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김종인의 손목시계 이야기 - 3
하루가 다르게 직함이 바뀌었던 김종인 (이제)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 시계 이야기다. 사진을 먼저 보자.
이 사진은 지난번에 올린 사진과 같은 날 다른 시간에 찍힌 사진이다. 어제 사진은 오후 12시 55분 정도를, 이 사진은 4시 25분 정도를 가리키고 있다. 오른쪽 상단 네모 창에는 숫자 ‘10’이 보인다.
이 네모 창은 독일 드레스덴 오페라하우스 벽시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드레스덴의 오페라하우스에는 5분 단위로 시간을 보여주는 디지털 벽시계가 있다. 우리가 아는 시계와 달리 액자처럼 생긴 사각 창으로 숫자를 보여준다. 이 시계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 시계 중 하나다. 우리가 아는 디지털 시계의 모양과는 다르지만 시간을 숫자(디지트digit)로 표시하면 다 디지털 시계다.
요한 크리스티안 프레드리히 구트카에스라는 사람이 이 시계를 만들었다. 구트카에스는 18-19세기에 활약한 드레스덴의 시계 제조자다. A. 랑에 운트 죄네의 창립자인 아돌프 랑에의 멘토이기도 했다고 한다.
고가 사치품은 구실이 중요하다. 무슨 논리와 사건을 어떻게 끌어 오든 뭔가 스토리라인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는 ‘작센 대표 고급 시계 회사가 우리 지방의 시계 전통을 보여주는 오페라하우스 시계를 손목시계 위에 재현한다’는 이야기가 생긴 셈이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이거 억지 아니냐’ 처럼 보일 수도, 그렇게 주장할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식의 촘촘한 서사 구성이 사치품 게임의 규칙이다. 보통 사람의 몇 년치 월급 가격에 육박하는 시계를 팔려면 구실이 많을 수록 좋겠지.
새로운 시대의 A. 랑에 운트 죄네는 이 목표에 매진했다. 독일 통일 이후 불과 2년만에 A. 랑에 운트 죄네는 다이얼의 오른쪽 상단에 날짜 창을 보여주는 기술로 특허를 출원했다. 이 특허는 A. 랑에 운트 죄네가 자본주의 시장으로 돌아온 뒤 얻은 첫 특허이기도 하다. 김 비대위원장의 손목에서 빛나던 ‘10’자에는 이런 의미가 있다.
드레스덴 오페라하우스 ‘젬퍼 오퍼’ 의 운명도 만만치 않았다. 젬퍼 오퍼는 2차 세계 대전의 드레스덴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다.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의 역작, 인류 문명의 한 조각이 전쟁으로 폭삭 주저앉았다. 냉전기에 대가 끊긴 A. 랑에 운트 죄네처럼. 지금의 젬퍼 오퍼 역시 1975년 발견된 원본 설계도에 기반해 새로 만든 것이다. 젬퍼 오퍼든 랑에 1이든, 대립과 영욕을 겪고도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생명력을 보여준다. 이건 마치 김 전 비대위원장의 정치 생명과도 비슷…아니다. 시계 이야기를 하자.
이제 저 창의 기능과 유래도 알았으니 첫 사진으로 돌아가면 의아한 점이 하나 눈에 띈다. 숫자 자체다.
드레스덴 오페라하우스 시계를 계승한 시계의 날짜 창에는 ‘10’이 찍혀 있다. 하지만 이 사진이 찍힌 날은 2016년 4월 9일이다. 즉 김 전 비대위원장(사진이 찍혔을 때에는 더불어민주당 대표)은 날짜가 틀린 시계를 차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나는 이 사진을 보고 ‘이 랑에 1은 김 전 비대위원장이 오래 아껴 차고 있는 시계가 맞구나’ 라고 생각했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 이리저리 보다 보니 나름의 근거에 입각한 가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걸 오늘은 꼭 적으려 했는데 또 이렇게 글이 늘어져서야 원…글쓰기 정말 어렵군. 다음 시간에 올리겠다.
+고견과 지적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