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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Oct 26. 2020

상상과 극복

한국인 최초 월드시리즈 출전타자 최지만과의 2016년 인터뷰 


야구 선수가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야구가 일상이었어요. 아버지가 야구 감독이었고 형이 먼저 야구를 시작했어요. 사실 전 선천적으로 몸치에요.


몸치가 어떻게 메이저리그에 가요?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


스스로 본인의 가장 큰 장점을 꼽는다면? 

좌절을 빨리 하고 빨리 포기해요. 빨리 실패를 인정해야 다른 걸 할 수 있어요.


예를 든다면요? 

방출당해 트리플 A로 갔을 때요. 메이저리거가 마이너리그의 트리플 A로 가면 나태해져요. ‘내가 메이저인데 여기서 왜’ 이런 식이 되는데, 저는 빨리 올라가야 한다고만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미국으로 갔어요. 보통 야구하는 친구들과는 다른 길이었어요. 도전 정신이 있는 편인가요? 

메이저리그에서 한번 해보고 싶다기보다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서 메이저 못 올라가도 좋아. 좋은 경험 많이 하면 되지. 언제 이런 걸 해보겠어’ 싶어서 갔죠.


솔직히 시속 160킬로미터가 넘는 직구가 날아오면 무섭지 않아요? 그런 감정을 느낄 틈도 없나요? 

처음에는 ‘와 이거, 와...’ 이랬는데 좀 치다 보니까 익숙해졌어요.


그 처음이 야구 시작하고 처음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요, 메이저리그 가서요.


공이 달라져요? 

많이 달라져요. 총알이에요, 총알. 처음에 많이 애먹었죠.


진짜로 공이 달라요? 왜 달라요? 사람이 달라서? 

뭐라고 해야 되지? 구질도 다르고 스피드도 다르고 마인드도 달라요. 한국이나 아시아 애들은 변화구나 유인구를 많이 해요. 미국 애들은 그런 거 없어요. 어릴 때부터 승부해요. 문화가 달라요. 아시아 애들은 항상 한 해를 전쟁 치르듯 해요. 올라가야 하니까. 미국은 아니에요. 풀스윙을 돌려버려요. 계속 열심히, 편안하게. 그게 걔네 문화예요. 한국 문화는 ‘쟤를 이겨야 돼’라고 생각해요. 얘네는 경쟁이 아니에요. ‘내가 야구 계속하다 보면 잘되겠지’ 이런 마음으로. 얘네는 어릴 때부터 스윙을 막 해요. 우선 돌리고 보는 거예요. 우리는 ‘이거 안 치면 볼넷 나가겠지’ 하면서 안 쳐요. 이런 게 쌓이면 달라져요.


어릴 때 조언해준 사람은 있었나요? 

외삼촌이오. 논리적으로 뭔가를 왜 해야 하는지를 다 짚어주셨어요. ‘그냥 해’가 아니라 이걸 하면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알려주고 설득을 시켰죠. “이거 해.” “왜요?” “그냥 해.” 이런 사람도 많아요. 왜 해야 되는지 알아야 할 텐데. 모르고 하면 정말 막노동이죠.


‘왜’가 중요한 편이에요? 

나한테는 아주 중요해요.


“그냥 해”를 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잖아요. 

저는 ‘왜’가 되게 많아요. ‘왜 해야 되는 거야?’ ‘왜 도움이 돼?’ 보통 한국 학교에서는 “왜 해야 돼요?”라고 물으면 선생님이 잘 몰라요. 그러면 매를 드는 거예요.


미국에서는 왜인지 물어보면 잘 알려주나요?

다 알려줘야죠. 자기가 모르면 가르칠 수가 없어요. 한국은 어른한테 “많이 아세요?” 물어보면 “어, 많이 알아”라고 해요. 미국은 달라요. “난 아직도 잘 가르치기 위해서 공부하는 중이야.” 이게 달라요. 저는 공부를 많이 했어요. 집에서도 스스로 하는 걸 강조했고, 저도 스스로 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 습관이 미국에서 도움이 됐죠.


친구들도 야구 선수인가요? 

야구 안 하는 친구가 더 많아요. 대학생, 대학원생, 직장인 친구들. 야구 선수들은 친구가 다 똑같이 야구 선수예요. 전 그게 싫었어요. 일반인을 만나고 싶었어요.


일부러 다른 친구를 만든 거예요? 

네. 고등학교 때 교실에 들어갈 때면 가끔 어색했어요. 내가 먼저 아는 척하기가 힘들기도 했어요. 내가 키도 더 크고 운동부니까. 그래도 딱 보고 먼저 인사했어요. 예를 들어 전교 1등. 가서 인사해요. “전교 1등, 축하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 친분을 쌓았죠. 나이를 먹고 은퇴했을 때 뭘 할지 모르잖아요. 다른 일 하는 친구들이 다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최지만을 움직이는 동기는 뭔가요? 

작년에 발목 수술하기 전에 선생님이, 너 야구 이렇게 해야겠느냐고, 안 되겠다 그만하라고 했어요. 미국 기자들도 ‘최지만 올 시즌 아웃’ 이런 기사를 쓰고. 그 기사를 보고 ‘3개월 만에 재활 끝나고 올라간다’고 다짐했어요. 사람들이 나를 낮춰 볼 때 ‘그래 내가 보여줄게’ 이런 식이에요. ‘너희가 생각한 성적을 뛰어넘어줄게.’


