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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책에 대하여

어떤 남자와 나와 그의 첫 책

by 박찬용


<젠틀맨 코리아>라는 남성 잡지에서 3년 가까이 일했다. 송원석은 <젠틀맨 코리아>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집장으로 나를 3년 가까이 데리고 있었다. 그는 지난달 말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산문집을 냈다. 그는 나만큼 뻔뻔하지 못해 이 좋은 책을 알리는 데에 소극적이다. 존경하는 선배의 도서 판매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별 것 없는 기술을 쥐어짜 보잘것없는 추천의 말을 적어 본다.


나는 송원석에게 디테일과 현장감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는 늘 명확한 디테일과 현장 취재를 강조했다. 늘 온화한 태도였지만 내가 물에 담근 종이처럼 지쳐 있든 말든 일관적이기도 했다. 솔직히 피곤할 때도 있었다. 부끄립지만 그런 티도 몇 번 냈다. 하지만 하지만 송원석 편집장은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떠올릴 수 있을 그 염화미소로 나를 달래는 듯 명령하는 듯 결국 온갖 현장으로 밀어넣었다.


덕분에 나는 평생 친구가 될 좋은 것들을 많이 보았다. 전국의 나무들. 등대와 기상대. 온갖 석탑. 진도의 광어 양식장. 현장에서 열심히 하면 디테일이 보인다. 현장에서 잡아온 디테일은 당장은 몰라도 만드는 사람의 세포같은 곳에 남아서 종이(요즘은 모니터) 반대편에 있는 독자에게까지 전해질지는 묘한 힘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송원석 편집장에게 몸으로 배웠다. 지금의 내가 조금이라도 괜찮은 뭔가를 만들고 있다면 그건 송원석 편집장 덕분이다.


그는 날카로웠지만 수줍어했다. 늘 그랬다. 사람들의 정보 습득 창구가 종이 인쇄물에서 각종 모니터로 바뀌던 언젠가의 회의에서 그가 말했다. "이제 수줍음 많은 사람들은 기자를 하면 안 될 것 같다." 나는 21세기 저널리즘에 대한 이 이상의 통찰을 아직 듣지 못했다.


이런 남자가 쓴 책인 만큼 나는 이 낭만적인 제목의 책을 감성 에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이 책은 한국의 1세대 라이프스타일 저널리스트가 특유의 디테일과 현장감으로 살려낸 일종의 개인적 다큐멘터리다. 자신의 주변을 스쳤던 것들을 소재 삼아 송원석은 지난 일상의 어떤 순간을 사진처럼 묘사한다. 가요 책자. 친구의 이름들. 강동구의 대형 주공아파트. 프로야구단 어린이 회원 기념품. 실제로 그는 사진을 좋아한다.


이런 것들이 모여서 우리 모두가 기억할 수 있을 언젠가가 떠오른다. 읽기 편안하면서도 치밀하게 표현된 송원석의 묘사 덕에 그것들은 읽는 사람의 머리 속에서 스스로 선명한 상을 그린다. 당신도 이 책을 읽다 보면 특장한 순간이 떠오를 것이다. 송원석의 강동구 아파트와 함께 당신이 어릴 때의 어느 순간이 겹쳐질지도 모른다. 작가의 상상과 저자의 상상이 중첩될 때 생기는 공감은 텍스트만이 할 수 있는 아주 멋진 일이다.


나는 이 책이 나온 날 밤 9시 55분에 청계천 영풍문고에서 이 책을 샀다. 종각역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처음 몇 문장을 읽었다. 조금 눈물이 날 것 같기도 했지만 나도 이제 소년이 아닌 만큼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종각역 사거리에서 송원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그는 마침 책거리 중이라고 했다. 그는 조금 취해 있었다. 책 잘 읽고 있다는 나의 말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응 찬용아. 아유 뭐 그런 걸 사. 너 그래도 월급 받으면서 하고 싶은 걸 조금이라도 하고 사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른다. 지금이 네 삶의 화양연화야." 난 그 영화를 안 봤지만 무슨 말인지는 살짝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난 이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많이 팔려서 선예도 좋은 렌즈로 찍은 사진같은 송원석 특유의 글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그의 시선이 여전히 궁금하다.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의견도, 새로 생기는 것을 보며 떠올릴 것들도 듣고 싶다. 뵙고 인사 드린 적은 없으나 공저하신 정명효 편집장께도 축하와 응원의 말씀을 보낸다.


+나를 3년 가까이 데리고 일했다면 이미 보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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