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찬용 May 25. 2016

뉴질랜드의 국기 서바이벌 오디션

우승자는?

뉴질랜드 국기 재 제정을 위해 선발된 40개의 후보들.


뉴질랜드는 새로운 국기를 정하려 했다. 2015년 5월부터 토론을 시작해 10,292개의 응모작이 나왔고 8월 중순에 심사위원단이 선정한 40개의 후보가 공개됐다. 심사위원단은 이 중 4개를 골라서11월~12월 사이에 1차 국민투표를 진행했고, 1차 국민투표에서 우승한 국기는 내년 3월에 기존의 국기와 국기자리를 두고 투표로 맞붙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뉴질랜드 국기는 최대의 라이벌을 만났다.


여기까지가 2015년 8월에 만들어 [루엘]에 실렸던 원고다. 국기 오디션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11월 20일부터 12월 11일까지 온라인 투표가 진행되어 5개의 후보가 1차 투표를 통과했다. 3월 3일부터 대안 1위 국기와 기존 국기 사이에서 하나를 뽑는 2차 투표가 열렸다. 3월 24일에 기존 국기가 이겼다는 결과가 나왔다. 유니언 잭이 붙은 뉴질랜드 국기는 계속 명색을 이을 수 있게 되었다. 이 투표가 시작되어 결과가 발표되기까지 10개월 정도의 시간과 2600만$ 정도의 예산이 쓰였다고 한다.


(왼쪽 위가 최종 투표에 올라갔다. 오른쪽 위가 2위, 아래는 왼쪽부터 3, 4, 5위)



원래 뭐든 이기면 이긴 사람들 말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깃발 연구소의 깃발학자 그레이엄 바트람 씨는 BBC 뉴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들이 깃발에 대해 하는 근본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깃발은)디자인이 아니라 국민의 역사와 그 의미를 보여줍니다. 디자인 때문에 깃발이 좋다는 건 부모님이 예쁘거나 잘생겨서 좋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부모가 부모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이죠. 깃발도 어느 정도는 그래요.” 깃발학자니까 할 수 있는 것 같은 말이다. 그나저나 나는 깃발 연구소깃발학자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깃발학자를 뜻하는 영어 단어도 따로 있다. 세계란 참 넓구나.


하지만 그의 말처럼 뉴질랜드 국기를 비롯해 모든 깃발의 생명력이 그렇게 강할까? 뉴질랜드 기존 국기의 지지율이 그의 확신처럼 높지는 않았다. 최종 투표 결과에서 뉴질랜드 국기의 지지율은 약 57%. 여유 있는 승리지만 압도적인 승리라고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세대가 더 바뀌고 투표가 또 진행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번 오디션의 최정상에 있던 기존 뉴질랜드 국기는 1902년에 만들어졌다. 국기 제정 시점을 보면 알 수 있듯 대영제국의 산물이다. 옛날 일이다. 대영제국의 흔적은 영국식 아침식사와 축구와 미니의 브랜드 이미지 등으로 강하게 남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때의 영국은 지금의 영국이 아니다.


뉴질랜드의 국기 재 제정 투표는 결과가 어떻게 됐든 신선해 보인다. 영연방이든 뭐든 다 됐고 우리는 그냥 남반구에서 억양 센 언어와 강력한 럭비 전술을 구사하는 마오리풍 나라로 살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 같다. 새로운 국기를 위한 40개의 1차 후보 중 정식으로 유니언 잭을 쓴 건 하나도 없었다. 뉴질랜드는 국기에서 19세기 해양 제국의 일부분을 떼어버리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려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인터넷으로 중계했다. 이거야말로 21세기 아닐까.




남성지 <루엘>에 실렸던 원고를 보충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