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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May 21. 2020

김종인의 랑에 운트 죄네 - 2

독일의 분단이 어느 시계에 미친 영향


김종인 현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시계는 이 사진으로부터 알려진 것처럼 보인다. 2016년, ‘4·13 총선을 4일 앞둔 9일 오후 (중략) 대전 서구 도마네거리 앞에서 열린 박병석 후보의 지원유세에서 지지발언을’ 할 때 찍힌 사진이다. 사진과 함께 나온 기사에는 ‘알아보니 세계 5대 시계 브랜드 중 하나’라는 설명이 붙었다.


'세계 5대 시계 브랜드'는 모호한 말이다. (가나다순)바쉐론 콘스탄틴, 브레게, 오데마 피게, 파텍 필립, A. 랑에 운트 죄네를 두고 ‘5대 시계’라고 인터넷에 나와 있지만 출처나 기준의 명확한 설명은 없다. 김종인의 시계를 알아보기 위해 출처도 애매한 말을 딱히 알아보지 않아도 된다. 눈에 보이는 요소에만도 충분한 단서가 있다.


보통 시계는 원형 모양 전체를 시간 표시 디스플레이로 쓰는데 이 시계는 조금 다르다. 시간을 보여주는 부분이 시계의 9시 방향에 배치되었다. 남는 면적 사이로 다른 정보가 표시된다. 5시 방향에 초침이, 1시 방향에는 숫자 ‘10’이 쓰인 네모 창이 보인다. 이 네모 창이 랑에 1의 핵심 요소이자 이 시계를 둘러싼 역사의 흔적이다.  


페르디난트 아돌프 랑에. 


글라슈테에 있는 페르디난트 아돌프 랑에의 조각. 위인 대접을 받고 있다. 지역 위인 맞지.


A. 랑에 운트 죄네는 ‘아돌프 랑에와 아들들’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이름처럼 랑에 운트 죄네의 창립자는 아돌프 랑에 씨다. 페르디난트 아돌프 랑에 씨가 1845년 독일 작센 지방의 글라슈테에서 자기 이름을 딴 시계 회사를 만들었다. 김 위원장의 시계에 이 표식이 다 적혀 있다. A. Lange & Söhne라고 회사 이름 쓰여 있고, 그 밑에 '글라슈테, i/SA' 라는 글자가 보인다. ‘작센 지방 글라슈테’라는 뜻이다. '동대문 진옥화 닭한마리'같은 지역 특산물 표시 개념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시계 회사들은 알고 보면 ‘저렇게까지 다 써두나’ 싶을 정도로 시계에 여러 가지 정보를 적어 둔다. 이렇게 적어두는 데에도 사연이 있다. 처음의 시계는 아무나 만들지 못하는 정밀 기계였다. 기계식 시계는 벽시계->해상 시계->탁상 시계->손목 시계 순으로 점차 작아지고 복잡해졌다. 컴퓨터가 에니악에서 애플 워치에 이르기까지 소형화된 것과 마찬가지다. 원래 작고 정교한 건 만들기 힘들다. 잘 만드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수 있지.


에니악. 1947년. 폭x높이x길이 = 1 x 2.5 x 25m
애플 워치 시리즈 5. 2019년. 40.0 x 34.0 x 10.74 mm


비싼 것이 있다면 그 곁에 스위스인들이 있다. 시계부터 비밀 계좌까지, 스위스인들은 늘 고부가가치 상품에 재능을 보였다. 겨울이면 엄청나게 눈이 오는 프랑스어권 스위스의 쥐라 산맥에 사는 사람들이 기계식 시계를 가장 잘 만드는 걸로 알려졌다. 아직도 스위스 시계가 귀금속으로 인정받는 배경이다. 다만 스위스만큼 유명하지 않을 뿐 독일 작센 글라스휘테에도 기계식 시계의 전통이 있었다. 글라스휘테를 독일 시계 산업의 본거지로 만든 사람이 아돌프 랑에였다. 포항의 박태준, 글라스휘테의 아돌프 랑에랄까.


문제는 글라스휘테 지역이 동독에 있었다는 점이다. 2차 세계 대전 후 작센 지역을 점령한 소련군은 시계 공방을 폐쇄시켰다. 사회주의 정부가 귀족 문화/계급제를 대변하는 고가 시계를 좋아했을 리 없다. 동독 정부는 1951년 이 회사들을 다 통합해서 국영 시계 회사 글라스휘테 우렌베트리베를 만들어버렸다. 아돌프 랑에의 후손들은 서독으로 몸을 피했다. A. 랑에 운트 죄네라는 시계 회사도 사라졌다.


1990년 독일이 통일되었다. 전 세계의 상황이 변했으니 독일 내부에서도 여러 변화가 생길 수 있었다. 글라스휘테 지역 시계 전통도 살아날 수 있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잊지 않는다. 아돌프 랑에의 증손자 발터 랑에는 독일이 통일되자마자 글라스휘테로 건너갔다. A. 랑에 운트 죄네를 다시 차리기 위해서였다. 전통이랄지 뒤끝이랄지.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견디고 포스트 냉전 시대에 되살아난 A. 랑에 운트 죄네는 되살아나자마자 어려운 숙제 앞에 놓였다. 대가 끊겼던 회사가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내려면, 그러면서도 유럽 사치품의 핵심과도 같은 지리/역사적 정체성을 드러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그 묘안이 2016년 대전 어딘가에 서 있던 김 위원장이 지원 유세를 하다 드러나버린 고가 시계의 창에 드러나 있지만…


허참 길게 안 적고 싶은데 자꾸 길어져서 오늘은 이만 하려 한다. 다음 시간에.


+2016년 당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전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의 지원 유세를 받은 박병석 의원은 이번 총선에도 당선되었다.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 유일한 6선 의원이라고.


++혹시 궁금하신 분 계시면 이어 올리겠습니다. 어차피 보시는 분이 점점 줄어들 것도 알고 있습니다. 궁금하신 점이나 고쳐 주실 점 있으신 분은 의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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