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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Aug 01. 2019

힙 타운 공식 0.2

톰과 제리들: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과 을지로


나는 남성 잡지 <에스콰이어> 2016년 9월호에 ‘뜨는 동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원고를 냈다. 몇 가게를 취재하고 서울시 통계포털에서 제공하는 지도 데이터에서 몇 가지 요소를 추출했다. 그 요소로 가설을 만들고, 그에 입각해 앞으로 부상할 동네를 예상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고, 비슷한 내용을 요약해 매거진 <B>에도 실을 수 있었다.


2년 전의 칼럼은 관찰에서 시작했다. 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서울에서 ‘요즘 여기 뜬다’던 곳으로 손꼽혔던 동네의 이름을 쭉 적어보았다. 홍대, 삼청동, 이태원, 한남동, 경리단, 해방촌, 상수동, 후암동, 서울숲, 성수동, 연남동, 합정동, 서촌, 익선동, 을지로3가, 우사단로, 망원동까지였다. 여기에 편의상 '힙 17'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도에 동네를 올려 보자 몇 가지 특징을 찾아낼 수 있었다. 1)구시가지권 2)기존 대형 상권 배후지 3)2개 이상의 종합대학 근처 4)훌륭한(혹은 개선된) 교통 접근성. 나는 각 공통점에 좀 더 강한 상징이 있다고 생각했다. 힙 17은 동서로 성산대교부터 영동대교까지, 남북으로는 한강 이북부터 삼청터널까지다. 대충 오각형 모양이라 여기 '힙 펜타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소 1979년 이전부터 시가화가 진행된 구시가지 지역이다. 배후 지역인 것도 중요했다. 홍대는 신촌의 배후, 삼청동은 인사동의 배후였다. '익숙한 동네 근처의 조용한 동네'가 힙 타운의 토양이었다. 


종합대학은 힙 타운의 초기 단골을 공급했다. 힙 타운에서 팔리는 건 단순한 고가품이 아니었다. 여기서는 세련된 것, 즉 선진국 대도시 젊은이 문화가 이식된 것이 팔렸다. 이 시장에 반응하는 소비자 역시 단순히 부자만은 아니었다. 유행의 흐름에 예민하고, 한국에 익숙치 않은 해외 문화를 즐길 만큼의 세속적 교양이 있고, 후미진 동네의 단골이 될 만한 시간과 그런 상품에 돈을 쓸 만큼의 예산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그런 역할을 해줄 소비자층은 서울권의 대학생이었다.


도로교통망은 대학생이 만들어둔 힙 타운의 토양을 밀림으로 키우는 역할을 했다. 힙 17은 모두 서울시내와의 간선도로 접근성이 훌륭했다. 특히 한남동으로 대표되는 용산구 일대의 힙 타운과 성수동은 사실상 강남 상권의 배후상권이었다. 범 홍대 권역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넓어진 망원-상수-홍대-연남 구간 역시 목동과 가양동 등 거대 아파트단지 근처였다. 대중교통도 중요했다. 특히 힙 세븐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망원-합정-홍대-상수/해방촌-경리단길-이태원-한남동은 모두 서울지하철 6호선과 겹쳤다.


이 변수에 따라 '다음에는 여기가 뜰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한 곳도 있었다. 용산구 효창동과 마포구 대흥동이었다. 둘 다 구시가지권에 있다. 기존 대형 상권의 배후 상권이다. 이화여자대학교와 서강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등의 종합대학도 근처에 있다. 6호선에 속하고 강변북로 접근성도 좋다.


이 원고를 만들고 2년이 지났다. 2년 동안 서울에는 여러 일이 있었다. 대통령이 탄핵됐고 박원순은 연임했다. 힙 타운 계는 거품이 다 빠졌다. 그때 취재를 갔던 곳 중 연남동에 있는 커피숍은 이미 연남동을 떠났다. 서촌에 있던 옷가게도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 경리단길에 있는 커피숍은 그나마 점포를 구입했기 때문에 이 상황을 버틴다. 서촌에 있는 커피숍들은 매물로 나온 지 오래다. 경리단길에 있는 커피숍도 계약 기간이 끝나기만 기다리는 중이다. "경리단길은 끝났어요." 나 "서촌은 거품이 빠진지 오래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대흥동과 효창동이 뜰 거라고 한 나의 예측도 틀렸다.


대신 을지로가 부상했다. 지금 서울에서 가장 힙하다고 할 법한 동네는 을지로다. 신도시, 클리크 레코드, 감각의 제국, 131와트 등의 공간이 을지로 곳곳에서 젊은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나는 2년 전 원고의 패치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지금 원고를 만들며 이 사실에서부터 출발했다. 예측은 왜 틀렸는가? 왜 이태원에서부터 동서로 퍼진 힙의 물결은 효창동까지 이르지 못했는가? 을지로는 기존의 힙 타운과 무엇이 비슷하며 무엇이 다른가?


