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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Apr 07. 2016

상황의 맛

여덟 개의 도시, 여덟 번의 식사


그래미상의 수상 부문은 100개가 넘는다는데 좋은 식사의 조건도 그쯤 될 것 같다. 좋은 식사도 좋은 음악만큼 기준이 모호하지 않을까? 맛은 상황이나 개인에 따라 모두에게 다를 수 있다. 어딘가에 객관적인 뭔가가 있다 해도 내가 그쪽 세계를 거의 모른다. 그러니 적어도 이 자리에서 난 무슨 맛이 어떻다는 식의 맛의 본질은 말할 생각도 찾아볼 생각도 없다.사실 식사에서 맛은 전혀 안 중요할 때도 있다는 게 내 솔직한 의견이다.


지금 떠오르는 식당이 기억나는 이유도 다 다르다. 어떤 곳은 음식과 관계 없이 생각난다. 식당과 배경음악과 창 밖의 풍경까지 모두 나와 잘 맞았다든가 그때 그곳에서 그 음식을 사먹은 내 몸과 마음 상태가 기억난다든가 하는 것도 어떤 식사를 잊을 수 없는 이유가 되었다. 상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인상적인 식당에 상 이름을 붙여 보았다.



맛 상

꿩초밥(가명)

후쿠오카 어딘가에 있는 아주 작은 초밥집이다. 간판은 손바닥만하고 메뉴판은 없고 현금만 받는다. 다 먹고 나면 종이에 가격을 적어서 보여준다. 자리는 8석이나 될까 싶은 카운터 하나, 옆에 있는 비슷한 크기의 테이블이 하나. 도로변에 있지만 음악도 틀어두지 않은 가게 내부는 절처럼 조용하다. 카운터에 앉아서 초밥을 기다리면 접시 대신 놓인 이파리 위에 주인이 초밥을 바로 쥐어서 올려 준다. 거기서 나온 첫 초밥을 하나 먹었을 때의 기분도 아직 기억난다. 그 기분을 말로 옮기면 대충 이렇다. ‘세상엔 이것보다 더 훌륭해서 더 비싸고 먹기 힘든 초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이상은 궁금하지 않다. 내게 초밥은 여기까지면 됐다.’ 아쉽게도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종합상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 주말 점심 뷔페

(특히 샐린 디옹의 음악이 나올 때)

뷔페는 특성상 눈물 날 정도로 엄청난 맛의 뭔가가 있지는 않다. 그래도 벨라지오 호텔의 뷔페는 정말 훌륭했다. 드넓은 창 안으로 빛이 가득 들어왔다. 미국식의 두툼한 식탁보도 새하얗게 세탁된 채 테이블마다 깔려 있었다. 음식도 뷔페라는 장르에서는 최고 수준, 단정하게 차려 입은 요리사가 팬 케이크를 바로 구워 주었다. 갓 구워서 뜨거운 팬 케이크에 부드러운 버터를 녹여 먹고 있는 눈 앞엔 넓은 창 밖에 라스베이거스의 햇살과 벨라지오 호텔의 분수가 보였다. 셔츠를 입고 와서 허리를 곧게 펴고 앉은 채 조용히 음식을 먹고 있으니 셀린 디옹의 ‘마이 하트 윌 고 온’에 맞춰 분수 쇼가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완성도 높은 클리셰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때야말로 바로 그 현장이었다.


