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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n 15. 2016

21세기로의 입장권

샤오미 멀티탭을 뜯고 보고 만져보며 떠올린 것들

글의 첫 문장은 늘 어렵다. 글 잘 쓰시는 분들이야 여러 방법을 갖고 계시겠지만 난 모자란 게 많아서 매번 곤혹스럽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엔 어떻게 원고를 시작할까 하다 남들처럼 리뷰 비슷한 걸 해보기로 했다.


오늘 물건은 샤오미 멀티탭이다. 물건은 알아서 샀다. 오픈마켓에서 많이 판다. 나는 이웃이 없어서 이웃님들 저 왔어요~같은 말은 할 수 없었다.


상자를 열기 전이다. 상자는 흰색, 샤오미 로고는 옅은 회색으로 가운데 인쇄됐다. 작지만 잘 보인다. 작지만 잘 보인다는 건 샤오미를 관통하는 중요한 요소다.


 

상자를 빼면 물건이 이렇게 포장되어 있다. 비닐이다. 이런 것까지 해야 되나 싶은데 다들 하길래…


 

구성품이다. 멀티탭, 고무줄, 설명서. 콘셉트를 흐리는 요소가 없다. 저 고무줄 색도 의도된 것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디테일들. 콘센트의 끝을 감싸는 별도의 커버가 있다. 작은 스위치는 전기가 켜지면 왼쪽에 작은 점만한 흰색 조명이 표시된다.  


구성은 단순하다. 콘센트 셋과 USB 포트 셋. 테두리와 스위치 주변부를 둥글린 정도, 각 슬롯의 간격이 눈에 들어온다. 로고를 넣지 않은 것도.


 

이 멀티탭의 가장 편리한 부분일 USB 포트. 나도 잘 쓰고 있다.


나는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블루투스 스피커, 카메라, 휴대용 배터리를 쓴다. 테크에 큰 관심도 없고 저 물건 중 딱히 특이한 게 없어도 벌써 여섯이다. 가끔 이 모두를 한번에 충전시켜야 할 때가 있다. 그러면 멀티탭 주변은 열대의 나무처럼 무성해진다. 샤오미 멀티탭은 훌륭한 대안이다. 기존 멀티탭보다 날씬하고 USB 충전을 지원하니까 편리하고 이것저것 꼽아둬도 그림이 한층 낫다. 다 충전시켜도 열대의 나무같지는 않다. 온대의 나무 정도. 리뷰는 여기까지다. 아 이거 되게 어렵다. 블로그에 리뷰 하시는 분들 대단하다. 존경스럽다.


자, 여기서부터 물건 이야기다.


좋은 물건이 그렇듯 샤오미 멀티탭(제품명은 XMCXB01QM, 이하 멀티탭)은 여러 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이건 뛰어난 가정용 콘센트이며 멋지게 디자인된 물건이다. 샤오미라는 세계로의 작은 진입로인 동시에 21세기의 전략가들이 짜고 있는 하나의 퍼즐 조각이기도 하다.


세 개의 USB포트는 이 물건이 적절히 시장을 읽었음을 뜻한다. 요즘은 USB 포트로 다양한 가전제품을 충전할 수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시작으로 블루투스 스피커, 보조 배터리, 조명, 마이크로 빔 프로젝터 등 온갖 걸 충전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콘센트와 USB 포트가 붙어 있는 멀티탭은 시대적 요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에도 USB 포트를 심은 멀티탭은 많았다. 샤오미는 뭐가 달랐을까.


생김새다. 샤오미는 창립 5년만에 샤오미 풍이라 할 만한 디자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애플에서 한 숟갈 무인양품에서 한 숟갈 식으로 가져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차피 모든 물건은 서로를 참고하고 모방하면서 성장한다. 애플은 바우하우스풍 디자인에 마요네즈를 바른 것 같았다. 무인양품은 그걸 조금 노릇하게 그을린 후 소금을 친 것 같았다. 그런 것쯤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정체성이다. 맥락을 깔아두고 하나의 주제를 고수하면 정체성이 생긴다. 그 다음부터는 하던 걸 반복하면 된다. 샤오미는 벌써 그걸 하고 있다.


샤오미의 디자인 정체성은 멀티탭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에서 파는 USB 멀티탭과 샤오미 멀티탭을 비교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둘의 차이는 기능이 아니라 관점과 노력이다. 보통 우리 주변의 멀티탭은 늘 보던 것에 마지 못해 USB 포트를 몇 개 붙여둔 것처럼 생겼다. 샤오미와 비교하기엔 미안한 수준이다. 샤오미는 모든 걸 새로 디자인했다. 전체적인 레이아웃부터 작은 스위치의 모양까지.


