의 음악 창고 유튜브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며 궁금해진 음악은 바로 찾아 들으며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보통 인터넷은 독서의 적으로 묘사되지만 책과 인터넷은 함께할 때 더 즐거워진다. 역으로 <모던 팝 스토리>가 흥미로운 유튜브 검색 가이드가 될 수도 있다. 글자와 소리가 맞물리는 기쁨을 당신도 느껴보길 바란다.


책과 함께

빌 헤일리 앤드 히즈 코메츠의 <Rock Around the Clocks>.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다루는 노래. 


이 문장

만약 음악이 현재 어떤 자리에 있고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당신은 먼저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아야 하는 법이다.


메신저 2045

박용구, 수류산방

음악평론가 고 박용구의 글 중 책에 쓴 서문만을 모아 만든 책이다. 그는 1914년에 태어나 일본에서 공부하며 서양의 고전음악을 접했다. 모국으로 돌아와 중등음악교본에 들어갈 노래를 짜는 등 한국형 서양음악 교육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국은 서양의 것을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한국에 서양 문물이 들어오는 데에는 일본이라는 터미널이 있었다. 박용구처럼 일본에서 공부한 지식인이 서양-일본-한국이라는 굴절된 파이프라인을 깔았다. 그의 서문은 한국이 어떻게 세계와 싱크로를 맞췄는지를 보여주는 지층과도 같다. 출판사는 박용구의 서문과 함께 그 책의 목차도 수록했다. 1세대 음악평론가의 큐레이션과 코멘터리가 함께 들어 있는 셈이다. 모든 예술은 생각보다 훨씬 시대와 바짝 붙어 있다. 그 사실을 안다면 이 책이 굉장히 흥미로울 것이다. 


책과 함께

가곡 '로렐라이'. 이 노래의 한국어 가사를 박용구가 붙였다.


이 문장

어정쩡 뛰어든 음악의 길 - 식민지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었던 절망감과 그로부터의 도피, 거기에 약간은 허영도 있었다. 그러나 극동의 변두리에서 자란 내가 서양의 음악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얼마나 안다는 것이 되는 셈인가.


힙합하다

송명선, 안나푸르나

박용구의 시대를 지나 한국은 아주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서양을 받아들이기 위해 일본이라는 터미널을 거칠 필요도 없어졌다. 힙합은 한국과 미국이 직접 교류하는 시대의 대중음악이다. 작가 송명선은 자신의 박사 학위 프로젝트를 위해 한국의 힙합 아티스트 42명을 인터뷰하고 <힙합하다>라는 책으로 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42명의 등장인물이 어떻게 힙합이라는 문화를 접해 자신의 표현 수단으로 선택했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한반도 각지에 살고 있던 소년, 소녀들이 어떻게 태평양 건너의 대중음악을 받아들였는지 털어놓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흥미롭다. 한국 힙합이라는 걸 알고 싶다면, 지금 들려오는 음악을 누가 왜 만드는지 알고 싶다면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예술은 시대와 바짝 붙어 있으니까.  


책과 함께

가리온의 '옛이야기'. '아무나 갈구려구/나무나 가꾸라구'


이 문장

어느 지인은 이 책에 실린 인터뷰를 ‘아주 개인적인 현대사의 속살’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에스콰이어> 6월호에 실린 원고의 좀 더 긴 버전입니다. 

사진은 표기식이 촬영했습니다. 그의 인스타그램블로그에도 좋은 사진이 많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재와 권력과 우아한 시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