신선상

경남 함양 운곡리 면사무소 근처 백반집

잡지사에서 일할 때 천연기념물로 제정된 나무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4일 동안 2,000km를 넘게 달리느라 당시 타던 차의 4번 실린더가 터질 정도로 무리한 일정이었다(그 차가 워낙 낡기도 했다). 둘째 날,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느티나무인 함양 운곡리 은행나무를 촬영하고 나와서 밥을 먹어야 했는데 운곡리는 산 중턱에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라 유명한 식당 같은 것이 있기는커녕 문을 연 식당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 식당에서도 딱 하나 되는 음식이라던 감자국을 주문했는데…나는 신선한 돼지고기 등뼈의 질감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 국에 있는 모든 재료가 다 근처에서 나온 것 같았다. 근처의 배추, 직접 한 된장, 잡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던 돼지의 뼈. 좋은 재료로 바로 한 음식과 그 맛이라는 걸 거기서 깨달았다. 그런 맛의 감자탕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아차상

아카로아에 딱 하나 있는 피쉬 앤 칩스 가게

아카로아는 뉴질랜드 남섬의 주도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한 시간쯤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이다. 거리는 가까운데 길이 험해서 한 시간쯤 가야 도착한다. 초승달 모양 해변을 따라 만들어진 마을의 끝에서 끝까지 걷는 데는 한 시간도 안 걸리고 인구도 천 명이 되지 않는다. 거기 딱 하나 있는 피쉬 앤 칩스 가게는 그 동네에서 잡은 생선을 바로 대충 튀겨서 피쉬 앤 칩스를 만든다. 레시피랄 것도 비결이랄 것도 역사랄 것도 없지만 차가운 바닷바람 사이에서 뜨겁게 바로 튀긴 신선한 생선을 먹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이 확실한 기쁨이었다. 여기에 아까움 상을 주는 이유는 일하러 간 곳이라 갓 튀긴 뜨끈뜨끈한 걸 못 먹어서다. 음식을 촬영하느라 바로 먹지는 못하고 바닷바람에 차게 식어가던 걸 먹었는데 염치 불구하고 하나만 새로 튀겨 달라고 할걸 그랬다. 그 가게는 취재가 익숙한 곳이 아니어서 명함을 달랬더니 기름 묻은 냉장고 자석을 줬다. 냉장고 자석은 아직 내 방 서랍에 있다.


평화상

말레 홀리데이 인 근처의 태국음식점

몰디브 출장을 함께 갔던 어떤 회사의 부장님은 수도 말레의 태국 식당에서 우리 일행에게 실로 크게 분노했다. 당시 담당자가 서울에서 일을 엉망으로 처리해둔 나머지 현장에서 자잘한 문제와 불만이 쌓였기 때문이었다. 음식을 시키고 나서 기다리는 시간에 시작된 그녀의 분노는 스티비 원더의 고음처리만큼 길어서 그 테이블의 모두가 음식이 나온 후에도 수저를 들 수 없었다. 하지만 맛의 위대함이랄까, 그 태국 식당의 음식은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어서 식사가 끝나자 우리는 어느 정도 화기애애하게 출장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특히 그 집의 똠얌꿍은 내가 먹어본 똠얌꿍 중 가장 맛있었다. 보통 먹던 똠얌꿍처럼 묵직하게 기름진 국물이 아니라 담백해서 국물 안에 들어가 있던 재료의 밸런스가 모두 드러나 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는지 옆자리의 몰디브 사람들은 레몬그라스까지 다 씹어먹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이란 대단한 것이었다.


(서구)문명상

호바트의 스테이크하우스

그러고 보니 일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가장 극적인 한 끼로 기억나는 건 오스트레일리아 태즈매니아 주 호바트의 스테이크다. 호바트는 포경업이 융성하던 시절에 개발되어 후로는 더 개발되지 않은 아름다운 항구다. 고래 기름을 끓이던 솥도 아직 바닷가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때 우리는 꽤 지쳐 있었다.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서 지구 반대편 남반구의 남쪽 끝에 가까운 곳까지 갔으니까. 문제의 스테이크하우스는 고래 솥이 남아 있는 바닷가에 있었다. 위치도 위치인데 실내도 컴컴해서 포경업이 성행하던 시절로 돌아가 스테이크를 먹는 것 같았다. 스테이크도 우락부락했다. 모닥불에 구워 온 스테이크는 작은 사전만큼 두꺼웠다. 턱이 아플 때까지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나는 그때 서구 문명이란 이렇게 두꺼운 고기를 썰어서 강력하게 씹어먹는 야만적이고 도전적인 힘으로 지구의 끝까지 와서 고래 기름을 짜내며 번창한 거구나 라는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 아무튼 순록의 발자국처럼 크고 두꺼운 스테이크를 먹은 남자 여섯 명은 그 뒤로 일주일에 걸친 취재를 무사히 끝냈다.


