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찬용 Dec 08. 2017

메르세데스 애니멀스

남자와 차와 취향과 꿈과 사랑과 실패

저  휠이 저렇게 반짝이는 게 어떤 의미인지 오래된 차를 타는 사람들은 안다.


의도한 것 같진 않지만 <녹터널 애니멀스>는 <라라랜드>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캘리포니아가 배경이다. 결과적으로는 헤어진 연인들의 이야기다. 꿈과 사랑 등등의 변수에서 주인공은 뭔가를 고른다. 비슷한 부분은 거기까지다. <라라랜드>가 어떤 선택의 경위에 대한 이야기라면 <녹터널 애니멀스>는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다. 그 차이점에서부터 <녹터널 애니멀스>는 굉장히 차가워지기 시작한다. 


여기저기 깔려 있는 시각적 장치를 빼면 <녹터널 애니멀스>는 평범하고 현실적인 이야기다. 젊은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는 젊은 남자다운 꿈이 있다. 동시에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젊은 남자 특유의 콤플렉스가 있다. 그의 연인 수잔(에이미 애덤스)은 남자의 꿈을 사랑한다. 하지만 어리고 여린 남자의 콤플렉스까지 받아주지는 못한다. 마침 수잔 곁에 안락한 삶을 약속하는 다른 남자가 나타난다. 수잔은 에드워드의 아이를 지우고 새 애인과 결혼한다. 시간이 지난다. 수잔은 삶의 여러 단계를 거쳐 정신적 위기를 맞은 중년이 된다. 돈은 떨어지고 남편은 바람이 나고 딸은 자기 곁에 없다. 그러던 차에 소설가의 꿈을 이룬 옛 연인이 나타난다.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더 불행할까? 누가 더 행복할까? 누가 이기고 누가 졌을까? 어떤 사람들은 여자가 불행하다고 했다. 자기 앞의 모든 걸 다 놓쳐 버리고 옛사랑에게마저 버림받았으니까. 지금 여자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고. 어떤 사람은 남자가 멍청하다고 했다. 옛날 여자를 잊지도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소설이나 쓰다가 다시 만나자고 해 놓고서는 약속 장소에 나가지도 못했으니까. 남자는 아무것도 극복하지 못했다고. 정답은 없다. 관객의 근본적 세계관과 당시의 상황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집어넣었을 뿐이다.


<녹터널 애니멀스>는 패션 필름의 모양을 한 일종의 심리 테스트다. 당신에게는 무엇이 소중한가. 꿈, 사랑, 지금의 안정, 미래의 가능성 중 무엇을 고르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무언가 소중한 걸 갖기 위해 아주 소중한 다른 걸 전부 찢어서 버려야 한다면, 당신은 끝내 무엇을 고를 것인가. 좋은 이야기는 독자나 관객에게 답을 주려 한다. 더 좋은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접한 사람에게 질문을 남긴다. <녹터널 애니멀스>를 올해 가장 인상적인 영화로 꼽은 일반적인 이유다.


그 영화를 보던 당시에 오래된 메르세데스를 하나 갖고 있었다. 한국에 거의 없어서 소중하게 다루던 차였다. 영화 속 낡은 메르세데스가 긁히기 시작할 때 나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애지중지한 낡은 차가 긁히면 정말 생 피부가 갈려나가는 기분이 든다.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토니는 영화 속 소설에서 차를 비롯한 모든 걸 잃는다. 그 이야기를 쓴 에드워드 역시 옛 연인을 못 잊고 자기 고통을 소설로 쓰고 아직도 오래된 메르세데스를 탄다. 원고를 만드는 게 직업(의 일부)이고, 정신적으로 나약하며, 사랑에 실패했고, 오래된 메르세데스를 탄다는 점에서 나는 <녹터널 애니멀스>가 정말 남 이야기같지 않았다. 


운전자 입장에서 <녹터널 애니멀스>에는 안전운전과 자동차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이 담겨 있다. 영화 속 액자 구조 안의 소설에서, 주인공 토니가 굳이 추월을 하려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안 생겼을 것이다. 만약 운전을 하다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토니가 그렇게 오래된 차 말고 신형 BMW 520d 같은 걸 탔다면 엄청나게 빨리 도망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소설 속 토니처럼 되고 싶지도, 영화 속 에드워드처럼 되고 싶지도 않았다. 우유부단하게 꿈만 꾸면서 낡은 차를 애지중지하며 늙어 가고 싶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몇 달 후 나는 메르세데스를 팔았다. 행동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녹터널 애니멀스>는 개인적으로도 인상적인 영화였다.



<얼루어>에 실린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도시의 습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