그게 가장 큰 동기 부여예요? 

팬, 돈, 명예, 다 맞아요. 그런데 솔직히 도와준 분들 때문에 야구를 해요. 정말 힘들 때 저를 도와주신 분들이 있어요. 글러브 없을 때 사주신 분, 도구 사주신 분. 전 정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 분들 때문에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분들이 제가 성공할 줄 알고 도와준 것도 아니고 그냥 투자한 거예요.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한국 들어오면 다 만나요.


야구가 재미있어요? 

이제는 재미로 하는 게 아니죠.


언제까지 재미있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 그때까지는 미래를 보고 하는 게 아니라 노는 것처럼 야구했어요. 어리니까 그저 좋았던 거예요. 여름에 더워도 즐겁고. 그러다 미국에 진출해서 마이너리그에 갔어요. 경기를 하던 어느 날 밥 먹고 호텔로 걸어가는데 정말 친한 동료 선수가 호텔에서 걸어 나왔어요. 어디 가느냐고 했더니 잘렸대요. 거기는 잘리면 모든 짐을 (팔을 크게 벌리며) 이만한 검은 봉지에 다 싸줘요. 그걸 보고 여긴 매년 전쟁인 걸 깨달았어요.


어릴 때는 왜 재미있었나요? 잘하니까? 

아니요. 그냥 너무 좋았어요. 전 상상력이 풍부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마당이 좀 넓었어요. 그때 아버지가 배트 하나 갖다 주면 혼자 놀아요. 혼자 배트 들고, ‘던진다’ 소리쳤는데 아무도 없어요. 나 혼자 하는 거예요. 상상 야구를. 타이밍 잡고, 스윙하고, 던지고, 뛰어요. 알루미늄 배트를 던지니까 낑낑 소리가 나요. 그러면 아버지가 깨서 “뭐 해?” 하고 봐요. 나 야구한다고 해요. “누구랑?” 혼자. 그걸 보고 아버지가 ‘넌 야구해야겠다’고 했어요. 찻길에 차가 지나가면 공이라 생각하고 스윙했어요. 집 옆에 철물점이 있었는데 거기 가끔 모래가 들어왔어요. 모래를 주머니에 넣고 쌓아뒀어요. 거기에 스윙을 했어요. 방망이로 쳤어요.


아무도 안 시켰는데? 

네. 그냥 혼자 하는 거예요. 그게 알고 봤더니 허벅지 커지고 좋은 운동이었는데 왜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나중에 본 만화에서 똑같은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만화는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줘요. 그래서 전 어린이들에게 항상 ‘야구 보지 말고 만화 야구를 보라’고 해요.


정말이에요? 

제가 입스라고 공을 못 던지는 마음의 병이 생겼었어요. 그것도 만화를 보고 고쳤어요. 주인공도 일본에서 도전해서 미국 가서 혼자 있는데 실수로 빈볼을 던지고 입스에 걸렸어요. 그 만화를 보고 걔를 따라 했어요. 주인공이 뭘 보고 어떻게 운동하고, 이런 것. 그랬더니 풀렸어요.


상상이 정말 중요하네요. 

상상력과 창의력은 정말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상상한 이야기를 할 때 저는 절대 끼어들지 않아요. 그런 이야기 들을 때 누가 웃으면 웃지 말라고도 해요. 애는 진지하니까. 그 애의 창의력이니까.


그러면 운동은 몸으로 해요, 머리로 해요? 

머리로 하는 거예요. 물론 몸 전체가 타고나야 돼요. 하지만 센스와 습득력이 중요해요. 저도 미국 갈 때 스카우트 주변 사람이 ‘왜 잘하는 선수도 많은데 최지만을 뽑았냐’고 하더라고요. 스카우터가 이랬대요. “쟤는 긍정적이야. 파이팅을 많이 해. 항상 웃어. 못해도 웃어. 그런 걸 보면 적응 잘할 거야. 실력은 가서 키우면 돼.” 이런 식이었어요.


긍정적인 성격. 적응력. 그런 것도 포텐셜의 일부일까요? 

제가 갈 때 한국에서 7명이 갔어요. 그때 저는 여섯 번째로 적은 돈을 받았어요. 그런데 1위부터 5위까지는 다 한국으로 돌아갔어요. 지금은 저랑 일곱 번째만 있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야구를 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게 뭘까요? 

실력은 30퍼센트, 행운이 70퍼센트라고 생각해요. 실력만큼 운이 좋아야 해요. 실력은 기본, 노력도 다 기본으로 하는 거고. 나도 내년에 어떻게 될지 몰라요. 좌절할 수도 있겠죠. 그래도 좌절하면 뭐 해요. ‘왜 내가 여기서 안 될까’ 생각하면 우울증만 오고. 그러면 한국 들어가는 거예요. 극복해야죠. 빨리 벗어나야 또 올라갈 기회가 생기니까요.




에스콰이어에서 일하던 2016년 진행한 인터뷰다. 왠지 브런치에는 스포츠 보시는 분들 별로 안 계실 것 같지만 올려 둔다. 최지만 선수를 보며 들었던 이런저런 생각은 내일 모레의 이런 이번 주에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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