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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n 03. 2016

지코의 순정과 수다

인생은 지코처럼


‘너는 나 나는 너’ 속의 남자는 자신감이 대단해서 첫 가사부터 남다르다. ‘girl 뺨 한 대만 때려줘’ 응? 뭐? 왜? 라고 묻기도 전에 남자가 말을 잇는다. ‘며칠 사이 내게/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전 여친 번호 지우고/힙합만 듣던 난 어쿠스틱해졌어’ 노래 속 남자는 맞은 편의 girl에게 굉장히 빠진 모양이다. 뺨 한 대만 때려달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 남자는 직설적이기도 하다. ‘네 사연 속에 나오는 쓰레기/걔랑은 비교도 안되게 내가 잘할게’ 나 ‘집착 쩌는 네 남친이 집 근처도 얼씬 못하게 내가 잘할게’ 라고 말한다. 수줍은 남자가 이럴 리 없다.


노래 속 남자는 인기도 있고 매력도 있고 결정적으로 자기가 인기와 매력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호불호가 확연히 갈릴 타입이다. ‘난 딱히 걱정 없고 하도 좋아서 문제야/이거 봐 욕도 줄이고 있고 바지도 올려 입고/아무한테나 미소 안 보이고 있어’ 좋아서 문제라니. 나는 늘 걱정이 많고 바지를 내려 입은 지도 너무 오래 됐고 부끄러움도 잘 타서 여자에게 이렇게 말할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런 남자들은 늘 부러웠다. 자신 있고 매력 있어서 햇빛도 개인용 후광 같은 남자들이 있다. 그런 남자 곁에는 정말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것처럼 분위기 있는 미녀들이 몽롱한 표정으로 앉아 있곤 했다. 


게다가 이 남자는 마음 한 구석에 낭만까지 있다. 남자는 온갖 수다를 떨다가 후렴구에서 갑자기 정색한다. ‘넌 나고 난 너야/난 너고 넌 나야/마음이 같다면 둘은 서로가 될 거야’ 세상에 이런 냉온탕이 없다. 뜨거운 국물에 담가 먹는 바삭한 튀김처럼 이 노래는 3분 정도의 길이 안에 순정과 수다와 센 척과 귀여운 척을 모두 담는다. 지코 씨가 아주 다양한 연령과 취향의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가사 속 남자는 정말 지코 자신일지도 모른다. 인디 래퍼가 아이돌 씬에서도 실력으로 성공하고 이제는 사랑 노래로까지 히트를 친다. 전성기를 맞은 남자의 자신감이 저런 걸까 싶다. 그러니 ‘이런 남자 만나면 고생한다’처럼 무의미한 말도 없다. 고생할 줄 모르고 저런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을 테니까. 혹은 감당할 수 없다면 여자 스스로가 알아서 포기할 테니까. 


특히 남자는 지코 씨를 깎아내리면 안 된다. 그런다면 열등감으로 인한 질투 때문일 거고, 아니어도 그래 보인다. 보통 남자인 나는 조용히 백팩 메고 지하철 타고 집에 가는 길에 당산철교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지코 씨의 노래를 들을 뿐이다. 지코로 사는 기분은 어떨지를 생각하면서. 그나저나 이 노래 제목도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만큼 헷갈린다. 그렇지 않습니까?



앱 매거진 <뷰티톡>에 연재하는 원고를 여기 옮겨 둡니다. 노래 가사를 빌어 말하는 일종의 연애 칼럼입니다. 어떤 형태의 지적이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브런치에는 연재 시점의 2주 후인 매주 금요일에 원고가 올라갑니다. <뷰티톡>은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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