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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Nov 11. 2020

"책 잘 쓰고 있어?"

그런 이야기는 비밀로 해 주셔도 되는데


"책을 잘 쓰고 있는가 인간" 같은 기분...이랄까. <모노노케히메>의 한 장면. 본문과는 아무 상관 없다.


아르바이트하는 회사의 높은 분께서 어느 날 갑자기 책을 잘 쓰고 있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놀랐다.  어떻게 아셨지. 내가 대단한 책을 쓴 것도 아닌데. 아니 그러고 보니 아실 수도 있지. 일반 시장에 판매되고 있는 책의 저자니까.


나는 뭐라도 잘못한 사람처럼 대답했다. "별로 많이 안 팔렸구요." "그렇다고 책이 나온 게 싫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요." "그렇다고 뭔가 제게 엄청나게 도움이 된 것도 아니구요." 메밀면처럼 뚝뚝 끊기는 말들이 이어졌다.


문제는 이 대화가 이루어진 곳이 만원 엘리베이터라는 점이었다. 더 난처했다. 내 앞뒤 안 맞는 이야기를 혹시 엘리베이터 안의 다른 분들이 들으셨을까. 뭐라고 생각하실까. '책을 냈다고?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인데? 요즘엔 아무나 책을 내나봐?' 같은 생각을 할까. '책 냈다고 엄청 으스대네' 라고 생각하려나. 뭐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지만. 아니면 다들 이런 이야기 따위 신경도 안 쓸까. 그것도 별로 유쾌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기분 사이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건물이 별로 안 높아서 다행이었다.


모르시는 분이 더 많을 거라서 말해 두면 나는 실명 저자로 책이 세 권 나왔다. 별 생각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충동구매로 집 안에 들어온 냉장고들처럼 책이 벌써 세 권이나 나와 버리고 말았다.


아주 감사한 일이다. 나는 저자이기 이전에 독자였고, 앞으로 얼마나 더 저자 노릇을 할 수 있을 지는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도 독자일 거고, 한국 출판 시장의 소비자일 거라는 건 확실하다. 저자가 됐다는 건 한국 출판 시장 소비자들의 선택지 중 일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에 아주 큰 자부심을 느낀다. 저자 되기의 난이도가 낮아진 세상이지만 명예는 명예다.


내 기쁨은 내 기쁨이고 세상은 그와 별개다. 내 책들은 아직 한국 도서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지 못했다(앞으로라고 딱히 다를 것 같지 않다). 어디어디 추천도서라거나 명사의 책꽂이에 있는 책도 아니다. 그럴 만한 깜냥의 책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내가 잘 안다. 책이 나왔다고 어디 가서 으스댈 세상이 아닌 것도 알고. 저서를 낸다는 걸 숫자나 수익으로 환산하면 그렇게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다. 책의 수익률을 구체적으로 말하다 보면 구차해지니까 별로 높지 않다는 정도로 정리하자.


나는 남의 말을 들어 페이지로 옮기는 에디터라는 일로 사회 생활 경력을 잇고 있다. 그 덕에 세상에 뛰어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그 사람들이 책을 쓰지 않는 이유 역시 알 것 같다. 별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나처럼 이 일에서 명예와 의미를 찾아 기뻐하지 않는다면야. 나처럼 어쩌다 원고 생산이 직업이 되었으니 이런저런 글을 팔아 먹고 살아야 하는 처지가 아니라면야. 세상엔 책 쓰기 말고도 스스로를 증명하거나 여가 시간을 보내는 상쾌한 방법이 많다.


책이 나오고 나서 가장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또 하나 있다. 생각보다 많고 정성스러운 리뷰다. 책이 막 잘 되지는 않았아도 내 생각보다는 많은 분들이 내 눈에는 부족해 보이는 책을 열심히 읽어 주셨다. 요즘에는 블로그나 SNS 등 자기 매체를 가질 수 있는 시대니까 읽은 후의 감상을 올려 주시는 분도 많다. 이 자리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나는 내 책 리뷰를 열심히 본다. 내가 이렇게까지 할 일이 없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찾아서 본 적도 있다. 다들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하다. 왜일까? 단순히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같은 건 아니다. 내가 남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이겠어. 잘 팔려서 내게 열광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아니다. 난 헛꿈을 꾸는 성격이 아니다. 그냥 내 실명을 적어둔 뭔가가 세상에 나갔는데, 그게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가 궁금하다. 사람들이 자기 게시물에 좋아요가 눌리길 바라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렇게 나름 차분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리뷰가 적혀 있는 제목을 클릭도 못할 정도였다.


