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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Mar 20. 2018

이케아의 십계

꼭 열 개는 아니지만



"우리는 디자인이 아름답고 기능이 뛰어난 가구와 집기들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도록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중략) 오늘날 진정한 이케아 정신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행동 욕구, 노동의 기쁨, (중략)도전의 자세, 비용 절감 의식, 책임 의식,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한 집중력, 함께 뭉쳐 나아가는 똑바른 길이다. (중략) 노동의 기쁨이 없다면 인생의 1/3이 사라지고 만다. 일할 시간에 책상 서랍 속에 넣어 놓고 들여다보는 연애 잡지가 이런 손실을 보충해줄 수는 없다. 사람의 행복은 목표에 이르는 것에 있지 않다. 행복은 과정에 있다. (중략) 목표에 도달했다고 믿는 기업은 순식간에 정체에 빠지고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마련이다. 다행히도 이케아는 그럴 일이 없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앞에 놓인 놀라운 미래를 위해!"


사장님 훈화 말씀과 <시크릿>같은 자기개발서가 섞인 듯한 이 글의 제목은 '어느 가구 판매상의 유언'이다. 약 40여년 전의 글이고 딱히 재미있는 요소나 놀라운 통찰이 들어있지도 않다. 하지만 이 글 안에는 오늘날의 이케아를 이루는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지금의 이케아는 이 이야기로부터 시작됐다. 이케아판 '십계'라고 봐도 된다. 실제로 이케아가 종교에 비교될 때도 있다. 이케아의 카탈로그는 1년에 2억부 정도 발행된다. 성경보다 많은 발행부수다.


매거진 <B>에 소개되는 영광을 누린 브랜드에는 확연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대부분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점, 그 중에서도 굳이 나누면 니치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점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매거진 <B>가 소개했던 브랜드는 시장의 코어 타겟이나 (그게 물질적인 방향이든 정신적인 방향이든)사치스러운 소비성향을 가진 브랜드가 많았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같은 가치를 주는 다른 브랜드에 비해 비싸다. 비싼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 디자인? 소재? 기술? 희소성? 맞지만 본질적인 답은 아니다. 프리미엄 제품이 팔리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정당성이다. 앞서 말한 모든 요소는 '다른 것보다 비싸다 해도 나는 저걸 사야겠다'는 정당성이라는 구조를 이루는 부품이다. 물건의 이야기도 프리미엄 전략의 일부다. 파타고니아는 노동자의 인권과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하기 때문에 비싸다. 화요는 보통 소주보다 더 치밀하고 엄격한 제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비싸다. 이런 식이다.


이케아는 정 반대다. 프리미엄 니치 브랜드가 아니라 울트라 매스 브랜드다. 반면 이케아의 낮은 가격에 비해 이케아의 이미지는 높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물건을 가져야 한다'는 어느 가구 판매상의 유언같은 글 때문이다.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를 기업에 투영시킨 듯 깨끗한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보았듯 이야기는 물건의 약점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높은 가격이라는 약점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사용했다. 이케아는 반대다. 물건의 싼 가격과 고객의 불편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활용한다. 북유럽의 마법사가 부리는 듯한 이케아 매직이다.


이케아는 현대 브랜드의 경전과도 같다. 아마존이나 구글의 사례가 그렇듯 모든 브랜드는 이케아를 참고할 여지가 있다. 고가 브랜드든, 저가 브랜드든, 다국적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굴리는 초대형 브랜드든, 딱 한 군데에서만 파는 니치 브랜드든, 미니처럼 특정 국가와 완전히 붙어 있는 브랜드든, 마스터카드처럼 어떤 국가와도 붙어있지 않은 브랜드든, 이케아를 들여다볼수록 이 놀라운 브랜드는 당신에게 교훈을 줄 수 있다. 이케아 쇼룸에 일상생활을 위한 모든 것이 있듯이.


이케아 쇼룸에 있는 모든 물건엔 아주 확실한 공통점이 있다. 1)저렴한 가격 2)가격에 비했을 때 높은 이미지다. 이건 모순이다.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 정도이다. 그런데 모든 톱 클래스 브랜드 안에는 논리 구조로 봤을 때 같이 세워두기 어려운 개념이 있다. 디자인과 컴퓨터라는 요소를 함께 가져간 애플이 대표적인 예다. 훌륭한 브랜드는 스스로 만든 모순을 충족시키며 경쟁자가 따라갈 수 없는 자리에 오른다. 이케아도 저렴한 가격과 프리미엄 이미지라는 두 숙제를 동시에 해낸다.


