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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Dec 08. 2020

(코비드-19시대의)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03- 야외 결혼식

주말 결혼식에 갈 때는 왜 늘 늦게 되는 걸까요. 저만 그런 걸까요.


마침 바로 다음 주에 결혼식이 하나 더 있었다. 이번에는 야외 결혼식이었다. 장소는 용산구의 어느 공원. 늘 지나치기만 하던 곳이었다. 시내에 있는 인상적인 곳들이 으레 그렇듯.


이번 결혼식에도 마음같지 않은 일이 생겼다. 이때는 코비드-19가 걱정되어서라도 차를 몰고 이동하던 때였다. 이때도 차를 운전해 청첩장에 적혀 있는 권장 주차장으로 갔다. 갔더니 주차장은 폐쇄되어 안에 들어갈 수도 없는 상태였다. 공원은 열지만 부설 시설은 닫고, 차로 이동하는 게 대중교통보다 안전할 텐데 차를 댈 수 있는 곳을 닫아둔다라. '코비드를 맞은 21세기 서울 공무원이 했던 일 시리즈' 에피소드집을 낸다면 적어두고 싶은 이야기였다.


어차피 나는 그런 무리들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다. 주말의 주차장 개방 같은 일이라도 생각을 해서 결론을 내고 책임을 지는 결정을 내리는 건 나름의 역량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 역량이 없다는데 별 수 없다. 주변에 주차할 곳을 찾았다. 주차장을 닫아둔 덕에 이미 인근 도로가 불법주차 파티가 되어 있었다. 나도 그 파티에 끼기로 했다. 버스 뒤에 차를 대고 식장으로 향했다.


방역절차는 더욱 강화되었다. 야외 결혼식이라도 체온을 체크했다. 체온을 체크한 사람만 옷에 일회용 스티커를 붙이고 결혼식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온도 측정 기구는 한 손에 들어가는 소형 체온계였다. 온도를 파악하는 카메라보다는 저렴한 기구겠지만,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체온 검사가 일상이 됐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체온 검사 성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이날 나를 초대한 사람은 여성 동료였다. <에스콰이어>라는 잡지에서 알게 된 같은 팀 후배 에디터였다. 말이 별로 없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기분이 좋으면 말이 많아지고 술을 좋아하는데 취하면 또 말수가 적어지고 글이 날카롭고 인터뷰 기사는 놀랄 만큼 좋은 분이었다. 나는 도저히 하지 못하는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서 신기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그건 재능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남편 되실 분은 대학교 때부터 만났다는 대학 동기였다. 서로 전공은 달랐는데 뭔가 교양 수업에서 알게 되었다고 들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수업 아니면 동아리였을 것이다. 남자친구의 직업은 엔지니어, 사실은 나와도 한번 만나본 적이 있었다.


우연히 한번 둘이 축구 게임 위닝 일레븐을 한 적이 있다. 후배와 둘이 술을 마시다가 그 자리에 남자친구분도 왔다. 축구 게임은 그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게이머들을 홀리곤 한다. 우리도 그날 처음 만났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게임에 집중했다. 내가 겨우 이겨서 아주 기뻤다. 그런 두 분이 결혼하게 된 것이었다.


그때 한번 본 신랑의 인상은 늘 달리기 대회에서 우승하는 그레이하운드같은 느낌이었다. 몸에 군살이 없고, 목이나 허리 등 관절이 본연 그대로의 탄탄한 직선과 날렵한 곡선을 그리고, 그런 사람 특유의 자연스러운 당당함이 있었다. 보는 사람을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당당함이었다. 식장 앞에 선 신랑께 인사를 건넸더니 "찬용…선배?"라며 알아봐 주셨다. 이리 고마울 데가. 한층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신부 하객의 도리인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에게 수선스러운 칭찬하기'를 하러 신부에게 갔다.


그날의 신부였던 후배는 큰 나무 아래 있었다. 야외 결혼식이라 대기실이 없었기 때문에 초록 나무 아래서 흰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멀리서부터 보였다. 색 대비부터가 인상적이라 잘 보일 수밖에 없었던데다, 나는 이미 신부에게 걸어가는 길에서부터 감동하고 있었다. 감동한 이유는 지난번 결혼식과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 둘이 뭔가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삶의 다른 막으로 간다는 사실을 남들 앞에서 알리는 거니까. 이런 사실에 뭉클하는 걸 보니 내 안의 호르몬 분비량이 달라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선을 피우러 갔지만 막상 그 나무 아래에서 나는 많은 말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잠시 말을 잃었다. 일하며 매일 보던 사람을 결혼식장에서 봤을 때 그렇듯 그날 후배는 아주 예뻐져 있기도 했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는 게 너무 멋있기도 했고, 요즘 세상에 남자가 여자에게 '너무 예쁘다'같은 말을 하는 게 관점에 따라 실례이기도 했고, 의외로 내가 여성의 외모 칭찬같은 방면에서는 좀 수줍어하기도 했다(어떤 부분에서는 좀 뻔뻔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나는 입을 잘 떼지 못하다 하나마나한 말을 하고 말았다. "축하해요. 왜 이렇게 키가 커졌어요?" 후배가 경쾌하게 답했다. "선배 신발 굽이 십이센치야."


