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세상
JTBC [선암여고 탐정단]의 PD 여운혁은 21년 동안 예능 PD였다. [응답하라]시리즈를 만든 신원호 PD의 전작은 KBS ‘남자의 자격’이다. [슈퍼스타 K]의 Mnet 김용범 PD도 드라마 [칠전팔기 구해라]를 연출했다. 예능 프로그램의 축은 캐릭터다. 캐릭터의 액션과 리액션이 관건이다. 그 캐릭터를 만들던 사람들이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캐릭터는 21세기 문화의 완성형 상품일지도 모른다. 나영석은 이 사실을 [1박 2일]로 암시하고 [삼시세끼]로 증명했다. ‘남자 연예인이 시골에서 밥 해먹는다’가 전부인 이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3월 6일 16.2%까지 올라갔다. [언프리티 랩스타]는 힙합 음악 프로그램이라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음악은 양념일 뿐 본질은 여자 캐릭터 8명이 티격태격하는 이야기다.
2015년 1월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에 나온 오자와 세이지의 말에 따르면 카라얀은 캐릭터가 희생되더라도 곡 전체의 거대한 흐름을 강조했다. 요즘은 각 악기의 색이 더 부각된다. 일견 맥락 없어 보이는 사실들이 모여 거대하고 추상적인 흐름으로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서사는 약해지고 캐릭터는 강해진다.
이유가 뭘까. 기술 발전이 근거가 될 수 있다. 지금은 초고해상도와 무한 렌즈의 시대다. [삼시세끼] 세트장에는 곳곳에 수십대의 카메라가 달린다. 오케스트라의 악기 소리도 예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녹음할 수 있다. 이 결과물을 재생하는 오디오와 스크린의 성능도 엄청나게 발전했다. 물론 기술이 변화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위대한 서사물이 멸종되었다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기술과 인간이 서로를 변화시키며 뭔가 다른 것을 만들어낸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온갖 프로그램을 뛰어다니는 캐릭터야말로 살아 숨쉬는 예다.
남성지 <루엘>에 실렸던 원고를 조금 고쳤습니다. 작년에 쓴 거라 예로 든 게 많이 진부해졌습니다만 큰 흐름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