우선 나는 대학생을 과대평가했다. 힙 타운의 요소에 따르면 을지로에도 상당 부분 힙 타운의 요소가 있었다. 구시가지권이었다. 명동과 종로라는 초대형 상권의 배후지였다. 교통 접근성도 좋았다. 빠진 요소는 대학생 하나뿐이다. 대학생이 트렌디한 소비자이던 때는 홍대가 트렌디한 상권이던 때의 이야기라는 걸 간과했다. 실제로 1999년의 스타벅스 한국 1호점과 2004년 크리스피 크림 도넛의 한국 1호점은 각각 이대와 신촌에 생겼다. 반면 에릭 케제르 1호점은 여의도에, 셰이크섁 버거 1호점은 강남역에 생겼다.


아울러 나는 교통 접근성을 과소평가했다. 도시인을 움직이게 하는 건 편리한 대중교통 접근성 혹은 교통 편의성이다. 을지로 중에서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을지로 3가 주변은 이 부분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을지로 3가는 2호선과 3호선이 겹치는 서울의 주요 환승역이다. 종로3가나 을지로4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 등 근처의 노선까지 생각하면 사실상 1호선부터 5호선 모두가 을지로 근처를 지난다. 경기권 광역버스가 다니는 광화문이나 서울역 등과도 멀지 않다. 시내권에 있으니 택시도 잘 잡힌다. 대학생들도 서울의 촘촘한 대중교통망을 통해 을지로로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SNS라는 변수를 아예 넣지 않았다. IT 주식에 투자하지 않았던 워런 버핏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계산이었다. SNS는 을지로가 기존의 힙 타운과 차이점을 보이는 첫 번째 요소이기도 하다. 을지로라는 힙 타운이 여타의 힙 타운과 가장 다른 점은 1층에 위치한 이른바 '로드숍'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을지로에 있는 대부분의 세련된 가게는 3층부터 5층 사이에 있다.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간판이 아예 보이지 않는 곳도 많다. 각 업소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이런 가게의 가상 간판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을지로에 있는 세련된 가게를 가고 싶다면 인스타그램 해시태그 #을지로맛집 만 찾으면 된다.


을지로가 여타의 힙 타운과 구분되는 두 번째 요소는 프로메테우스의 차이다. 나는 지난번 원고에서 각각의 힙 타운에는 힙의 불꽃을 들고 온 프로메테우스들이 있다고 했다. 홍대에는 음악인이, 삼청동에는 출사족과 와인 애호가가, 용산구에는 외국인과 게이가 있었다. 을지로의 힙 프로메테우스들은 이런 분류로 묶이지 않는다. 을지로의 힙 파이오니어였던 신도시의 대표는 사진가다. 독립 서점의 대표는 디자이너다. 레코드숍 대표는 음악인이다. 밖에서 보면 예술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완전히 다른 리듬과 수익구조와 감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뿐이다. 가격보다 좋은 장소를 원했다는 점. 그래서 을지로의 힙 프로메테우스들은 별로 교류가 없다. 오히려 '우리 과가 아니다'싶으면 교류를 꺼리기도 한다.


그 결과 을지로를 찾는 손님의 행태가 굉장히 다양해진다. 보통 힙 타운에 있는 가게들은 서로가 서로의 접점이 되는 노드(nod)에 가까웠다. 반면 지금 을지로에 있는 가게들은 점주간에 큰 교류가 없는 포인트(point)라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신도시의 단골이 감각의 제국에 갈 일은 없다. 131 와트를 오는 사람들이 클리크 레코드에 갈 확률도 높지 않다. 다만 이런 맥락을 모르고 을지로에 새로 진입한 손님들이 자신들이 주도하는 을지로의 오리엔티어링 맵 같은 걸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해당 점주들이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을지로에는 오래된 공구상가 사이에 점점이 박혀 있는 전통적인 식당들이 있다. 이런 곳을 찾아가는 것도 을지로를 찾는 재미다. 즉 을지로를 즐긴다면 1)특정 포인트만 가거나 2)새로 생긴 포인트를 내가 이리저리 가 보거나 3)새로운 포인트와 예전의 포인트를 섞어서 가볼 수 있다. 그럴듯한 가게만 있는 강남의 세련된 동네에서는 줄 수 없는 재미다.