이케아의 가격 매니지먼트와 이미지 매니지먼트라는 대분류는 또 각자의 소분류로 나뉠 수 있다. 가격 매니지먼트를 위해 필요한 건 a)극한의 효율과 b)소비자에게로의 아웃소싱이다. 이미지 매니지먼트를 위해서는 c)이케아 특유의 민주주의적 디자인, 그리고 d)스웨덴이라는 국가 정체성의 적극적인 활용이 필요하다. 이 네 가지 요소는 편의상 나누었을 뿐 이케아라는 브랜드 조직 안에서 유기적으로 잘 섞이고 있다.  


지금의 이케아는 이 모든 요소를 천천히 쌓아 올린 후 전 세계로 퍼뜨린다. 저렴한 가격과 프리미엄 이미지의 동시 구현이라는 숙제를 마치기 위해 아주 복잡한 구조를 짜고 그 구조에 입각한 상업 모델을 전 지구적으로 돌린다. 그 엄청나게 복잡한 매니지먼트가 이케아의 진짜 백미다. 하지만 카톨릭이 전 세계적으로 퍼졌을망정 십계는 하나뿐이듯, 이케아의 복잡한 매니지먼트가 전 세계를 상대로 퍼져나간다 해도 이케아의 십계는 하나뿐이다. 그게 '어느 가구 판매상의 유언'이다.


어느 가구 판매상의 유언을 쓴 사람은 말 그대로 어느 가구 판매상이다. 그의 이름은 잉바르 캄프라드. 그는 직접 1973년부터 1974년까지 2년에 걸쳐 어느 가구 판매상의 유언을 썼다. 창립자인 캄프라드 자신이 회사의 머리말을 직접 쓴 셈이다. 여러 모로 이케아라는 종교의 교주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교주나 리더가 되려면 몇 가지 자질이 필요하다. 굉장한 능력이나 카리스마는 기본이다. 거기 더해 진짜 강력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만들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야기는 본질이 아니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능력과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면 그 리더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이 가진 본질적인 모순을 꿰매거나 숨길 수 있다.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고양시키고 양을 치듯 한 방향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이야기를 통해서 자기가 그리는 세상을 묘사하고, 그 이야기를 퍼뜨리며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의 모양을 빚어 나간다.


초기의 이케아가 스웨덴에서 세를 키우고 유럽에 나갈 때가 바로 그랬다. 이케아는 늘 저렴한 가격과 가격에 비해 높은 품질을 내세우며 경쟁자보다 우위에 섰다. 그런 면에서 초기 이케아는 지금의 우버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눈길을 끈다. 기존 시장의 경쟁자는 무시하고 눈에 띄는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바로 다가간다. 그렇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은 예나 지금이나 이케아 브랜드의 선봉이다.


그 가격을 구현하기 위해 이케아는 처음부터 역발상을 서슴지 않았다. 이케아는 원가를 낮추기 위해 아주 이른 시기부터 해외 생산을 도입했다. 1970년대 이케아는 공산주의 국가인 폴란드에 생산공장을 차렸다. 낮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뿐 아니라 시장 질서를 무너뜨리는 이케아에게 스웨덴의 다른 기업들이 생산을 거부해서였기도 했다. 하지만 캄프라드에게 위기는 늘 기회였다. 그는 이참에 생산기지를 더 저렴한 곳으로 옮겨버렸다. 폴란드의 생산력을 높이려면 스웨덴에서 가구 제작 기계를 밀반입해와야 했지만 그런 건 상관 없었다. 공산권에서 생산한 물건을 독일이나 스웨덴 등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판매하는 것도 상관없었다. "수많은 스웨덴 주택들은 폴란드의 가구를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고객은 그것을 몰랐지만 말입니다."라고 한 사람은 캄프라드의 전기를 쓴 작가 토레쿨이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할 때 짓궂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이 기획의 이름이기도 한 '브랜드 스토리'를 이케아처럼 확실하게 활용하는 기업은 없다. 사실 이케아의 처음과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이케아는 가구로 시작하지 않았다. 통신판매가 이케아의 최초 비즈니스다. 하다 보니 가구가 잘 된 것이다. 잉바르 캄프라드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케아를 만든 것도 아니다. 잉바르 캄프라드의 롤 모델은 그가 어릴 때 스웨덴 최고의 부자였던 성냥왕 크뤼거였다. 그는 부자가 되고 싶었던 시골 소년일 뿐이었다. 그는 사유가 깊지도 않았다. 그는 나치를 지원했다는 일이 나중에 밝혀져 큰 곤욕을 치렀다. 처음부터 검소하지도 않았다. 이코노미 클래스만 탄다는 지금 일화와는 달리 젊은 캄프라드는 성공하고 나서 포르쉐를 샀다. 로고 색마저 지금과 다르다. 그 자체로 스웨덴인 듯한 이케아의 로고는 1983년에 만들어졌다. 


