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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May 22. 2016

애플 아이폰, 오늘의 베스트셀러

미국의 완성도



아이폰의 사용 경험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새하얀 상자를 여는 것부터 시작된다. 상자를 열면 뽀얀 새 아이폰이 있다. 전화기를 들면 그 아래에는 전화기 폭에 딱 맞게 파인 받침이 보인다. 그 받침의 가운데에는 둥근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아래로는 손잡이처럼 보이는 반원형 흰 종이가 보인다. 그걸 또 들어내면 아래 이어폰과 케이블과 충전기가 있다. 이 부품들도 맞춤 셔츠처럼 딱 맞는 틀 안에 고이 놓여 있다. 모든 것이 딱 맞게 정리되어 있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의도되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는 저 일련의 경험을 통해 결과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대단히 좋은 걸 갖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거야말로 애플이 의도한 바다. 인지과학자 도널드 노먼은 자신의 책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에서 가장 좋은 디자인은 설명이 없는 디자인이라고 했다. 애플은 이런 디자인의 명수다. 이 경우에는 설명하지 않고도 전화기 아래에 있는 부품을 꺼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하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즈 주말판인 [하우 투 스펜드 잇] 2015년 3월 6일판에는 애플의 조너선 아이브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의 마지막 부분은 조너선 아이브가 애플 워치의 상자를 실험하는 장면이다. 조너선 아이브는 상자의 바깥 부분을 든 채 안쪽 상자가 어떤 속도로 떨어지는지 관찰했다. 마찰 계수를 고려해 최적의 ‘상자 빠져나오는 속도’를 계산하려는 것이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 박스를 열 때 특유의 쏙 하는 느낌도 그런 식으로 계산되었을 것이다. 상자 안에 있을 물건에 대해 적당한 기대를 만들 정도로 천천히 열리지만 ‘이거 안 열리는데’ 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을 정도의 소요 시간을, 애플은 계산했을 게 확실하다.


애플은 아주 미세한 요소까지 계산과 조종의 영역에 집어넣으며 특유의 이미지와 사용감을 만들어낸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의 큰 차이점은 실제 복잡도가 아니라 체감되는 복잡도다. 컴퓨터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둘 다 복잡한 건 마찬가지다. 아이폰은 덜 복잡하다기보다는 덜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이고, 그거야말로 애플의 힘이다. 인터페이스를 수납공간에 비유하면 아이폰은 큰 서랍장 하나만 있는 깨끗한 방이다. 사실 서랍장 안에는 수백 개의 다른 서랍이 있다. 하나를 열면 또 다른 서랍이 나오고 그걸 열면 또 다른 서랍이 나오지만 그냥 봐서는 그 사실을 잘 알 수 없다. 그냥 봐서는 잘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복잡함을 잊게 하는 선결조건은 고장이 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애플의 기술과 관리가 빛난다. 애플은 앱스토어에 등록하는 어플리케이션을 엄격하게 관리해 충돌 가능성을 줄이고, 바이러스 보안 등의 위험성에서도 안드로이드보다 낫다. 애플이 대표하는 21세기 초기의 시대정신은 결국 디자인과 기술이 모두 뛰어나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기술과 디자인, 혹은 성능과 이미지는 대립이 아니라 양립하는 것이다. 그 양립이 성공하기만 한다면 제품 상자를 열 때부터 즐거워질 수 있다. 이를테면 아이폰 6의 상자를 열 때처럼.



남성지 <루엘>에 실렸던 원고입니다.




이 원고를 만들 때쯤엔 오래된 브랜드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게 한참 유행이었습니다. 세상은 앞으로 나가고 있는데 비싸고 좋은 걸 찾기 위해선 계속 뒤돌아봐야만 하는 걸까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는 이 시대의 무엇에 21세기의 고전이라는 호칭을 붙일까?’ 라는 질문을 떠올리고 여섯 개의 예상 답안을 제시했습니다. 솔직히 말해 애플은 잘 아시는 분들과 좋아하시는 분들이 아주 많아 원고 만드는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소재입니다. 하지만 21세기의 물건을 말하며 애플을 외면할 순 없었습니다. 공감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만 제가 잘못 짚은 부분이 있다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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