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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Nov 25. 2017

도시의 습관

좋든 싫든


오래된 영국 차를 탄 적이 있다. 그 차에는 사람들이 떠올리는 영국의 특징이 다 들어 있었다. 우아하고 경쾌하고 소탈하며 개성 있었다. 동시에 안일했고 괴팍했고 불친절했고 뻔뻔했다. 특히 U턴할 때. 큰 차도 아니었는데 회전 반경이 너무 넓었다. 대형 세단이 한 번에 돌아나가는 길도 그 차로는 몇 번씩 전진과 후진을 반복해야 했다. 그 차로 U턴을 할 때마다 중얼거렸다. 멍청한 영국인들.


영국에서 운전을 할 때 깨달았다. 영국에는 U턴 차선 대신 회전교차로만 있었다. 그런 곳에서라면 굳이 회전반경을 좁히려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서머싯 주의 캄캄한 밤에 회전교차로에서 방향을 돌리며 고향의 내 차를 생각했다. 이런 환경이라 그 차가 그랬던 거구나.


모든 지역에는 각자의 생활 방식이 있다. 인터페이스, 혹은 21세기 분위기에 맞춰 오퍼레이팅 시스템(OS)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 OS는 다 비슷하다. 규격봉투에 편지를 넣고 우체국에 가면 국제우편을 부칠 수 있다. 매표소 앞에서 조금만 관찰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써도 iOS에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각자의 생활 환경은 조금씩만 다르다. MS워드와 아래아한글의 단축키 수준으로.


개의 코나 박쥐의 귀만큼은 아니어도 인간의 감각은 예민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단축키 정도의 미세한 차이 앞에서 잠깐 멈춘다. 우편물을 보낼 때 어느 나라는 우표를 쓰고 어느 나라는 창구에서 계산을 한다. 홍콩은 충전한 교통카드를 인식시켜서 대중교통을 탄다. 스위스에서는 티켓을 사서 트램을 탄다. 일본에서는 버스를 탈 때 번호표를 뽑고 내릴 때 그 번호에 맞춰 동전을 낸다. 동전이 없으면 앞에서 버스 기사가 지폐를 동전으로 바꿔준다. 시간이 걸려서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면 머쓱하다. 그 정도의 차이 앞에서 우리는 뭔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먼 곳이나 다른 나라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서울에서 오래 산 내 눈에 부산의 지하철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시끄럽게 들어온다. 처음에는 사고 난 차가 들어오는 줄 알았다. 서울 지하철이 평온한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라면 부산 지하철은 박력 넘치는 '차 옵니데이!!!' 같다. 몇 번 가본 충청북도 어딘가의 기차역 앞에는 늘 택시가 두어 대쯤 있었다. 그 택시 안에 누워 있던 기사님은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역 앞에 붙어 있던 콜택시 번호를 눌렀다. 택시가 연결되자 누워 있던 그 기사님이 일어났다. 그는 목적지까지 가던 내내 한 마디도 없었다. 충청풍 침묵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인간이 환경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환경은 지리나 기후 등의 물리적 환경일 수도, 문화권의 분위기처럼 눈에 안 보일 수도 있다. 그게 뭐든 사람은 환경에 맞춰 삶의 모양을 만들어 나간다. 지금은 거의 모든 도시나 국가가 일정 부분 국제 표준적인 생활 양식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표준 양식 역시 구체적 환경에 맞춰서 수정된다. 그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환경이 만든 인터페이스에 맞춰 자신의 몸과 마음과 매일의 습관을 조금씩 바꾼다.


서울적 일상의 배경 환경도 있다. 여기는 동북아시아의 급조된 첨단 대도시다. 20세기 후반에 엄청나게 면적을 넓혔다. 홍수가 나던 강가 모래톱을 메꿔서 강남이라는 신흥 부촌을 만들었다. 전통이 있다고 자랑하지만 도시 인구의 절대다수가 서울에서 3대도 살지 않은 뜨내기다. 사회에서 가장 비혁신적인 대기업과 관료 조직이 말로만 혁신하자고 하면서 혁신적인 불편을 만든다. 그 결과 버스에서 돈을 보내기 위해 초고속인터넷의 힘을 빌려 스마트폰 은행 앱에 접속한 후 디젤 엔진의 흔들림에 몸을 맞춰 은행 보안카드를 꺼낸다. 진짜와 가짜와 인내와 허세와 우아함과 천박함 등의 모든 요소가 뒤섞여 서울만의 습관적인 일상이 완성된다.