내가 느끼는 요즘 결혼식 트렌드는 주례 생략이다. 이날도 주례가 없었다. 대신 신랑과 신부측 부모님께서 각각 축사를 하셨다. 재미있는 주례는 고난도의 스피치이고 고난도의 스피치는 이만저만 준비가 필요한 게 아니다. 반면 부모님의 축사는 일반 주례에 비해 훨씬 큰 감동이 보장되어 있다. 그날도 그랬다. 옆에 있던 동료 에디터도 신부 부모님 말씀에 눈물을 흘리며 생 로랑 재킷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신랑 아버지의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우리 아들은 늘 잘 해서 신경쓸 게 없었다"고. 그 이야기 옆에 있는 신랑은 시상대의 메달리스트처럼 웃고 있었다.


축가가 인상적이었다. 대학에서부터 친했다는 친구분들께서 7명쯤 나와 노래를 불렀다. 곡명은 장범준 씨의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 ‘노래를 프로급으로 하지 않는 대학 친구 7명이 친구 축가로 부르기 좋은 노래 베스트 5’ 안에 들 법한 노래였다. 이런 노래는 노영심 노래처럼 좀 덜 잘해야 제맛이다. 프로급의 기량이 아닌데 성심성의껏 할 때 느껴지는 진한 진심이 있다. 그날의 신랑 신구 친구분들은 그 면에서 완벽했다.


친한 사람들끼리 전깃줄의 새들처럼 나란히 앉아 이런 이야기를 계속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게 한국식 결혼의 묘미다. 이날은 그럴 수가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의자들이 모두 1m 간격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비드-19 시대의 결혼식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풍경이었다. 거리두기 수칙에 따라 앉은 하객 사이에 난 버진 로드로 신부가 걸어갔다. 모두 마스크 속에서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쳤다.


이번 결혼식장에는 식사가 마련되어 있었다. 공원으로 온 출장 뷔페였다. 나란히 앉거나 하는 등의 방역 원칙이 있었지만 한국형 결혼식에서 그게 가당키나 한가. 모두 커틀러리를 한 칸씩 옆으로 밀고 당겨서 보통 테이블처럼 나란히 앉아서 먹었다.


업계 에디터 동료의 결혼이니 하객들끼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날의 지인 하객들은 나의 전 직장인 남성잡지의 에디터 분들이었다. 내가 알던 분들은 이미 많이 그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분들이 그 매체에서 좋은 기사를 만들고 계셨다. 그때 우리가 아등바등 했던 것들이 지나고 나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매체의 이름만 남아 계속되는 걸 보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여러 가지 일에 기뻐하고 슬퍼했나 싶기도 하고. 별 수 없다. 특정 상황에 몰리면 보통 사람들은 하나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월간지는 사람을 좀 몰고 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늘 마감이 있으니까.  


그날 가장 신경 쓰인 건 날씨였다. 비가 오는 건 아닐까. 야외 결혼식이니 비가 오면 곤란했다. 실제로 결혼 전날까지는 엄청나게 맑았는데 결혼식날은 비가 오기 직전처럼 흐려졌다. 기분이었을지 몰라도 한두 방울 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식사를 마칠 때까지 비가 내리지 않았다. 비는 그날 밤엔가 다음날 새벽에 아주 많이 왔다.


그때 그 결혼식장의 친구들은 모두 잘 살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사정으로 모두 이직했다. 생 로랑 재킷으로 눈물을 닦은 친구는 패션 e-커머스 회사의 팀장님이 되었다. 그날 주인공이었던 신부는 다른 잡지에서 에디터를 하고 있다. 여전히 날카로운 글과 대단한 인터뷰를 만든다. 신부의 남편은 여전히 같은 회사를 다니는 걸로 알고 있다. 그 이후로 위닝 일레븐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상대전적은 내가 근소히 앞선다. 그러면 뭐해. 그분은 일가를 이루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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