여타 힙 타운과 다른 을지로만의 변별력이 하나 더 있다. 대기업 입주사들이다. 을지로 3가 근처에는 최근 재건축을 거치며 생겨난 최신 사무실 건물들이 있다. 을지로 3가 바로 길 건너에는 한솔그룹 을지로 본사가 있다. 을지로 3가에서 걸어서 10분 안에 진입할 수 있는 곳에 대신파이낸스센터, 시그니처타워, 미래에셋센터원 등의 신규 대형 사무실 건물들이 있다. 지난 원고에서 대학생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을지로의 대기업 직원들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들은 힙스터풍의 뭔가를 만들지는 않아도 힙스터풍의 뭔가를 소비할 준비는 늘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 지금의 을지로는 존재 자체가 2018년 서울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새로운 힙 타운이 되었다. 힙스터 비즈니스 점주의 가장 큰 불안은 폭등하는 점포 임대료다. 을지로는 오래된 상권이고 건물에 대해 각자의 이권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점포 임대료가 오를 가능성이 생각보다 적다. 그 면에서 힙스터의 수요에 맞는다. 하지만 이건 3-5층의 고층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한국은 94%가 스마트폰을 가진 세계 스마트폰 보급률 1위 국가다. 모두가 SNS에 접속할 수 있고, 모두 해시태그를 이용해 숨어 있는 멋진 곳으로 찾아갈 수 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가게를 스마트폰으로 찾아가는 사람들, 공구상가 사이에 있는 힙스터풍 가게들, 스트리트 캐주얼을 입은 젊은이들 사이에 앉은 초기 비만의 회사원들, 모든 것이 '이게 뭐지' 싶은 무맥락으로 얽혀 있는 풍경, 이 혼란 자체가 2018년의 서울이다.


을지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대흥동과 효창동을 다시 한번 볼 필요가 있다. 대흥동과 효창동은 힙스터의 감각보다 건설업자의 돈이 빨리 움직인 경우다. 효창공원입구역 바로 앞에 있는 KCC 스위첸같은 게 생기면 힙스터들은 컴배트를 만난 바퀴벌레처럼 동네를 떠나고 만다. 이 외에도 자이나 래미안, 아이파크같은 대단위 고급 아파트단지는 힙스터의 유입을 막는다. 이런 아파트 단지를 힙 장벽이라고 불러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대흥동과 효창동을 비롯한 예에서도 볼 수 있듯 힙스터와 디벨로퍼는 구도심을 배경으로 톰과 제리같은 게임을 벌이고 있다. 힙스터를 저자본 고감각 소규모 사업자라고 쳤을 때, 모든 힙스터의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운명적인 경쟁자는 자본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부족한 자들은 필연적으로 패배한다. 그 면에서 봤을 때 지금 서울 힙스터 비즈니스의 천적은 부동산 디벨로퍼다. 이는 래미안처럼 큰 건물을 만드는 사람들만 뜻하지 않는다. 작은 원룸을 만드는 소규모 건설업자 역시 건물의 세를 올린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건 마찬가지다.


을지로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월세 100만원 하는 가게에 월세 200만원을 내고 들어오는 사업자들이 들어간다면 뭔가 불길한 징조다. 비싸진 임대료를 지불하는 젊은 사업자들이 있다면 그들 역시 필연적으로 비싸진 임대료에 상응하는 수입을 올려야 한다. 수입을 올리려면 결국 더 친근한(즉 덜 힙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그 과정을 반복하며 점점 동네의 세련미가 떨어진다. 만약 이런 현상을 막아야 한다면 방법은 없을까?


이 문제 역시 결국 자본이 쥐고 있다. 좋은 건축가 뒤에 좋은 건축주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밀라노의 명품 브랜드 매장이 많은 거리인 비아 델라 스피가에는 아무 브랜드나 입점하지 못한다. 상우회의 회의와 허락을 받을 정도로 급이 있는 브랜드만 그 브랜드에 매장을 낼 수 있다. 작은 지역 단위의 자본이 동네의 감각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부자들이 이런 식으로 현명한 움직임을 보이지 못한다면 서울의 힙 타운은 개업과 공실을 반복하다 차례로 망가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서민-힙스터-자본가가 서로의 꼬리를 물 듯 쫓고 쫓기는 과정이다. 그 추적과 도망의 과정이 중앙에서부터 소용돌이치며 현대 서울과 수도권이라는 메갈로폴리스를 만들었다.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싶어하는 개인의 소원과 에너지를 막을 방법은 없으니 이 에너지를 어느 방향으로 몰고 가는지가 중요하다. 사실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계층은 힙스터가 아니라 저개발지역에서 거주하거나 세탁소를 운영하던 서민 혹은 서민형 사업 운영자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가장 그늘진 곳에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매거진 B 서울 리이슈에 실린 글입니다. 지면 관계로 이쪽 글의 양이 조금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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