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찬용 Nov 17. 2020

(코비드-19시대의)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전염병 시대의 관혼상제-1편 

이런 영화가 있었답니다. 아시는 분?




내가 사는 곳에서 결혼식장인 서초동까지 갈 때 평소 주말이었으면 한시간 반은 잡아야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소요 시간이 줄어드는 대신 조금 더 사람 사이에 끼어 가야 했다. 그날은 대중교통에도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도로는 텅 비어 있었다. 코비드-19의 공포가 극심하던, 그리고 다들 내심 이게 얼마 오래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2020년 3월 1일이었다. 내 전 직장 동료가 결혼하는 날이기도 했다. 


조용한 일요일 오전에 나는 주섬주섬 셔츠를 꺼내고 있었다. 평소에 잘 안 입는 정장을 결혼식 때는 입는다. 기껏 있는 정장을 입을 날이 그런 때 뿐이기도 하고, 내가 옛날 사람이라 차려 입는 게 예절의 일부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덜 차려 입은 사람을 예절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내 기준이 그럴 뿐. 그 친구가 결혼한다고하니 괜히 애처럼 이런저런 옛날 생각이 나기도 했다. 한창 고민 많던 때를 같이 보낸 동료의 결혼에 나름의 예를 다하고 싶었다. 


그래서 양복 챙겨 입고 대문 밖으로 나와 혹시 옷이 구겨질까 재킷은 차 앞에서 벗고 운전 잘 해서 결혼식장 근처 은행에 도착해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바로 전날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것. 현금을 카드로 인출할 방법이 없었다. 그날은 운전을 해서 교통카드도 필요 없었기 때문에 거기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나는 단정한 양복 속에서 혼란스러워졌다. 급한 대로 ATM 코너가 있는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는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돌아오는 반응은 뻔했는데, 역시 나를 바이러스 보듯 했다. 코로나 시대의 초입이라 모르는 사람들끼리의 대화 자체에 공포가 있었던 때다. 내 부탁도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적막한 일요일 낮, 양복을 입고 마스크를 낀 생면부지의 남자가 "제가 제 몫의 현금까지 인출해주시면 계좌로 보내드릴게요." 라고 부탁한다면 나라도 그때 나를 위아래로 훑던 그 아저씨와 똑같이 말했겠지. "나 그런 거 안 해요."


그때는 내가 대납해야 하는 축의금까지 있었다. 그날 결혼한 친구가 청첩 모임에서 나와 함께 초대했던, 전 직장에서의 내 보스가 내게 맡긴 돈이었다. 그가 나와 내 전 보스에게 연락해 청첩 저녁식사를 한 건 지금도 내게 기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청첩 자리에서 그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날 나는 세상 사람을 이렇게 나눠 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연락해 결혼 소식을 전하는 게 반가운 사람, 아니면 싫은 사람. 그 친구는 전자였다. 


우리가 함께 일하던 때가 마냥 쉬운 상황이 아니긴 했다. 지금 생각하면 요즘 세상에 마냥 쉬운 업황이 어디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때의 그와 나는 같이 열심히 즐겁게 일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까 오랜만에 청첩 모임에도 불러준 거라고도 생각한다. 그 모임이 지난 며칠 후 지갑을 잃어버렸다. 지갑을 잃어버린 건 태어나서 거의 처음이라 개인적으로 보통 일이 아니었다.지갑은 둘째치고 현금을 인출할 수단이 없는 게 큰 문제였다. 


청첩 모임에 함께 갔던 예전 보스도 그날 아침 갑자기 메시지를 보냈다. 본인의 배우자께서 외출을 아주 불안해하기 때문에 못 갈 것 같다고. 어쩔 수 없이 축의금만 보낸다고. 그런 식의 불안과 공포가 온 수도권을 감싸고 있었다. 공포는 내 전 보스를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하고 지나가던 시민의 선의도 막아세웠다. 그렇다고 마냥 가만히 은행 ATM 앞에서 나와 내 전 보스 대신 돈을 뽑아줄 사람을 찾을 수도 없었다. 결정했다. 내 현금보유와 상관없이 결혼식은 열릴 것이었다. 정 안되면 나중에라도 사정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결혼식장으로 가야 했다. 


다행히 식장 앞에서 그때 함께 일하던 다른 분을 만났다. 마침 그 분이 현금을 인출하지 않아 그분께 현금 인출을 부탁하고 돈을 보냈다. "못 뵈었으면 큰일날 뻔 했네요." "뭐 그런 걸로 그래요. 편의점 수수료는 내가 낼게." 같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아무도 없었다. 길에도, 편의점 안에도. 


