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존경한다
이휘향 씨를 어느 드라마에서 보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휘향 씨에 대한 글 첫 마디가 이 말이라 죄송스럽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1989년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아니면 1994년 <딸부잣집>이나 같은 해의 <종합병원>에서였을까, 2001년 <여인천하>? 2003년 <천국의 계단>? 2004년 <아일랜드>에서였나? 임성한 드라마 전성기였던 2007년의 <아현동 마님>이었나? 2015년 <맨또롱 또똣>? 아, <얼루어>에 보낼 원고 때문에 본 <불어라 미풍아>였나?
이휘향은 1982년 <수사반장>으로 데뷔했다. 그 이후 2017년 2월에 종영한 <불어라 미풍아>까지 출연했다. 그녀가 36년 전부터 지금까지 출연한 드라마는 한국어 위키피디아 이휘향 항목 기준 59편이다. 쉬지 않고 계속 일했는 이야기, 직업인으로의 배우에 충실했다는 이야기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이휘향의 이름을 안다. 출연작까지는 몰라도. 이 자체가 그녀의 카리스마와 성실성을 증명한다.
이휘향의 전성기는 1990년대였다. 그녀는 1990년과 1999년 K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상을 받았다. 카피라이터가 굉장한 기세의 신종 직업이던 시절이다. 90년대를 대표하는 카피는 베스띠벨리였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이휘향은 아름다운 프로의 상징이었다. 90년대에는 이휘향이 시대정신이었다. 당당하고 능력 있는 미녀. 병원의 여의사, 카이스트의 천재 교수.
여배우는 운동선수처럼 필연적으로 시든다. 포지션을 바꿔야 한다. 은퇴도 포지션 변경의 일부다. 이휘향 주변의 여배우들은 포지션을 바꿨다. 예능에 나가거나, 감독을 잘 만나 영화배우가 되거나, 고운 이미지를 남기고 서서히 대중과 멀어지거나. 더 좋은 선택도, 더 나쁜 선택도 없다. 존엄과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한 거라면 어떤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휘향은 어떤 길도 택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연기했다. 2000년대의 이휘향은 독할 정도로 강한 여자였다. 시대가 이휘향을 그렇게밖에 쓰지 못했다. 이휘향은 성실히 뺨을 때리고 소리를 질렀다. 이휘향은 그러고도 소모되지 않았다. 여전히 주요 배역을 연기한다. 여전히 성실하다. 강한 악역이 되어 여전히 극을 끌고 간다. 35년 동안, 59편의 드라마에서, 한결같이.
이휘향이 출연한 모든 드라마가 명작이었다고 할 수는 없다. 무리한 설정과 자극적인 장면만 남아서 다리미질 할 때나 보는 드라마도 많다. 이휘향은 그런 드라마에도 기꺼이 출연했다. 타고난 눈빛과 성실한 연기로 그 장면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이휘향 폭풍 싸대기' 장면이 어느 드라마였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남는 건 양 끝이 유난히 뾰족한 이휘향 씨의 눈과 그 안의 눈동자 뿐이다.
그동안 시간이 지났다. 드라마를 짧은 동영상으로 쪼개서 소비하는 시대가 됐다. 망작은 잠깐 조롱을 당하고 영원히 사라진다. 남은 건 이휘향의 연기뿐이다. 어디서 봤는데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은 이휘향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다시 한번 중얼거린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그러고보니 이 카피도 베스띠벨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세상엔 가끔 이렇게 뭔가를 뛰어넘는 것들이 있다.
<얼루어>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