상관없다. 상관없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이케아를 비롯해 기존 시장을 붕괴시키고 1위가 된 브랜드는 모두 자신을 정당화하는 신화를 갖고 있다. 애플, 구글, 에어비앤비, 나이키, 롤렉스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비전을 따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거나 우리 물건을 산 소비자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이케아는 그 이야기를 가장 잘 활용하는 브랜드다.


이야기는 성공의 포장지에 불과하다. 브랜드의 이야기와 철학이 중요하지만 그게 실물세계에서의 비즈니스보다 중요하다고 과대평가될 수는 없다. 리더에게 실력과 이야기 능력이 동시에 있어야 하듯, 브랜드 스토리가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기업 자체에 확실한 실력이 있어야 한다. 이케아는 실력 면에서도 굉장히 능숙한 동시에 창의적이다.


이케아가 만들어낸 진짜 혁신은 가격을 낮춘 동시에 최대한 높은 품질을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방법이다. 이케아에서 10년 동안 CEO를 한 앤더스 달빅이 회고록에서 가장 여러 차례 강조한 건 가격이다. 낮은 가격. 무조건 낮은 가격이 이케아에서는 가장 중요하다. 그가 짚은 이케아에서 가장 중요한 부서 중 가장 먼저 말한 부서는 디자인이나 유통이 아니다. 구매다. 구매부서가 원가와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다.


이케아가 종교라면 사람들이 이케아를 믿게 하는 가장 큰 교리는 단연 낮은 가격이다. 이케아는 이 부분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부분에서 천재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리모와나 롤렉스에는 모든 부분에 브랜드의 의도와 고민이 들어가 있다. 이케아의 모든 가구에도 모든 부분에 브랜드의 의도와 고민이 들어 있다. 전자가 품질과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한 고민이라면 후자는 가격을 낮추면서도 품질을 덜 낮추기 위한 고민이다. 설계, 생산, 물류, 포장, 운송, 조립까지, 모든 소비자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에 이케아의 가격 절감을 위한 노력이 들어가 있다.


이케아의 천재적인 가격인하 전략은 제품 하나를 놓고 보면 더욱 잘 드러난다. 이케아의 49000원짜리 원목 침대 피엘세 싱글 사이즈(90 X200)을 이케아 광명점에 사러 간다고 가정해 보자. 우선 카탈로그에서 그 침대를 본다. 49000원짜리 원목 침대라니 눈길이 간다. 쇼룸에서 그 침대를 본다. 피엘세 싱글 사이즈에는 아무 코팅이나 붓질도 되어 있지 않다. 보통 원목 가구라면 오일 스테인 등을 발라 표면을 마무리하지만 이케아 피엘세 싱글 사이즈는 정말 원목이다. 아무튼 원목은 원목이니 사기로 하고, 1층으로 내려가 창고형 매장에 물건을 찾으러 간다. 상자 속의 물건은 쇼룸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작다. 이케아의 플랫팩 정책 때문이다. 실제로 제품 규격과 패키지 규격 차이는 굉장히 크다. 피엘세 싱글 사이즈의 제품 크기는 길이 X 폭 X 높이(머리판 높이 기준) 207 X 97 X 80이다. 반면 패키지 크기는 204 X 12 X 25다. 그걸 카트에 담아서 계산대까지 밀고 간 후 그 카트째로 엘리베이터까지 내려가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와 조립했을 때에야 당신이 쇼룸에서 산 그 가구가 만들어져 있다. 생각해보면 제품을 보러 가서 사기로 결정하고 계산대까지 가져가서 구매하고 집으로 운반해서 옮긴 후 조립한 건 모두 당신이다. 이케아 가구라는 완성품은 이케아가 판매하는 재료와 고객의 시간과 노력이라는 자원의 합이라고 봐야 한다.