중국 물건에는 저렴한 대신 덜 믿음직스럽다는 인식이 있었다. 멀티탭이 덜 믿음직스러우면 곤란하다. 샤오미 멀티탭은 안전성에도 신경 썼다. 스위치는 중국의 CCC인증을 받았다. 지나치게 높은 열이 발생하면 스위치 회로가 끊어지도록 설계되었다. 스위치 회로만 끊어지므로 꽂혀 있는 다른 가전제품의 안전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100% 안전을 보장할 순 없겠지만 여기 꽃아둔 것들이 다 타버리지 않을까 벌벌 떨면서 써야 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요약하면 이렇다. 실용적이고 예쁘고 안전하고 싸다. 사지 않을 이유를 찾기 힘들다.


샤오미는 스스로를 하드웨어 회사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샤오미 회장 레이준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이다. 부사장 우고 바라도 2014년 인터뷰에서 “우리는 하드웨어 회사라기보다는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회사 쪽에 훨씬 더 가깝다”고 말했다. 체중계와미 밴드와 핸드폰 배터리와 멀티탭과 TV와 스마트폰같은 걸 만들어 놓고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사실이 그렇다. 샤오미가 참고하는 건 애플의 디자인만이 아니다. 애플은 애플 워치-아이폰-아이패드-맥북-아이맥으로 이어지는 디지털 생태계를 만들었다. 애플을 하나 사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른 애플들을 사게 된다. 애플의 하드웨어가 훌륭해서일 뿐 아니라 애플의 각 제품이 사용자의 생활과 바짝 달라붙기 때문이다. 아이폰을 쓰면 맥북 프로에서도 아이메시지를 보낼 수 있고 맥북으로 작업하던 문서를 아이패드에서 이어받아 마무리할 수 있다. 싱가포르의 대형 쇼핑몰과 비슷하다. 쾌적한 시설 안에 웬만한 게 다 있다. 바깥 세상에 더 많은 게 있긴 하다. 하지만 거긴 덥고 습하고 지저분하고 익숙하지 않다. 쇼핑몰을 나갈 이유가 없다. 애플도 그렇다. 그리고 샤오미도 그러려 한다.


생태계를 만드는 거야말로 변치 않는 성공의 열쇠다. 생태계라는 말에는 거창한 느낌이 들지만 그 안에서 다 된다면 그게 생태계다. 브룩스 브라더스엔 속옷부터 보트 슈즈에 이르는 미국 백인풍 남자 옷이 다 있다. 당신이 그 룩에 동의한다면 평생 옷을 살 때는 브룩스 브라더스에만 가면 된다. 이렇다면 생태계다. CJ 원카드를 만들면 영화를 보든 화장품을 사든 적림금을 쌓인다. 이것도 생태계라고 볼 수 있다. 무인양품 역시 모든 물건을 무인양품화시킨 일종의 이미지 생태계다.


테크 회사도 각자의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이제 미국의 테크 거물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함께 최적화시키고 서로를 연동시켜서 생태계를 만든다. 애플은 그걸 가장 극적으로 성공시킨 회사고, 이제 다른 곳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서피스를 냈고 아마존은 에코를 냈다. 이들의 바람대로 된다면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제안 안에서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이 완성될 것이다.


샤오미의 물건은 가격과 디자인과 합리성으로 스며든다. 사람들은 하나 샀다 좋으니까  멀티탭 다음 배터리를 사고 체중계를 샀다가미 밴드를 산다. 싼 게 좋으면 더 비싼 것도 괜찮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샤오미의 2륜 전기 스쿠터와 TV는 몇 해 전만 해도 미친 것처럼 보였겠지만 이젠 멋져 보인다. 거기 더해 요즘은 모든 물건에 인터넷을 연결시키는 IOT의 시대다. 공급자 입장에서 IOT의 핵심은 사용자 패턴의 축적과 파악이다. 제품을 파는 동시에 사용자 데이터를 모으면서 신제품 개발에 더 유리한 자료를 확보한다. 회사에게도 소비자에게도 선순환이다. 소비자가 이걸 좋아하기만 한다면.


이제 사람들은 샤오미를 좋아한다. 중국의 미펀까지 댈 것도 없다. 한국에서도 샤오미가 냈다 하면 다 사는 사람들을 몇 명이나 봤다. 팬이 있는 멋진 물건은 아이콘이다. 중국에서 49위안, 한국에서도 만 원이 조금 넘는 이 멀티탭을 사면 샤오미라는 회사가 만들어둔 생태계로 들어가게 된다. 샤오미 멀티탭은 자사의 전자제품에 전력을 제공하는 약수터인 동시에 21세기의 아이콘이 만들어둔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일지도 모른다.


21세기의 아이콘을 찍어내는 회사가 중국의 샤오미라는 건 여러 모로 상징적이다. 냄새나고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나라처럼 보일지 몰라도 중국은 역사라는 게 쓰인 이후 늘 주인공이었다. 샤오미만 봐도 중국이 촌스럽고 목소리 큰 나라로 머물 확률은 무척 낮을 것 같다. 인터넷에선 훌륭한 중국산에 ‘대륙의 실수’라는 표현을 쓰지만 글쎄, 이게 대륙의 본질 아닐까. “나는 그때까지도 개화된 중국인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대영제국의 전성기에 중국을 방문한 버트런드 러셀의 자서전에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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