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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Feb 05. 2016

아리아나의 거의 사랑

경영잠언적 러브 송


‘올모스트 이즈 네버 이너프’는 가사가 담백한 노래다. 반면 노래는 열창에 열창이 얹히는 구조다. 누가 얼마나 부족했길래 아리아나 그란데와 네이선 사이크스는 '거의는 절대 충분하지 않아'라고 옆 마을에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높였던 걸까.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낸다. 처음은 너그럽다. '난 우리가 노력했다고 말하고 싶어. 삶을 탓하고 싶기도 해. 어쩌면 우린 그냥 안 맞았던 건지도 몰라.' 이런 말에 속으면 안 된다. 편지의 날씨 소식같은 인사말이다. '그거 다 거짓말이야.'라며 여자는 진짜 하려던 말을 하기 시작한다. 진짜 하려던 말은 뭐였을까.

후렴이 끝나면 남자가 부르는 2절이 시작된다. 화답도 시작은 매끄럽다. '내가 하룻밤만에 세상을 바꾼다면 이별같은 건 없을 텐데' "잘 지내? 나도 잘 지내" 수준의 인사말이다. 남자의 본심도 뒤에 있다. '원하는 만큼 부정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 감정이 나타날거야' 이들이 말하는 '우리 감정'이 이 노래의 주제이자 제목인 거의 사랑이다.

거의 사랑은 후렴구에도 반복된다. '우리는 거의, 사랑이 뭔지 거의 알았지만' 이라는 말엔 왠지 마음이 짠해지는 구석이 있다. 그 다음에 붙을 말도 짐작이 간다. 아니나 다를까, '거의는 절대 충분하지 않아'. 뭔가 해보려다 안된 커플의 이야기인 모양이다.

그러게 말이다. 사랑이 뭔지 거의 알게 된다고 해도 누군가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보기로 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사랑은 늘 기분 좋은 것만도 아니다. 예를 들어 키스를 하다 콧물이 날 때가 있다. 사랑을 한다는 건 그런 상황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과 더불어 키스 중 콧물 흘리는 일 같은 게 20만개쯤은 생기는 것이다. 요즘 분들이 많이 하는 썸타기 수준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여러번 생기는 게 장기적 연인 관계인 것 같다.

호감을 분산시키는 '썸'에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가끔은 마음의 풍선이 터지기 직전까지 전력을 다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커지는 것도 쪼그라드는 것도 한순간인데 그게 언제가 될 지는 알 수 없다. 지금 얘로도 괜찮을까...라는 생각으로 밍숭하게 있으면 거의 사랑한 경험만 남겨둔 채로 삶의 초여름같은 시간이 다 지난다. 어차피 썸이나 사랑이나 잘 안 되면 시간 낭비인 건 똑같다.

그나저나 처음 이 노래의 제목을 봤을 때는 이게 무슨 사랑 노래 이름인가 싶었다. 이 노래를 계속 틀어두고 원고를 적는 지금도 그렇다. '거의는 절대 충분하지 않다'니, 깐깐한 거래처 사장님 말 같기도 하고 스티브 잡스적인 집요함이 느껴지는 경영 잠언같기도 한데, 이렇게 생각하는 건 나 뿐일까. 사랑 노래에서 거래처 사장님이나 떠올리는 아저씨 나이 되기 전에 여러분이라도 사랑 많이 하시길 바란다.  




앱 매거진 <뷰티톡>에 연재하는 원고를 여기 옮겨 둡니다. 노래 가사를 빌어 말하는 일종의 연애 칼럼입니다. 연애도 여자도 노래도 화장품도 잘 모르는데 이런 일을 하게 됐습니다. 당연히 부족할 겁니다. 어떤 형태의 지적이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브런치에는 연재 시점의 2주 후인 매주 금요일에 원고가 올라갑니다. <뷰티톡>은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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