여기에 이케아식 가격 정책의 백미가 들어 있다. 유럽 저가항공의 가격 안에는 추가수하물 가격은 물론 물값까지 빠져 있다. 마찬가지로 카탈로그 속에서 보이는 이케아의 가격에는 '가장 작은 부피로 포장된 재료'라는 아주 기본적인 요소만 들어 있다. 고객이 거기서 완성된 제품을 가지려면 방법은 두 가지다. 내 시간과 노력을 들이거나, 남의 노력과 시간을 내 돈을 주고 사거나. 그러한 추가 가치를 지불해야 이케아 가구라는 완제품을 갖게 된다. 이케아는 가구를 둘러싼 모든 요소를 최대한 아웃소싱하며 가격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앤더스 달빅은 회고록에서 이 말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했다. 고객은 돈보다 시간이 많다.


공격적인 가격 정책 뒤에는 이처럼 약간의 불편한 점들이 생기게 된다. 이케아는 매장 직원까지 최소화시켰다. 매장 직원은 테마파크의 안내원처럼 제품의 정보를 알려줄 뿐 그걸 가져가서 사려면 모두 개별 고객의 탐색과 근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불편 요소는 분명히 다른 브랜드나 고객에게 공격당할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틈새를 수비하는 것이 스토리텔링이다.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가격이 싸므로 우리는 최대한의 제품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어느 가구상의 유언이 그대로 반복된다. 아름답고 뛰어난 가구와 집기를 가능한 한 여러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이케아 디자인의 근간인 민주적 디자인(데모크라틱 디자인)이라는 개념도 중요하다. 민주적 디자인은 소비자에게 편안하고 합리적인 디자인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이케아에서 말하는 민주적 디자인의 5요소가 있다. 마지막 요소가 가격이다. 이케아는 물건을 만들 때 기획과 설계 단계에서부터 단가 상한선을 맞추고 디자인을 시작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처음에 정한 단가를 넘어서면 생산조차 되지 않는다. 여기서 이케아 디자인의 천재성이 피어난다. 생산이 쉬우면서도 좋은 재료를 쓰고, 조립이 쉬우면서도 부피가 크지 않고, 게다가 그 조립법을 다 그림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건 보통 능력이 아니다. 이케아 이전에는 철제 캐비닛은 소비자가 조립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소비자도 조립할 수 있을 정도로 조립법이 간단한 설계 구조를 짰다는 게 이케아의 첫 번째 천재성이다. 가격이 낮으면 자기 물건이 잘 팔려서 좋은 건데, 그걸 더 나은 세상에 일조한다거나 민주주의적이라고 하며 의미를 부풀리는 게 두 번째 천재성이다.


여기 더해 스웨덴이라는 만능 소스같은 개념이 등장한다. 스웨덴이라는 정체성은 이케아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완성시키는 마법의 주문이다. 이케아가 스웨덴이라는 옷을 입는 순간 여러 가지 이미지들이 이케아와 함께 자석처럼 달라붙는다. 볼보,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아크네, 합리적이면서도 검소하면서도 튼튼하면서도 안목이 높으면서도 겸손한 사람들. 이케아는 북유럽의 신비한 국가와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붙이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스웨덴 국기 색에 맞춰 1983년 바꿔버린 로고의 색이다. 거기 더해 이케아는 한국 매장에도 팔리지 않을 게 뻔한 스웨덴 바닷가재와 바닷가의 모래처럼 퍽퍽한 스웨덴 쿠키를 판매한다. 그 스웨덴 쿠키는 늘 잘 팔리지 않아서 반값으로 할인되곤 하지만 이건 스웨덴 정체성이라는 가치를 얻기 위해 이케아가 버릴 수 없는 부분이다.


