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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Mar 18. 2016

아담 리바인의 했던 말 또 하기

네가 좋아서 그래 베이비



캘리포니아에 사는 분 계신지? 나는 한두 번 가본 게 전부인데도 아직 그곳의 햇빛이 기억난다. LA의 햇빛은 1월에도 자동차 지붕을 열고 달릴 만큼 화창했다. 그런 데서 산다면 나라도 매일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 끝마다 베이비를 붙일 것 같다.

마룬 5의 슈거 속 남자가 딱 그렇다. 이 남자의 말에는 뒷면이 없다. 좋으니까 보고 싶고 보고 싶어서 찾아왔으니까 달콤한 사랑을 달라는 식이다. 슈거는 가사 첫 마디가 내용의 전부다. ‘난 다쳤어 베이비, 난 약해졌어/난 너의 사랑, 사랑 원해, 그거 지금 필요해’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내용이 반복된다. 말만 바뀔 뿐이다.

이건 한반도를 감싼 ‘썸’의 정서와는 전혀 다르다.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진짜 좋으면 재고 꾸밀 게 없다. 노래 속의 남자는 꾸밈없는 마음만을 반복한다. 이 노래에는 사랑 노래에 흔한 직유도 없다. 그럴싸한 말은 지어낼 여유도 없이 네가 좋다는 말만 하는 남자 같다.

세상엔 새벽 고속도로처럼 막힘없이 쭉 뻗은 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잇몸 건강엔 인사돌이고 사랑 고백은 직설이다. 직접적일수록 좋다. ‘네 사랑이 필요한 게 아니야/네 사랑에 깊이 파뭍히고 싶은 거야/네가 없을 때는 죽을 것 같아’ 같은 말은 글로 적어 두면 뻔하다. 떠올리기 쉽다. 입 밖으로 저 말을 꺼낸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떠올리긴 쉬워도 행하기는 어렵다.

마룬 5는 뻔한 노랫말과 뻔뻔한 무대 매너로 우리가 잊었던 사랑의 본질을 일깨운다. 사랑은 운동경기나 주식투자가 아니다. 표어보다는 표현이, 작전보다는 직진이 좋다. 슈거의 후렴구도 직설적으로 연인을 부른다. '네 설탕/그래 부탁해/와서 좀 주지 않겠니/나 여기 있어 왜냐면/작은 사랑과 작은 공감이 필요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듣는다면 기분이 꽤 좋을 것 같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재주라기보단 용기다. 느끼해보일 걸 알면서도,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가지고도 마음을 전하고 싶은 진심.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사랑은 기쁜 것이다. 우리는 사랑받으면 기뻐지고 사랑하는 대상이 나로 인해 기뻐할 때 행복해진다. 세상엔 많은 행복이 있지만 사랑만이 줄 수 있는 행복을 대신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슈거는 그 특수한 행복을 찾는 남자의 고백이다. 캘리포니아의 햇빛처럼 뜨겁고 직설적인 남자의 고백. 듣다 보면 행복을 찾는 에너지에 끌리는 듯 따라 흥얼거리게 된다. 슈거, 예스 플리즈.



앱 매거진 <뷰티톡>에 연재하는 원고를 여기 옮겨 둡니다. 노래 가사를 빌어 말하는 일종의 연애 칼럼입니다. 연애도 여자도 노래도 화장품도 잘 모르는데 이런 일을 하게 됐습니다. 당연히 부족할 겁니다. 어떤 형태의 지적이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브런치에는 연재 시점의 2주 후인 매주 금요일에 원고가 올라갑니다. <뷰티톡>은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 있습니다.


+원고의 내용과 맞지 않아 편집된 부분이 있습니다. 속 편해 보이기 위한 노력에 대한 것입니다.


간단하고 직설적인 말이라고 만들기 쉬운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가끔은 자연스러워 보이기 위해 엄청나게 인위적인 노력을 덧붙여야 할 때가 있다. 슈거의 단순한 가사와 영화 <웨딩 크래셔>처럼 결혼식장에 갑자기 마룬 파이브가 몰래 와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뮤직비디오도 마찬가지다. 대충 밴드 멤버들이 양복 입고 좋은 차 타고 아무 결혼식장이나 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속 편한 캘리포니아풍 러브송 뒤에도 치밀한 디테일이 있다. 연출자는 실제 <웨딩 크래셔>의 감독인 데이비드 돕킨이다. 여기 나오는 모든 부부는 사전 인터뷰를 마쳤고 많은 남편들은 취소 직전까지 갈 정도로 염려했다. 마냥 속 편해 보이는 보컬 애덤 리바인도 “우리가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날을 망치면 어쩌지?”라고 걱정했다고 한다. 그래서 애덤은 슈거를 부르고 나서 어쿠스틱으로 ‘쉬 윌 비 러브드’도 준비했다. 결과는? 부부들도 마룬 5도 그걸 보는 우리도 기분이 좋아졌다. 노래는 히트했고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1억을 넘겼다.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건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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