내 도시의 습관도 다른 도시를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 같다. 그 습관은 겨울용 검은 스타킹에 난 구멍처럼 크기는 작아도 눈에 잘 띈다. 올 여름에 일 때문에 간 파리의 버스 기사는 아이폰 4를 아무 불편 없이 쓰고 있었다. 토리노에서 에어비앤비를 빌렸을 때는 60년은 된 듯한 열쇠 뭉치를 받았다. 일본에 도착해 '여기가 일본이구나' 라고 느낄 때는 수많은 사람이 얼굴을 다 덮은 마스크를 쓴 걸 볼 때다. 그런 습관들을 보다 보면 반사적으로 내 도시의 습관이 떠오른다. 내 지갑에 달려 있는 아파트 카드 키. 내가 사는 집과 그녀의 집 비밀번호. 카카오 택시, 푸드플라이, 경복고등학교 근처에 있는 단골 미용실과 나의 단골 인터넷 서점.


서울의 습관이 좋지많은 않다. 부촌이라는 동네의 품위 없는 사람들, 멋 부린 레스토랑의 값비싼 음식과 코웃음나는 접객 태도, 싼 음식도 예쁜 얼굴도 큰 가슴도 착하다고 칭하는 수식어 감각. 이런 걸 보다 보면 도망치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 한 번씩 나가면 좀 환기가 되는 듯도 하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적절한 비례감, 서로의 친절과 노력을 거래하는 자세, 훌륭한 레스토랑의 정중한 서비스, 길거리 식당의 솔직한 조미료 맛, 제대로 만든 옷에 적당히 붙은 마진. 그걸 사 볼까나 하는 마음으로 옷을 입어볼 때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적당한 거리감. 근대 혹은 속물세계의 룰이 지켜지는 현장. 그 현장에 있다는 속물적인 쾌적감.


그럴 때 문자가 온다. 5000원/운전잘하는/기사님대리중/위험~빗길운전 몇잔드셨습니까? <블루 재스민>에서 주인공 재스민은 좋은 남자를 만나 재혼에 성공할 뻔하다 동생의 전남편과 마주치고 모든 꿈이 부서진다. 모국에서 온 문자도 내게 모국을 상기시킨다. 재스민 정도는 아니겠지만.


돌아온 인천공항에서 깨닫는다. 내 몸은 이 도시에 맞춰져 있다. 여권만 대면 바로 나가는 자동출입국 시스템을 거쳐 짐 찾는 곳으로 나간다. 짐을 가지러 가는 길에는 소녀시대가 나온 광고가 붙어 있다. 나는 그들의 팬은 아니지만 그 사진 속 9명 중 누가 탈퇴했는지도 알고 있다. 서울 가는 공항버스를 타려고 따로 표를 살 필요도 없다. 후불제 교통카드를 찍으면 되니까. 나는 그 사실을 몸으로 안다. 여기 사람이니까.


서울의 대중교통망은 세계 수준이다. 지하철과 버스 모두 싸고 빠르고 깨끗하고 고장 안 난다. 영종대교 하부도로를 지나 육지로 돌아가는 리무진 버스의 시트를 눕히며 생각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 도시에 속해 있는 사람이구나. 적어도 여기의 내가 이방인은 아니구나. 그 기분은 내 바이오리듬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인지 어떨 때는 안겨 있는 것 같고 어떨 때는 묶여 있는 것 같다. 나중에 어떤 사정이 생겨서 어떤 도시에 살게 되더라도 내게 이 도시의 습관은 계속 남아 있을 것 같다. 편의점과 순대국밥과 사우나와 퀵서비스가 있는 이 도시만의 기억이.



오디너리 매거진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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