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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Dec 27. 2016

독재와 권력과 우아한 시점

장성택의 길, 올해의 책 


장성택의 길은 이름처럼 장성택에 대한 책이다. 장성택은 김일성의 사위이자 북한 체제의 최고 권력자 중 하나였다. 그는 김씨 세습 3대에 걸쳐 지위를 누리다 김정은 체제가 시작된 지 약 2년만에 아주 잔인한 처형이라는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한국의 뉴스에도 꽤 많이 나왔다. 잔인하게 숙청당한 2인자, 이 정도가 한국 언론이 장성택을 소개했던 방식이다. 


저자 라종일은 장성택이 묘도 없이 사라지고 말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에 대한 기억과 증언은 그 사람의 육신과 함께 없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종일은 장성택의 삶을 재구성한 전기적 소설, 혹은 소설적 전기를 만들었다.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이길래. 


제목처럼 장성택이라는 사람이 삶의 어떤 길을 걸었는지가 책의 큰 줄기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리고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그의 삶이 꼭 그의 뜻은 아니었다. 그는 북한의 권력자라는 스스로의 삶의 길을 어느 정도는 강제로 걸어야 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하기엔 너무 특이했던 그 길은 끝까지 끔찍할 정도로 특이했다.


나는 이 책의 부제를 무척 좋아한다. 신정의 불온한 경계인. 역시 읽어보면 알겠지만 장성택이라는 문제적인 인물의 삶을 표현하는 데 아주 적합한 표현이다. 신정은 왕정도 공화정도 아닌 북한만의 특수한 정치체제를 말한다. 장성택은 김일성의 딸인 김경희의 불꽃 같은 구애 끝에 결혼했다. 나라면 어디 군수 딸만 만나도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은데 장성택은 어쩌다 보니 신정국가에서 신의 사위가 됐다. 권력의 최측근에 있었으니 그는 북한과 외국을 오가는 경계인이 될 수 있었다. 신정의 안팎을 맨눈으로 지켜본 결과 그는 필연적으로 불온해졌다. 이 책은 그렇게 동아시아의 20세기를 살아간 인물의 삶을 담담히 기술한다.


이 책의 담담한 기술은 아주 대단하다. 남한 사람이 북한의 권력자를 담담하게 기술하기는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우선 담담히 기술할 만큼 풍부한 자료를 찾기가 어렵다. 저자 역시 사정상 출처를 밝힐 수 없는 상황이 많다고 썼다. 남한과 북한은 고통스러웠던 과거까지 있다.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 현대사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보통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나타난다. 한국은 제 1 세계 국가와 달리 체제의 폭력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폭력에 많이 노출되지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지도 않았다. 균형 잡힌 시점 자체가 보통 성과가 아니다.


저자의 배경이 이 시점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라종일은 교수와 고급 관료를 거친 작가다. 그는 이 책뿐 아니라 그의 모든 저서에서 일관적으로 한국의 엘리트에게서 보기 힘든 탈미국적 국제감각을 보여준다(그는 영국에서 공부했다). <장성택의 길>역시 탈미국적 국제감각을 가진 동아시아인이라는 균형감각으로 휴전선 건너편에 살았던 장성택이라는 권력자를 바라본 책이다. 


이런 사람이 묘사한 덕에 장성택이라는 사람의 인생은 극적인 입체성을 갖게 된다. 장성택을 악으로 가득한 적국의 수뇌부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신정 앞에서 고뇌한 그의 일면을 깎아낸 설명이다. 그렇다고 그가 못 사는 나라의 불운한 2인자였던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의 삶에서 선이냐 악이냐의 문제는 아프리카의 국경선처럼 곧다기보다는 남해안의 해안선처럼 들쭉날쭉하다. 라종일은 그 사실을 아는 것 같다. 


거기 더해 한국어는 꽤 습득하기 어려운 언어에 속한다. 한국어로 된 자료를 완벽하게 취재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는)한국계 한국인 뿐이다.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진 서양인이 장성택에 대한 책을 쓰려 해도 취재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장성택의 길>은 귀한 역사적 자료이기도 하다. 서두의 말처럼 장성택은 20세기의 동북아시아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특이한 생애를 살다 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존 르 카레의 후기작이 떠올랐다. 존 르 카레는 내내 체제의 필연적인 폭력성에 따른 개인의 극적 사건에 주목한다.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OS를 고르듯 본인의 세계관을 고르고, 그 세계관에 따라 어딘가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며, 격심한 지지나 반대는 필연적으로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 사건들은 대개 개인의 비극으로 끝난다. 체제는 개인을 부품처럼 쓰고 작가는 그 개인을 안타까워하며 바라본다. <장성택의 길>역시 그런 이야기다. 나는 라종일이 동아시아의 존 르 카레라 불릴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얼마나 훌륭한 책인지, 지금 한국에서 이런 책이 나온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장황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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