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이 이야기의 마지막 결혼식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마지막 결혼식은 주인공의 결혼식이다. 로맨틱 코미디다운 기승전결을 겪고 미모의 휴 그랜트는 미모의 앤디 맥도웰과 끝내 맺어진다. 90년대 영화 특유의 '사랑이 최고야' 같은 분위기가 있다. 반면 2020년대에 맞은 나의 네 번째 결혼식은 내 결혼식이 아니었다. 이날도 조금 늦게 일어나 관혼상제용 양복을 꺼내 입고 딱 한 가지 아는 방법으로 타이를 맸다.
오늘 나를 초대한 사람은 사진가였다. 알고 지내며 친해진 지는 약 6년쯤 됐다. 지금은 없어진 잡지에서 나는 에디터로, 그는 사진 스튜디오의 직원으로 일하다 가까워졌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는데 친해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성격이 별로라서 그럴 수 있겠으나 원래 자기 흉은 자기가 잘 모르는 법이라 그런 건 계속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친해졌다 싶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다른 점이 많았는데 일에 대한 생각은 비슷했다. 나도 그도 서로의 직장을 떠났지만 그 후에도 일을 몇 번 같이 진행했다. 사진에서나 태도에서나 믿을 수 있는 전문가였고, 개인적으로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프로로서의 그가 일에 대한 내 생각을 잘 알아준 덕분에 내 커리어의 중요한 순간을 그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근 2년간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매거진 B 지샥 편과 매거진 F의 초콜릿 편이다. 왜 중요한지 설명하려면 별도의 게시물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말이 길어지기 때문에 접어두고, 그는 그 두 가지 이슈를 만드는 현장에서 사진가로 함께 해 주었다. 좋은 사진을 찍어 준 건 물론 여러 상황에 의연하게 대처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축의금을 더 내야 했구나 싶을 정도로 큰 신세를 졌다.
2019년 크리스마스가 오기 며칠 전 우리는 도미니카공화국의 비포장도로에서 덜컹거리는 트럭 짐칸 위에 앉아 있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를 보겠다고 둘이서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건너 여기까지 왔다. 친구는 평소에 강남구의 스튜디오에서 귀금속같은 걸 찍던 사람이다. 그 사람이 적도 근처까지 와서 픽업트럭 짐칸에 앉아 '내가 여기에 어쩌다 와 있나' 싶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그가 찍어준 내 사진을 보면 내 표정도 비슷했다.
우리를 태운 픽업트럭이 농장에 도착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적도 근처라 일년 내내 덥다. 친구는 반팔을 입었지만 나는 숲 속에 벌레가 많을 것 같아 위아래로 긴팔을 입었다. 안타깝게도 내 예상이 맞아서 벌레가 많았고, 친구는 온 팔꿈치와 다리가 모기 자국으로 빨개진 채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눌렀다. 그리고 산토도밍고를 떠나는 날까지 반바지를 입지 않았다.
우리는 카카오 농장 곳곳에서 카카오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그동안 친구는 그 광경을 카메라로 촬영했다. 우리가 갔던 카카오 농장은 야생의 숲에 가까웠고 카카오 열매만 봐서는 전혀 초콜릿이 연상되지 않았다. 생 카카오에서는 초콜릿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카카오의 씨를 빼서 발효시킨 걸 볶고 나서 별도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초콜릿이 된다. 사랑에 빠지기 전의 사람들이 특정한 시간과 절차를 거쳐야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되듯.
카리브 해를 바라보거나 카카오 열매를 쪼개서 과육을 구경하던 때에도 우리는 틈틈이 비슷한 걱정을 했다. 우리 과연 결혼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한다면 누구와 해야 하는 걸까. 결혼을 하긴 해야 하는 걸까. 안해도 그만이라면 이따금씩 찾아오는 '결혼 안하고 지금 뭐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은 올바른 신호일까 쓸데없는 착각일까.
산토도밍고의 더위와 아무 상관 없는 2020년 여름의 삼일로에서 나는 그때를 생각하며 잠깐 멍해져 있었다. 친구는 이제 그런 생각으로 멍해질 일이 없었을 것이다. 삶의 고민은 계속되겠지만 그래도 '결혼할까 말까' 라는 고민은 결혼으로 끝나니까. 그 친구의 결혼은 그와 내가 함께 하던 고민에서 적어도 한 명은 빠져나갔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내 눈 앞에서도 주차 관리 요원이 우회전해서 식장으로 들어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결혼식장은 신부 되실 분이 다니신다는 직장 건물 안에 있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대고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전광판에 신랑과 신부의 이름이 번쩍거렸다. 회사 건물에서 '신랑 ㅇㅇㅇ'이라고 적힌 내 친구의 이름을 보니 내 주변 독신남 친구가 또 한명 떠난다는 실감이 났다.