그때는 결혼식 등의 집합명령 제한이 떨어지지 않았을 때였다. 아직 수도권 대규모 감염이 일어나기 전이었지만, 다들 일사불란하게 외출도 안하던 시절이었다. QR 체크인도 온도 체크도 없고, 그냥 마스크만 착용하던 때였다. 그러나 사람이 아프고 병이 돌아도 사회적 의식이라는 건 멈출 수 없다. 그날의 식장은 내게 사회적 의식의 힘을 보여주는 산 증거같았다. 공포도 결혼처럼 큰 약속을 잡아세우지는 못했다.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입었고 신랑은 부모님과 함께 하객에게 인사를 건넸다. 좀 과장하면 나는 그 자리에서 문명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감동하고 감탄했다. 


지인의 결혼식장에 가면 종종 어른을 보는 아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신랑이나 신부라도 마찬가지다. 한살씩 나이가 들 수록 결혼이라는 자리에 초대되는 일이 줄고 결혼 당사자의 나이가 어려진다. 이제 나보다 어린 신랑이나 신부를 보면 나는 몸만 늙고 정신적으로 미숙한 동생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몇 년 먼저 태어나서 무슨 경험을 했든 결혼이라는 경험은 못했으니까. 나는 결혼이라는 패밀리 비즈니스 겸 사랑의 정상회담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건 뭐랄까 초등학생에게 금융 파생상품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좋은 초등학생은 그런 것도 알 수 있겠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별로 좋은 학생이 아니었다.


양복을 입고 결혼식장에 선 친구도 어른처럼 보였다. 오늘의 신랑인 내 기억 속 그 친구는 섬세하고 재치 있는 남자였다. 나름의 방향을 찾아가며 쌓아온 건전한 인생관과 개인적인 기호가 있고, 좋은 걸 알아보는 눈이 있고, 그럼에도 그런 것들을 여봐란듯 드러내지는 않는 품위가 있는 친구였다. 내가 그 친구를 제대로 봤다면, 그날 결혼식의 사회자가 그에게 시킨 만세 삼창과 짖궃은 대사 복창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내가 알던 그라면 그런 제안을 별로 내켜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조금, 약 0.5초 정도, 식순에는 방해되지 않지만 내게는 느껴질 정도로, 잠깐 멈춘 후 크게 외쳤다. 만세, 만세, 만세. 내게는 그 만세가 어른이 되었다는 종소리처럼 들렸다. 


잔치를 했으니 밥을 먹어야지. 아직 단체 식당에 비말 차단용 아크릴이 없었다. 다들 조심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 망설이며 공용 집게를 써서 음식을 담아 뷔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3월 1일이었으니 아직 세세한 방역 관련 수칙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음식이 맛있었다. 멋은 안 부렸는데 성의가 있는 동네 뷔페 느낌이었다. 왠지 이 뷔페 메뉴도 그 친구와 비슷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축하의 마음을 담아서 양껏 먹었다.


지금 돌아보면 2020년 3월 1일은 피부에 느껴지는 공포에 비해 안전한 날이었다. 지금 자료를 찾아보니 3월 1일 누적 확진자 수는 3526명. 이 환자 중 상당부분은 신천지 대구 교회 관련이었다. 평소같으면 갈 엄두도 안 나는 일요일 낮 서초역 앞 사랑의 교회가 텅텅 비었지만 3월 1일 서울의 신규 확진자는 8명에 불과했고, 누계도 82명 뿐이었다. 이때는 우리 모두 몰랐을 것이다. 식당마다 전화번호나 QR코드를 체크해야 하고, 3단계 직전까지 방역 수칙이 올라가고, 하루에 100명 이하로 확진자 수가 내려가면 안심하고, 차박이 유행하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합병하는 등의, 이런 세상을 말이다. 


나 역시 그때를 돌아보니 내 앞날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모든 게 그날 날씨처럼 안개가 껴 있었고, 그때 내가 확실히 알던 건 거의 없었다. 코비드-19 유행과 겹쳐서 2월 말에 나온 내 책의 홍보를 전혀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곧 다음 친구의 결혼식이 있다는 것만 알았다.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처럼 결혼식장에서마다 만나는 미스테리한 여주인공은 없었지만, 나는 곧 또 다른 결혼식에 가야 했다. 


다음 주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책 잘 쓰고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