흥미롭게도 초기 이케아는 스웨덴을 부정하고 도망가면서 성장했다. 캄프라드는 스웨덴 가구업계의 보이콧 때문에 폴란드에서 가구를 생산했다. 그는 포르쉐를 탄 부자였기 때문에 최대 85%까지 적용되는 스웨덴의 세율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는 세율을 피해 프랑스를 떠나려 했던 LVHM의 베르나르 아르노처럼 세율을 피해 스웨덴을 떠나 덴마크로 넘어간 후 스위스에 정착했다. '어느 가구 판매상의 유언' 역시 그가 조세혜택을 받으려 스웨덴을 떠날 때 직원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쓴 글이다. 지금도 이케아의 각 부문별 회사는 유럽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케아의 상표권과 체인점 사업권은 네덜란드에 있고 디자인 센터는 스웨덴에 있으며 대부분의 아웃소싱 업체들은 아시아나 동유럽 등의 저임금 국가에 있다. 스웨덴은 매출 규모로 봐도 6% 정도에 불과해 이케아의 주 시장도 아니다. <이케아>를 쓴 사라 크리스토페르손이 책에서 쓴 말처럼 '기업 구조를 보면 이케아는 스웨덴 기업이라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장기이식이나 피부이식처럼 유럽 브랜드의 이미지 이식은 아주 흔한 일이다. 말만 되면 어떤 이미지든 끌어올 수 있는 게 브랜드 스토리텔링의 마술적인 신비다. 인류 최고의 스포츠 마케팅 축제인 올림픽은 프랑스의 쿠베르탱이 만들었다. 그는 국민에게 체육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당시는 본토에서도 없어졌던 그리스의 2000년 전 전통을 가져왔다. 프랑스인 쿠베르탱이 만든 IOC는 이런저런 계산 끝에 본사마저 스위스 로잔으로 옮겨버렸다. 그리스의 전통이 파리에서 다시 태어나 스위스에서 집행되고 있는 것이다. 몰스킨을 만든 밀라노의 마리아 세브레곤디는 몰스킨이 나온 브루스 채트윈 책의 일개 독자일 뿐이었다. 온갖 곳에 유니언 잭을 달고 출시되는 미니도 BMW와 프레임을 교환하는 사실상 BMW의 서브 브랜드다. 이케아가 스웨덴 이미지를 가져다 쓰는 건 자기 마음이다. 상기한 예에 비하면 이케아와 스웨덴의 유사성은 굉장히 높다고 봐도 될 정도다.


일관적인 이미지 정책에도 약점은 있다. 일관성이 지켜지려면 엄격한 내부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 롤렉스는 세일을 하지 않고 롤렉스 CEO는 전 세계의 어느 매체와도 인터뷰를 하지 않는다. 에르메스의 버킨은 사기 어렵고 그건 전 세계 어느 매장에서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보통은 비싸면서도 독보적인 브랜드만이 교도관처럼 냉엄한 브랜드 규칙을 적용할 수 있다. 이케아의 가장 큰 매력은 최대한 많은 손님을 끌어들이는 낮은 가격이다. 소비자의 친구이자 민주주의적 디자인의 수호자 이케아는 그렇게 도도하게 굴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서 이케아 전략의 백미가 다시 한 번 드러난다.


이케아는 큰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동시에 국가별로 미묘하게 변주를 주고 있다. 이것이 가치 프리미엄 브랜드인 롤렉스와 이미지 프리미엄 브랜드 이케아와의 가장 큰 차이다. 이케아는 해당 국가의 소득과 성격 등에 맞춰서 미묘하게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취리히 역 바로 앞 반호프슈트라에세에 쇼룸을 운영한다.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아이가 전면에 나오는 광고 이미지를 홍보한다. 카탈로그에 들어가는 이미지도 조금씩 다르다. 사우디아라비아판 같은 곳에선 잠옷을 입은 여자가 삭제된다. 코카콜라나 맥도날드같은 글로벌 기업이 국가별로 조금씩 변주를 준다. 하지만 글로벌 식음료기업과 이케아의 결정적인 차이는 물건 그 자체다. 코카콜라와 맥도날드는 국가별로 메뉴와 맛이 조금씩 다르다. 반면 이케아의 물건은 거의 다 비슷하다. 더 효율적이다.