신랑은 한층 마음이 편해 보였다. 대규모 집합명령이 풀린 지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올해 결혼을 하는 커플의 꽤 큰 근심은 대규모 집합금지 명령 아니었을까. 이 명령 때문에 식을 미루거나 가족끼리만 식을 올린 후 나중에 알리거나 결혼식 후의 파티를 취소하거나 아니면 아예 결혼식을 취소하는 등의 여러 대응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아예 결혼을 취소한 사람도 있었으려나. 안타깝지만 있었을지도 모른다. 돌아보니 그 선택이 맞았던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어느새 여름이었다. 그때 코비드-19 방역 수칙은 상식을 넘어선 일상의 일부였다. 마스크는 생활 필수품이 되었기 때문에 기념사진을 찍을 때에만 모두 잠깐 마스크를 벗었다. 사진사 선생님만 마스크를 쓰고 촬영을 지휘했다. 평소 한국 사람들이 "웃으세요" 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는 때는 혜민 스님 강연과 결혼식 사진 촬영 현장이다. 나는 결혼식장에서 그 말을 들으면 시키는 대로 웃는다. 이날도 말처럼 이빨을 드러냈다.
사진을 찍고 결혼식장 뷔페로 갔다. 역시 거리두기 수칙에 따라 의자가 테이블 한 쪽에만 놓여 있었다. 지난번 결혼식에서는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이 의자를 옮겨서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는데, 이번에는 그러면 바로 직원들에게 제지당했다. 제지당하는 걸 몇번 보고 후배 부부와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그 후배는 나를 놀리는 걸 워낙 좋아한다. 나도 농담을 좋아하니까 1:1이라면 주거니 받거니 즐겁게 농담을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이 친구도 결혼을 해서 아내 되시는 분까지 합세해 나를 놀렸다. 이러면 상대 숫자는 2:1. 도무지 버틸 없었다. "실장님 결혼식에는 오셨으면서 제 결혼식엔 왜 안오신 거에요?" "그러게요. 왜 안오셨어요?" 라는 말 앞에서 나는 농담계의 백기 투항과 같은 헛웃음을 보냈다. 나 그때 해외 출장중이었다구.
접시에 다음 음식을 가지러 가는 길에 깨달았다. 그 주변에 앉아 있던 선후배 업계 지인들이 모두 결혼해 있었다. 나를 놀리던 후배도 결혼했다. 그 옆에 앉아서 조용히 밥을 먹던 후배 역시 결혼해 아내와 나란히 앉아 디저트를 먹고 있었다.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나갔나 싶었다.
이날 결혼한 친구와는 올해 도미니카공화국에 함께 가기로 느슨한 약속을 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우리를 안내해 준 로저와 친해졌기 때문이었다. 로저도 우리와의 만남이 즐거웠는지 다음에도 도미니카공화국에 오라고 초대했고, 나와 그 친구는 기꺼이 승낙했다. 그때 우리는 만나는 연인이 없었으니 우리의 일정만 조정할 수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일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우리는 종종 로저 이야기를 하면서 산토 도밍고에 또 가면 그때는 긴장해서 못 마셨던 술을 한잔 하기로 했다.
코비드-19가 전 세계에 덮히기 직전인 올해 1월 초에 뉴욕을 거쳐 도미니카공화국에 다녀왔다. 나 혼자서. 그새 친구에게는 연인이 생겼고 친구는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하기 시작했으며 결혼을 전제로 한 연인이 한때 취재원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건너야 하는 도미니카공화국까지 허락해줄 이유는 없었다. 나 혼자 도착한 산토도밍고에서 그때의 우리를 잠깐 생각했다. 산토도밍고에 또 간 이유도 결혼식 때문이었다. 2019년의 로저는 자기도 곧 결혼식을 하니까 그때 우리를 초대할 테니 시간이 되면 오라고 했다. 이때 이야기도 굉장했지만 여기에 적기에는 너무 길다.
로저 이야기까지 떠올려보니 올해는 남의 결혼으로 시작해 남의 결혼으로 끝났다. 시리즈 이름이 '네 번의 결혼식 한 번의 장례식'이라 여기까지만 적어두고 일단 접는다. 하지만 극장 밖에서 삶이 계속되듯 내 2020년에도 관혼상제는 계속 이어졌다.
코비드-19는 인간들의 접촉으로 전염되는 병이다.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특정 장소에 모여 축하를 하거나 축하하는 척이라도 하면서 마음을 전하거나 책무를 다하거나 둘 다 한다. 지구 온난화가 여름철 냉방을 막지 못하듯 전지구적 신종 전염병도 우리의 사회 활동을 막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아마도. 살아남기 위해 병을 피하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을 나눠야 하니까.
+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출연진이 모두 모여 작년에 단편을 제작했다. <레드 노즈 데이와 결혼식>이다. bbc에서 자선 목적으로 만드는 영상물이다. 25년 전 영화 주인공들이 또 한 번의 결혼식에서 만난다. 짠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 다음 주에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