사치상

취리히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취리히 에르메스 매장 근처 한가한 식당 앞에서 메뉴판에 쓰인 가격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카드 한도를 계산했다. 막상 들어간 리스토란테는 대충 먹고 나오기엔 너무 본격적인 분위기였다. 생각했던 대로 봉골레 파스타만 먹고 나가면 나를 담당하는 웨이터가 ‘흠 다시는 안 올 뜨내기 동양 남자로군’이라고 생각하며 코웃음이라도 칠 것 같았다. 나는 혼자 열등감에 휩싸여 구운 채소와 샴페인을 주문하고 파스타도 먹고 나서 적당히 구운 양갈비까지 시켜 먹고 나왔다. 나는 그냥 그런 보통 속물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하거나 낭비하는 버릇이 있다. 비싼 밥을 먹으면 둘을 한번에 한다는 장점과 후회도 두 배라는 단점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런저런 일로 좀 스트레스를 받았고 음…식사는 정말 맛있었다. 그날 내가 먹었던 음식은 다 적당히 익혀서 내놓는 미묘한 타이밍이 중요했다. 구운 채소와 파스타 면과 그 안에 들어 있던 조개와 양의 갈비살은 모두 이거다 싶은 순간에 팬에서 나와 접시에 담겨 내 앞에 놓인 것 같았다. 그때의 스트레스도 나중에 한숨이 나온 카드 영수증도 다 지난 일이 됐다. 남은 건 맛있었다는 기억뿐이다.


절약상

뉴욕 그랜드 센트럴 역 근처의 1$ 피자집


내가 아무리 허세로 가득한 속물이어도 혼자서는 주로 대충 먹는다. 뉴욕 여행의 마지막 밤엔 아무 정보도 없이 돌아다니다 문을 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랜드 센트럴 역 근처에 있는 피자 가게에서 한 조각에 1달러인 피자를 먹었다. 깨끗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역 근처의 골목에서 나를 비롯한 사람 몇 명이 주차해둔 남의 자전거 시트 위에 피자를 대충 올려놓고 우물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한 끼를 먹는다기보다는 기름이 떨어져서 국도변 주유소에 온 자동차 운전자 같은 느낌으로 콜라를 곁들여 피자 한두 조각을 먹고 각자의 목적지로 해산하듯 사라졌다. 나는 이게 도시 생활일까 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데서 생각한다 한들 답이 나올 리는 없다. 그러든 말든 피자는 맛있었다. 회전율이 빠른 음식점에서는 늘 바로 만든 걸 먹을 수 있다는 미덕이 있다. 갓 구운 피자는 맛없기 힘든 음식이다.



저녁 약속 없이 날씨 좋은 주말 오후에 오랜 친구와 적당히 번잡한 커피숍 같은 곳에서 나누는 그냥 그런 즐거운 대화를 생각하며 이 원고를 만들었다. 그럴 때 좋은 화제라면 역시 “뭐가 맛있었어?” 류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모두가 즐겁고 조금만 신경 쓰면 아무도 다치지 않을 화제는 삶에서 꼭 필요하다.


저 테이블에 함께 앉았던 사람들 중에는 아직 연락하는 사람도 이제는 만나지 않는 사람도 종종 연락하는 사람도 이제는 세상에 없는 사람도 있다. 모두 그 때의 한 끼를 기억할지, 다른 사람에게도 기억나는 한 끼였는지 궁금하다. 모두 잘 지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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