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찬용 Dec 18. 2015

아델의 여보세요

끝 다음 하는 말



여보세요. 나야. 아델이 말한다. 고유명사 같은 아델 저음으로. 그녀는 덧붙인다. 몇 년 후에 날 만나고 싶을지 궁금했다고. 여기까지만 들어도 짐작이 간다. 오래 전에 헤어진 연인이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둘 사이의 감정은 어젯밤의 캠프파이어처럼 불꽃은 없이 흔적만 남아 있다. 하지만 흔적이 남아 있다면 마음이 다 사라진 게 아니다.


아델이 이 분위기를 그리려면 단어 10개와 음 3개와 아델 저음만 있으면 된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상황 따라 바꿔 쓴다. 목소리의 개수가 많지는 않다. 동굴 속에서 울리는 듯한 저음, 히스테릭하게 꽂히는 고음, 고음과 저음 사이의 매끈한 연결. 하지만 그걸로도 사람 마음을 울리는 데는 충분하다. 두 개의 프라이팬으로 별걸 다 하는 요리사 같다.


아델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내 말 들리냐고. 난 우리가 꿈꾸던 것처럼 성공했다고. 그건 자랑이라기보단 자조에 가깝다. 뭐든 가지려면 잃어야 한다. 말을 거는 여자는 이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전화기 반대편 남자도 알 것이다. 둘이 서로를 잃었으니까.


그래서 이런 노랫말이 나온다. 우리가 젊고 자유로웠을 때 세상이 우리 발 밑에 떨어진 기분을 잊었다고. 이제 우리 사이는 무척 멀다고. 하지만 기껏 이런 말을 하려고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하는 사람은 없다. 아델도 아직 할 말이 조금은 남아 있다.


잘 지냈냐고, 네게 많이 전화했다고, 내가 다 미안하다고. 후렴 부분에서 아델은 2단 기어에서 가속 페달을 밟듯 힘을 실어 목소리를 끌어올린다. 지난 연인에게 전화를 거는 마음은 비슷하다. 안부가 궁금하지만 당신을 마주볼 용기는 없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 대화가 될 거란 사실도 안다. 되돌릴 수 없으니 지금 최선을 다해 사과하고 싶다. 아델은 칠판을 긁는 것 같은 고음으로 이 마음을 전한다.


우리에게도 헤어진 연인에게 전화로 마음을 전하는 유명한 노래가 있다. 임창정의 <소주 한 잔>.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니, 오랜만이야 내 사랑아, 울고 있니 내가 오랜만이라서,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금요일 밤 노래방의 6번 방 문 틈 사이에서 나오는 노래다. 아니면 5번. 그 노래를 부르는 남자는 이미 엉망으로 취해 있다.


끝난 연애 생각은 흔적만 남은 캠프파이어를 바라보는 마음 같을 것이다. 불꽃이 사라진 것도, 불이 붙지 않을 것도 안다. 가끔 그 불을 함께 붙이던 사람과 그때의 온기가 생각날 뿐이다. 아델은 <Hello>를 통해 끝난 사랑을 떠올린다는 상황을 불러낸다. 다만 <Hello>의 아델은 그 상황을 받아들인 반면 <소주 한 잔>의 임창정이 홀로 서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대를 다시 불러오라고 미친듯이 외친 걸 보면. 그러니까 연말 심야에 옛날 남자한테 전화 오면 받지 마세요.





앱 매거진 <뷰티톡>에 연재하는 원고를 여기 옮겨 둡니다. 노래 가사를 빌어 말하는 일종의 연애 칼럼입니다. 연애도 여자도 노래도 화장품도 잘 모르는데 이런 일을 하게 됐습니다. 당연히 부족할 겁니다. 어떤 형태의 지적이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브런치에는 <뷰티톡> 연재 시점의 2주 후인 매주 금요일에 원고가 올라갑니다. <뷰티톡>은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좋은 구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