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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May 20. 2016

라이카T, 오늘의 원조

오리지널만의 배포


라이카는 100여 년 전 세계 최초로 소형 카메라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들을 미래의 클래식이라 칭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카메라는 몰라도 라이카의 최신작인 T는 21세기적 고전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게 아깝지 않다.


사진을 둘러싼 많은 환경은 오스카 바르낙이 첫 라이카를 개발한 1913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달라졌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사진 이미지를 저장하는 방식이다. 20세기의 사진 저장은 화학기술의 산물인 필름이었다. 지금의 사진 저장은 전자기술의 산물인 디지털 인쇄다. 촬영 방식도 변했다. 카메라는 기계공학적 제품이었다가 전자공학적 제품이 되었다. 물리적으로 돌리는 버튼이나 뷰파인더는 요즘 카메라에서는 없어도 되는 장치다. 엄밀히 말해 지금의 카메라가 옛날 카메라처럼 생길 필요는 없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여러 브랜드에서 다양한 답을 냈다. 10여 년 전의 올림푸스처럼 하나도 카메라같이 생기지 않은 카메라들이 대거 출시되던 시기가 있었다. 그 다음에는 20세기의 카메라를 그대로 복각한 카메라들도 나왔다. 사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라이카도 처음부터 현명하게 방향을 잡지는 못했다. 디지털화에 조금 늦게 대응했던 것도 사실이다. 라이카는 T를 출시하며 그 동안의 격차를 완전히 없앴다. 


라이카 T는 20세기 카메라의 원조가 21세기를 완전히 이해했음을 증명한다. 이 카메라의 21세기 친화성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이어진다. 눈에 보이는 디자인부터 손에 잡히는 인터페이스까지. 라이카 T의 도색도 하지 않은 통 알루미늄 보디는 지금까지의 어떤 카메라와도 다른 방식의 접근이다. 다른 카메라 브랜드라면 ‘너무 낯설어서 안 될 텐데’라는 내부 의견 때문에 못 낼 디자인일 수도 있다. 이런 식의 과감한 접근은 원조가 아니라면 시도할 수 없다.


라이카 T가 미래의 클래식인 이유가 이것이다. 장르성에서 벗어난 물건을 내고도 납득을 얻을 수 있는 브랜드는 역설적이게도 그 장르의 원조뿐이다. 오스카 바르낙이 라이카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컴팩트한 크기의 기계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사진이었다. 라이카 T는 창립자의 뜻을 그대로 잇고 있다. 통 알루미늄 보디와 대형 터치스크린과 전자식 뷰파인더와 와이파이로 연결되는 전용 어플리케이션으로. 


남성지 <루엘>에 실렸던 원고입니다.




이 원고를 만들 때쯤엔 오래된 브랜드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게 한참 유행이었습니다. 세상은 앞으로 나가고 있는데 비싸고 좋은 걸 찾기 위해선 계속 뒤돌아봐야만 하는 걸까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는 이 시대의 무엇에 21세기의 고전이라는 호칭을 붙일까?’ 라는 질문을 떠올리고 여섯 개의 예상 답안을 제시했습니다. 라이카는 M 모노크롬처럼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물건을 만드는 동시에 T처럼 동시대와 화음을 맞추는 카메라도 내놓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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