말은 간단하지만 이케아는 엄청나게 복잡한 모델이다. 기업 이미지를 만드는 회사와 제품 디자인을 하는 회사와 재무 회사와 이를 소유한 재단이 다 다른 국가에 있다. 디자인 회사의 설계도를 받아 실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는 전 세계의 국가(주로 저임금지역)에 퍼져 있다. 극한의 효율적 디자인 규칙을 통과해 만들어진 물건들이 컨테이너에 가득 실려 전 세계로 뻗어 나간다. 이케아는 특정 목적지를 오가는 컨테이너의 빈 공간 비율까지 계산한다. 중국에서 유럽으로 나가는 컨테이너는 꽉 채워 보낼 수 있지남 유럽에서 중국으로 들어올 때의 컨테이너는 빈 공간이 많다. 이러면 물류 소진 효율에 차이가 생기니 손해다. 이케아가 실제로 신경쓰는 부분은 이런 부분이다.


반면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이케아는 민주주의적 디자인과 더 나은 삶을 위한 실험을 계속하는 멋지고 진취적인 북유럽 기업이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게 프리미엄 디자이너와의 협업이다. 최근 이케아는 헤이와 함께 가구를 만들었다. 오프 화이트의 버질 아블로와도 협업해 새로운 소품을 출시한다. 이런 사업은 이케아의 전체 매출이나 비즈니스를 고려하면 셔츠 두 번째 단추의 세 번째 단추구멍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때로는 그 작은 디테일이 큰 티가 나기도 한다. 이케아와 헤이가 협업한 플라스틱 의자, 이케아와 오프 화이트의 러그같은 건 분명히 특정 계층의 아주 큰 관심을 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하나의 물건을 사러 이케아 매장에 갔다가 여러 개의 물건을 싣고 돌아올 것이다. 그것도 이케아의 사업 모델이다.


이렇게 이케아는 홈 퍼니싱 계열의 난공불락이 되고 있다. 모든 조건을 극한까지 밀어붙여서 최대한 저렴하면서도 괜찮은 물건을 만든다. 그 물건을 극한의 효율성으로 실어서 매장에 갖다둔 후 나머지는 고객이 알아서 하도록 세심히 프로그래밍한다. 이 모든 부분에 각자의 이름과 사정을 붙인다. 저렴하면서도 괜찮은 물건의 효율적인 디자인은 '민주주의'다. 물건을 직접 나르고 집까지 가져가고 만들어야 하는 고객의 불편도 가격을 줄이기 위한 수단이므로 정당화된다. 프리미엄 이미지도 틈틈이 부지런하게 쌓아 나간다. 스웨덴의 국기색을 통해, 버질 아블로와 헤이를 통해. 축구 팀이라 치면 약점이 없다.


약점이 없는 팀이라 해도 끊임없이 바뀌어야 한다. 세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홈 퍼니싱 시장도 계속 바뀐다. 지구 온난화, 노령화와 출산율 감소, 1인 가구. 전 지구에 걸친 지엽적 이슈가 지구적 기업 이케아에게 영향을 준다. 요즘 가장 눈에 띄는 주거의 변수는 난민과 저성장에 따른 토지 시세 증가로 발생하는 도시 유목민이다. 이런저런 세계 정세 때문에 난민과 세계의 젊은이들이 집을 못 사고 있다. 집을 잃었거나 집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세계 어디서든 자리를 잡으려면 세간이 필요하다. 결국 이케아에 갈 수밖에 없다.


이케아는 최신형 카탈로그에 발빠르게 이 경향을 반영했다. 이케아 2018년 카탈로그에는 이케아 쇼핑백 안에 들어가는 사이즈의 패키지가 들어 있다. '가볍게 살고 싶을 때 손쉽게 옮겨요'라는 말과 함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가벼워서 옮기기 쉽고 집 안 어디에나 어울리는 가구를 준비해보세요'라는 말이 붙어 있다. 이들이 제안하는 패키지 안에는 인조식물, 스툴 3개, 플로어 스탠드, 쿠션, 수납 가방이 들어 있다. 이 모두의 가격은 108000원. 역시 싸다. '낯선 공간에 포근함을 더하면 진짜 집이 됩니다'라는 말이 쓰인 페이지도 있다. 너무나 상징적이다.


앞으로의 이케아가 어떻게 될까? 그건 이미 1974년에 다 쓰여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말 자체가 2000년짜리 수명을 가진 카톨릭교의 원형이 되었듯, 잉바르 캄프라드의 '어느 가구 판매상의 유언'이 이케아 정신의 변치 않는 원형이다. 그러니 이 말로 마무리해도 되지 않을까.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이 이끄는 대로 이케아가 나아갈 것이라고.



매거진 <B> 이케아 편에 실린 글입니다. 인쇄본과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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