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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Mar 24. 2016

옷걸이에 걸어두는 오디오

베오플레이 A2-21세기 오디오의 한 풍경


베오플레이는 뱅앤올룹슨의 서브 브랜드고 A2는 이들이 2014년 말에 출시한 휴대용 블루투스 스피커다. 가격은 한국 기준으로 49만원. 외국에서의 가격도 400$정도이므로 괜찮은 편이다. 


하필 값을 제일 먼저 말하는 이유는 뱅앤올룹슨을 말할 때 가격 이야기가 한 번씩 나오기 때문이다. 뱅앤올룹슨이 X원만큼의 소리를 내느냐? 혹은 뱅앤올룹슨이 X원만큼의 가치가 있느냐? 같은 질문이 따라나오는 것이다. 뱅앤올룹슨의 물건이 비싼 데다 남다르게 생긴 것도 사실이라 이런 질문을 받기 좋게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뱅앤올룹슨은 가치의 구성요소를 짚어볼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


A2는 소리를 내는 물건이다. 소리 좋다. 하지만 소리는 A2의 전부가 아니며 여기서 하려는 이야기도 아니다. 방금 문장에서 [소리]와 [A2]에 다른 물건과 다른 개념을 넣어도 말이 되는 물건이 많다. 기능이 물건의 전부일 수는 없다. 물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매력일지도 모른다. 디자인과 인지도와 기능 등을 모두 합한 모호한 상태 말이다. 뱅앤올룹슨과 A2에는 그 매력이 있다.


매력은 짧은 시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뱅앤올룹슨은 거의 100년 동안 매력과 기능을 포함하는 자기만의 답을 찾아 왔다. 이 회사는 1925년 덴마크의 피터 뱅 씨와 스벤 올룹슨 씨가 라디오를 만들며 시작했다. 고가 오디오 업계의 경쟁자들이 남들과 비슷한 경쟁에서 이길 물건을 만드는 동안 뱅앤올룹슨은 어디서도 보지 못한 디자인의 물건을 만들기 시작했다. 


매력은 한 번에 나타나지도 않는다. 뱅앤올룹슨은 1960년대부터 헤닝 몰덴하우어나 야콥 옌슨, 데이비드 루이스같은 산업디자인의 명인들을 제품 디자이너로 채용했다. 데이비드 루이스가 특히 오래 뱅앤올룹슨과 관계를 맺었다. 그는 곡선과 직선과 광택을 과감하게 사용하며 뱅앤올룹슨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 결과 뱅앤올룹슨은 1978년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 스스로의 디자인으로 전시회를 열 수 있을 정도의 브랜드가 되었다. 좋은 물건의 답이 있긴 있다. 어디서나 통하는 모범답안이 없을 뿐이다. 뱅앤올룹슨의 지금 모습을 모든 사람이 좋아하지는 않을 수 있겠지만 이들이 답을 찾았다는 건 확실하다.


뱅앤올룹슨의 사세가 이들의 물건처럼 매끈했던 것만은 아니다.  뱅앤올룹슨도 2008년의 경제 위기에서 큰 타격을 입었다. 주가는  52$에서 8.5$까지 떨어졌고 이들은 휴대전화나 MP플레이어 사업부를 접어버렸다. 디자인을 이끌던 데이비드 루이스까지 2011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오래 쌓인 매력은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A2가 증거다.  


베오플레이 A2는 경제위기와 주력 디자이너의 부재를 견딘 뱅앤올룹슨의 대답이다. 뱅앤올룹슨은 2012년 일종의 하위 브랜드인 베오플레이라는 신규 브랜드를 출시했다. 스스로가 잘 하는 것인 음향가전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인데 뱅앤올룹슨의 가격을 떠올려 보면 베오플레이가 조금 더 싸긴 하다. 


디자이너도 다르다. 베오플레이 A2의 디자이너는 세실 만츠(Cecelie Manz)다. 덴마크 출신의 1972년생인데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그녀의 전문 분야다. 세실 만츠는 가구 전문 디자이너로, 그녀가 만든 미카도 테이블이 MOMA의 소장품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게 A2랑 무슨 상관이냐고? 바로 그거다. A2는 가전제품 디자이너의 문법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다. 그 점이 아주 중요하다.



현재의 가전제품 경향 중 하나는 우리가 알던 가전제품처럼 안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 무선 기술이 발달하고 음원을 재생하는 개념과 과정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면서 오디오는 점차 우리가 알던 모양을 벗어나고 있다. 전축이라고 부르던 스테레오 사운드 시스템은 거대한 육면체 모양이었다. 그게 거실마다 놓여 있고 뒤에는 손가락만한 케이블이 휘감겨있던 것이 먼 과거가 아니다. A2의 광고 이미지 중에는 옷걸이에 옷들과 나란히 걸려 있는 것이 있다. 지금은 그런 시대다. 음악과 음향기기가 우리 생활에 아주 가까이 들어와 있다. 이를테면 페도라와 바지 사이에도 걸릴 수 있을 정도로. A2의 광고 이미지처럼.


A2보다 더 좋은 무선 오디오가 있을 수는 있어도 A2같은 오디오가 있을 수는 없다. 미려한 알루미늄 케이스, 케이스를 감싼 미묘한 채도의 무광 도색, 그 위로 감기는 두툼한 베지터블 가죽 스트랩,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 모든 요소를 적절히 조합하는 감각을 가진 브랜드는 이 세상에 뱅앤올룹슨 하나 뿐이다. 기술과는 달리 이런 이미지는 따라할 수도 없다. 패션 브랜드를 생각하면 된다. 이미지를 베끼면 우스워질 뿐이다.  


냉정하게 짚어보자. A2는 비싼 게 사실이다. 시중엔 49만원보다 저렴한 블루투스 스피커가 많다. 무겁기도 하다. 1.1Kg의 무게는 이코노미 클래스를 탄다면 여행가방에 넣기도 부담스럽다. 휴대가 가능하지만 휴대용 블루투스 스피커라고 보기에는 곤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물건에는 분명 다른 가치가 있다. 뱅앤올룹슨 특유의 균형감이 돋보이는, 이래서 비싸구나 싶을 정도로 뛰어난 소리가 있다. 뱅앤올룹슨의 특기인 숙련된 알루미늄 제련술로 만들어진 케이스도 있다. 일상의 어느 풍경에든 집어넣기만 하면 분위기가 달라지는 디자인이 있다. 마지막으로 A2를 사면 '나는 이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고 구입한 사람 중의 하나'라는 기분 좋은 동질감도 느낄 수 있다. 이런 가치에 납득한다면 A2를 대체할 수 있는 스피커는 아무것도 없다. 선택은 당신 몫이다. 당신은 어떤 쪽인가?



인터넷 테크 매체 더기어 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뱅앤올룹슨이 홍콩의 고가품 전문 유통사에게 인수될 거라고  합니다. 시장이 뱅앤올룹슨의 손을 들어 주진 않았네요. 


++A2를 몇 번 만져본 적은 있었습니다. 의심할 나위 없이 좋은 물건입니다만 뭔가 애매합니다. 작지만 여행용으로 쓰기엔 조금 무겁습니다. 주택가의 원룸 같은 곳이라면 벽에 걸어놓고 메인 오디오로 써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저 가죽 손잡이가 마음에 듭니다. 만약 저걸 산다면 이유는 가죽 손잡이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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