리뷰들을 보다 깨달았다. 나쁜 평은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 나쁜 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분류한다. 말이 안 되는 것과 말이 되는 것. 말이 안 되는 평은 넘기면 그만이다. 길을 가다 새똥을 맞는 것과 비슷하다. 운전을 오래 하는데 하늘에 새가 많으면 새똥을 맞을 확률도 높아진다. 책을 낸 이상, 아니 남 눈에 띄는 뭔가를 낸 이상 말도 안 되는 비난은 피할 수 없다. 그만큼 말이 되는 비판이나 비난이 정말 귀하다. 당장은 창피해서 다시는 대문 밖으로도 안 나가고 싶지만 그런 수치심이 모여야 조금 더 나은 뭔가가 될 수 있겠지. 오래오래 마음에 새겨둔 지적들이 있다.


나는 좋은 평가가 더 불안하다. 예를 들어 첫 책 <요즘 브랜드>의 경우, 젊은 사람들 중에는 이 책에 나온 이야기를 진지하게 본인의 삶에 겹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안 된다. 그 책에 나온 브랜드의 사례는 브랜딩이라는 모호한 전략에까지 예산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있는 회사들의 사례다. 개인 단위에서는 우선 (신체적 혹은 사회적)생존과 (신체와 재무 등의)건강이 먼저다. 글로벌 브랜드의 신화화된 이야기와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겹치며 '이 책의 이러이러한 말이 좋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인 내 입장에서 봤을 때 그게 이 책을 읽는 바른 자세는 아니다.


그 외에도 필요 이상으로 내 책들을 좋게 봐 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그런 걸 보면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달콤한 거짓말을 준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책은 저자와 출판사가 내지만 책을 해석해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건 결국 독자다. 내가 안심을 팔았다면 그걸로 돈가스를 하든 갈아서 햄버거를 하든 내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안심을 팔았는데 그걸 차돌박이처럼 얇게 저며 먹는 사람이 있다면 좀 흠칫한다. 내 책으로 좋은 뭔가를 얻었다면 그게 뭐든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그 모든 게 지금 만드는 책들의 동기가 된다. 나는 내가 만든 걸 마냥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이 못 된다. 내 책의 어느 부분이 좋은지는 몰라도 내 책의 모자란 부분, 그때 나의 한계는 내가 꽤(어쩌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부끄러워도 당장은 책을 좀 더 내보고 싶다는 결론에 이른다. 내가 보기에 모자란 내 책들로 저자로의 내 경력이 끝나면 영 마음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니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할 수 있는 한 계속 책을 적(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앞선 <요즘 브랜드>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2편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정했다. 개인이 정말 자신들의 브랜딩을 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면구스러우나 문장을 생산하는 한 나는 계속 모자라지 않을까? 글의 구조에서 혹은 개별 문장이나 표현에서, 일정 비율의 실수나 실패 확률은 제품의 불량률처럼 수학적으로 항상 있을 것이다. 그게 늘 무섭다. 그게 겁나서 아무것도 만들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런 생각으로 실명 이름 달고 원고를 만든 게 몇 년, 그러다 보니 조금 뻔뻔해졌다. 결국은 오금을 떨면서도 뭔가 겁나는 것 앞에 맞서야만 얻어지는 것들이 있다. 그걸 뭐라 불러야 할지는 몰라도, 지금의 나는 그런 것들을 조금씩 느낀다. 앞으로 나올 책들에도 분명 모자라고 부족한 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보다 더 나은 걸 만들기 위해서라도 또 그 다음의 뭔가를 만들고 싶을 것이다. 시장이 나를 내치기 전에 기회가 계속되기만 바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도 이런 게시물을 올린다. 이 게시물을 올리고 나면 다른 곳에 보낼 원고를 하나 더 해야 한다. 일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일만이 줄 수 있는 재미를 알아버려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빨리 또 다음 원고를 해야지. 원고가 또 늦어지고 있고 이 게시물도 또 하루 늦었다. 하 또 하나의 11월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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