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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May 30. 2016

작년 가을과 어느 여름

어쩌다 이 글을 또 쓰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안양의 여름을 주제로 가사를 적는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주변에 작사가나 작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 없어서 누군가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나중에 읽은 어떤 책에서 보니 보통 작사는 작곡가가 곡을 만들어 둔 상황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노래라는 틀이 정해져 있고 거기 가사를 끼워 맞추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나았을 텐데. 하지만 이번 일의 클라이언트인 나의 친구는 예술인답게 워낙 자유로웠다.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예술적인 사람이 아니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실 처음에는 대충 넘어가며 거절하려 했다. 대충 알겠다고 하다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하면 저 친구도 자연스럽게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가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다니던 회사도 있어서 만들어 본 적이 없는 가사라는 종류의 글에 대해 생각할 여력도 없었다. 하지만 친구는 내게 은근히 자주 연락을 하면서 가사는 언제 나오냐고 물었다. 미안해서라도 가사를 적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안양의 여름의 초안 같은 게 나온 곳은 차 안이었다. 안양도 여름도 아니었다. 나는 작년 가을에 어쩌다 보니 좀 긴 운전을 해야 하는 출장을 떠났다. 약 9일 동안 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동선으로 구성된 2,000km 정도를 혼자 운전하는 일정이었다. 그때 언젠가의 밤에 뭔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세계의 고속도로는 어느 정도 표준화되어서 한참 달리다 보면 스페인인지 죽전인지 헷갈린다. 머리 속에 피로가 먹구름처럼 피어올라 여기가 어딘지 모호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아무 노래나 나직하게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노래들을 대충 다 불러도 목적지까지는 한참 남아 있었다. 그때 나는 친구에게 줘야 할 가사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면 잠이나 깰 겸 그 가사나 만들어 볼까 싶었다. 


나는 건강한 나무에 붙어 있는 잎의 초록색을 좋아했다. 그 초록색을 축으로 삼아 앞뒤로 아무 말이나 붙이니 얼추 한 노래의 1절이라고 할 만한 게 나와 있었다. 원래 잘 하는 게 어렵지 하는 건 별로 어렵지 않다. ‘으흠 그러면 뭐 이렇게 하면’ 싶은 기분으로 2절이라고 할 만한 것도 불러 보았다. 3절까지 만들고 나자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했다. 운전하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아무렇게나 중얼거린 거였으니까 중요한 건 가사가 아니라 무사히 도착한 것이었다. 나는 안도하며 숙소에 도착했다. 목까지 이불을 덮고 아주 깊은 잠을 잤다.


대충 흥얼거린 거라 다음 날이 되자 내가 무슨 말을 흥얼거렸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조금 당황했지만 그 다음날에도 운전을 길게 하자 거짓말처럼 그때의 가사가 얼추 다시 생각났다. 차를 반납하기 전에 기름을 넣으러 혼자 간 주유소에서 전화기 메모장에 (이번엔 까먹지 않도록) 가사를 얼추 적었다. 그 가사를 적어서 친구에게 보내자 이제 뭐든 됐다 싶었다. 요청한 걸 해준 거니까. 


한 달쯤 지났나, 친구가 메일로 작업 중이라는 노래를 보냈다.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가사가 너무 별로여서. 


(계속)




우선 댓글로 관심 보여 주신 많은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누군가 읽을 거라 생각한 글이 아니라 어디부터 어디까지 적어야 할지도 모르겠는 것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이건 전혀 제가 예상한 전개가 아니라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전개는 오늘 이맘때까지 댓글이 전혀 안 달려서 초라하게 비공개로 돌리는 것이었는데…


그나저나 유럽의 고속도로에서 가사를 떠올렸다니, 적고 나니 굉장한 허세처럼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부담스럽습니다만 당황스럽게도 이게 사실이라 적어 둡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엔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어떤 요소를 모아서 가사라는 걸 만들어 보았는지, 잡지 기사라는 다른 장르의 글을 만들던 사람이 느낀 기사와 가사의 현실적인 차이점을 말해볼까 합니다. 그렇게 잘만 된다면 이 이야기는 모호했던 뭔가가 구체화되는 것에 대한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다음 이야기를 원하시는 분이 있다면요.  


다시 한 번 여러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안양의 여름을 들으시려면 이 링크를 눌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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