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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May 29. 2016

우리와 언젠가의 여름에 대하여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가에 대하여


작사라는 걸 하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이 작사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무튼 결과만 놓고 보면 어떤 노래가 나와 있고 거기엔 내가 붙인 가사가 들어 있다. 그러고 보니 잡지 에디터가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 일로 생계를 꾸리고 있기도 하군. 아무래도 삶은 예상 밖이다.


경과는 이렇다. 전업 기타리스트인 친구가 있다. 지금 찾아보니 친구의 첫 앨범은 네이버 오늘의 뮤직 2012년 11월 2주 이 주의 후보작으로 선정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지금 보니까 대단한 친구였구나. 아무튼 이 친구는 첫 앨범을 내고 ‘역시 노래엔 가사가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걸 지금 알다니 역시 음악인의 사고방식은 보통 사람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아무튼 친구는 처음 몇 곡은 스스로 가사를 적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힘으로 하려 하는 장한 구석이 있는 친구였다(사실은 비용 문제도 있다). 실제로 친구의 노래는 드럼 등 도저히 본인이 할 수 없는 것만 빼면 모든 세션을 친구가 연주했다. 그런데 가사 역시 드럼처럼 본인이 하기엔 조금 부족하다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날 친구는 나에게 가사를 좀 적어보지 않겠느냐는 전화를 걸게 된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 주변 사람 중 글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 나 뿐이었기 때문에.


잡지에 들어가는 원고와 가사는 아무래도 많이 다르다. 같은 가사라도 랩과 포크가 다를 텐데 나보고 가사를 적으라니. 나는 요리를 할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초밥을 주문 받은 카레집 주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친구는 유연하다고 해야 할까 막무가내라고 해야 할까, 요지부동이었다. 아무거나 적어도 된다고. 뭐 그래서 기왕 그렇게 된 거 한번 해 보기로 했다. 딱 한 곡만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고등학교 때의 여름에 대한 가사를 만들기로 했다. 그 이유도 간단했다. 기타를 치는 친구를 고등학교 때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왠지 좋지 않습니까, 10대의 여름. 나는 그때 굉장히 나른한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도 나처럼 대체로 나른했다. 나른한 수험생들은 교사들에게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등의 불쾌한 일을 겪는데 그때의 그 학교는 특히 그런 게 심하긴 했다. 그래도 우리는 콘크리트 사이의 잡초처럼 꿋꿋하게 나른했다. 친구가 가사를 만들어달라고 하자 그런 때가 떠올랐다. 고등학교는 안양에 있었다. 노래의 이름을 짓는 일만은 쉬웠다. 안양의 여름.



(계속)


지금까지 제 브런치에 올린 글과는 달리 이건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읽으시는 분들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도 잘 모르겠네요. 만약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답글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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