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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May 18. 2016

노모스 탕겐테, 오늘의 미감

독일의 감성


시계 박람회 바젤월드의 부스 위치는 해당 브랜드의 업계 입지와 큰 관련이 있다. 바젤월드는 5개의 건물에서 이루어진다. 이 중 가장 많은 시선을 받는 1관에는 아무 브랜드나 들어가지 못한다. 롤렉스와 파텍 필립과 쇼파드가 몇 십 년째 1관 1층 에스컬레이터 옆자리를 지키는 건 그 자체로 이들의 위세를 상징한다. 부스 자리잡기는 은근히 경쟁이 치열한지 뒤로 밀리거나 위로 빠지거나 옆 건물로 튕겨나가는 브랜드도 있다. 노모스는 2관에 있다가 2015년엔 1관 2층까지 치고 들어왔다.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노모스는 1관 브랜드다.


노모스에서는 고급 시계의 성공 패턴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고향부터 스위스 옆 독일이다. 디자인도 낯설다. 대형 사치품 그룹의 일원도 아니다. 1000m 방수 기능도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도 투르비용도 파베 컷팅한 다이아몬드 장식도 없다. 유명인을 동원해 마케팅을 한 적도 없고 매끈하게 생긴 홍보 대사 없으며 랩 가사에 인용된 적도 없다. 노모스는 반례처럼 성공했다. 한국에서 덜 유명할 뿐 [뉴욕 타임즈]에서도 주목할 만한 브랜드로 지목했다. 비결은 간단하다. 좋은 물건. 


다른 물건을 좋은 품질로 만들면 성공한다. 노모스는 놀라울 정도로 우직하게 이 가치를 밀어붙인다. 스위스식 성공 문법을 따르지 않았을 뿐 논리도 충실하다. 독일 시계니까 바우하우스풍 디자인. 간단한 원형 케이스와 일자 러그, 가느다란 인덱스와 핸즈. 간단해서 멋지기 힘든 디자인이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역량과 용기가 부족해서 못 했던 영역이다. 노모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 일을 하고 있다.


덕분에 노모스는 진정한 이 시대의 클래식이라 할 만한 시계가 되었다. 노모스보다 좋고 비싸고 유명한 시계는 많아도 노모스 같은 시계는 하나도 없다. 가격대비 가치를 봐도 그렇다. 지금 보시는 탕겐테는 한국에서 200만원대 중후반이다. 비슷한 가격의 기계식 시계 중 표면에 무늬까지 넣어 장식한 자체 제작 무브먼트를 넣은 시계는 많지 않다. 현혹되기 쉬운 무형 요소가 아니라 물리적인 만듦새를 보고 물건을 고르는 안목이 있다면 노모스는 아주 좋은 답이 될 것이다.


기계식 시계는 수백 년을 거쳐 시간 표시 기능이 있는 고가 액세서리라는 지위에 이르렀다. 노모스는 21세기의 기계식 손목시계라는 과제에 대한 독일식 모범답안이다. 간단하게 멋을 내고 잘 세공한 무브먼트를 끼운다. 노모스의 추가 기능은 파워 리저브와 월드 타임이 전부, 기계식 시계를 찬다면 알겠지만 이 둘이야말로 도시생활에 정말 필요한 기능이다. 도시인의 사치품이니까 간결하면 좋을 거고 불필요한 기능이나 장식은 필요 없다. 가격은 1000유로대부터. 이게 전부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숨길 것도 부풀릴 것도 없다. 그러니 나중에 더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다 애초부터 거품이 없었으니까.


남성지 <루엘>에 실렸던 원고입니다.




이 원고를 만들 때쯤엔 오래된 브랜드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게 한참 유행이었습니다. 세상은 앞으로 나가고 있는데 비싸고 좋은 걸 찾기 위해선 계속 뒤돌아봐야만 하는 걸까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는 이 시대의 무엇에 21세기의 고전이라는 호칭을 붙일까?’ 라는 질문을 떠올리고 여섯 개의 예상 답안을 제시했습니다. 시계 부문에선 위블로와 함께 노모스를 떠올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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