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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n 11. 2016

겨울에 떠올린 여름의 노래

안양의 여름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


내가 만든 가사가 어느 정도 별로일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별로일 줄은 몰랐다. 가장 기초적인 요소인 가사의 글자 수부터 어긋나 있었다. 예를 들면 친구가 3-4-3으로 맞춰 둔 부분에 나는 3-3-3의 가사를 주었다. 그래서 ‘낮잠을 자고’라는 부분을 실제로 들으면 ‘낮잠으을 자고오’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곡과 가사가 제대로 정합되지 않은 부분이 노래의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타일로 마무리해야 할 바닥 한 켠을 대충 시멘트로 마무리해둔 것 같았다. 듣는 내내 거슬렸다.


친구가 수정해달라고 했던 적도 있었다. 글자 수가 안 맞는 부분이 있다면서. 나는 작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글자수가 안 맞는다’는 표현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마침 그때 하고 있던 다른 일이 있기도 해서 “그냥 네가 고칠 수 있는 만큼 고쳐 달라”고 대충 둘러대고 전화를 끊었다. 그 부분이 실제로 녹음되니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었다.


보통 글을 만든다고 하면 글로 된 건 얼추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친구가 잡지사에서 일한 내게 가사를 맡긴 것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사와 내가 만드는 글에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내가 소리 내어 읽히는 글을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발음의 모양이나 고음을 내기 좋은 발음 같은 건 가사에서 굉장히 중요했는데 그런 건 내가 글을 만들 때는 생각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이런 식으로 가사를 만들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만드는 게 산문이라면 가사는 시였다. 매끄러운 발음이 탄탄한 논리보다 중요할 때가 있었다. 멜로디와 박자에 설득력이 있다면 문법이나 주술 호응이 페이지에서만큼 중요하지는 않을 수도 있었다. 도치나 함축 등의 예술적인 기교들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도 되게 많은데 기교가 촌스럽지 않으려면 아주 절묘한 감각이 필요하다. 


그렇게 고전하다 보니 나는 직업 작사가들을 엄청나게 존경하게 됐다. 좋아했지만 해보니 더 좋아졌다. 문어적으로 훌륭한 박창학 작사가(윤상의 노래를 많이 작사했다)같은 분들은 원체 좋아했지만 듣다 보니 ‘으르렁’이나 ‘아츄’같은 가사 역시 보통 감각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두 노래는 모두 서지음 작사가가 만들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낮잠으을 자고오’같은 실수나 하고 있었다. 빨리 저걸 고쳐야 했다.


나는 부리나케 몇 개를 고쳐서 친구에게 수정된 가사를 보냈다. 친구도 가사가 조금 더 나아졌다고 해 줬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노래를 부른 분과 스케줄을 다시 맞춰야 했다. 친구가 다듬어 둔 그의 보컬 녹음분도 사실상 폐기되어야 했다. 나의 미숙한 실수 때문에 큰 손실이 난 것이었다. 하지만 친구와 나는 ‘그래도 고친 걸로 해 보자’고 결론을 냈다. 가사가 중요하니까 녹음을 다시 해도 괜찮다는 결정을 내린 친구에게는 아직도 미안하다. 


새로 편하게 불러올 수 있는 대안 보컬이 필요해졌다. 마침 근처에 살던 고등학교 친구가 시간이 된다고 해서 무작정 그 친구를 불랐다. 덕분에 노래방에서 90점도 잘 넘기지 못하는 고등학교 친구가 얼떨결에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작사-작곡-노래를 다 한 고등학교의 동창들이 하게 됐으니 우리끼리 소소한 의미는 있는 셈이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녹음이 끝나고 유통 절차를 기다렸다 드디어 5월 말에 음원이 공식적으로 유통됐다. 늦가을에 만들기 시작해 겨울에 다 만들어진 가사가 다음 해 여름에 세상에 나간 것이었다. 


친구는 1인 아티스트여서 음악과 관련된 거의 모든 걸 스스로 처리했다. 드럼을 제외한 이 노래의 거의 모든 악기는 친구인 JY LEE가 연주했다. 그러다 보니 음반 재킷이나 음반 소개글을 만들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음반 소개글도, 음원 사진과 재킷 이미지도 내가 만들게 되었다. 잘못 수강신청한 과목에서 괴짜 친구와 조가 되어 발표를 하는 느낌이었지만 기왕 시작한 거 어쩔 수 없었다. 이 노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음반 소개글을 보시는 편이 나을 거라 생각한다.


이 글을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글이 다 끝나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두말할 나위 없이 작사는 어려운 것이지만 나는 이 일을 통해서 배운 것이 더 많았다. 내가 속한 세계와는 다른 제한과 다른 자유가 있었고, 그렇게 다른 환경을 접해본 건 내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프로 작사가는 정말 대단하다. 



안양의 여름 라이너 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라이너 노트를 읽은 제 지인은 약간 <음악의 신>같은 느낌이라고 말했습니다. 적을 때는 몰랐는데 저도 조금 그렇게 의도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지금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비틀즈의 리버풀과 레니 크래비츠의 뉴욕, 스가 시카오의 도쿄와 시규어 로스의 레이캬비크처럼 음악가의 출신지는 그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JY LEE에게는 안양이 있다. 그는 삶의 반 정도 되는 시간을 안양을 축 삼는 경기 남부권에서 보냈다. 안양은 그에게 2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레코드판의 홈처럼 그의 삶에 새겨진 추억을 남겨 주었다. JY LEE는 ‘안양의 여름’을 통해 그의 소년 시절 추억을 담았다.


이 노래를 작사한 박찬용은 JY LEE의 고등학교 친구다. JY LEE는 가사를 고민하던 어느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전문 작사가도 아닌 박찬용에게 가사를 제안한다. 본인의 감성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와든 함께할 수 있다는 JY LEE의 용단을 엿볼 수 있다. 박찬용은 JY LEE와 친구가 된 장소인 안양의 기억으로 가사를 만들기로 했고 JY LEE도 그에 동의했다. ‘안양의 여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박찬용은 출장 중에 이 노래의 가사를 떠올렸다고 한다. 골프 수동변속기 렌터카를 타고 한밤의 스페인-프랑스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였다. 그래서 안양의 여름은 자연스럽게 운전할 때 듣기 좋은 미디움 템포로 설정됐다. 박찬용은 가사를 떠올리기 위해 아무렇게나 음을 붙여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JY LEE는 그 멜로디를 활용해 박찬용과의 공동작곡으로 안양의 여름을 완성시켰다. 


안양의 여름은 제목처럼 안양에서 여름을 보내는 소년의 이야기다. 그 소년은 나른하고 관조적이며, 조금은 예민하지만 자신이 예민하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그건 JY LEE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소년이나 소녀인 채로 여름을 맞았던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JY LEE는 그 특유의 터치로 젊음이라는 삶의 짧은 구간에서만 느껴지는 마음을 표현했다. 그걸 ‘안양 사운드’라 불러도 될 것이다.


‘안양의 여름’의 보컬 성유승은 역시 둘의 고등학교 친구이자 현재 평범한 회사원이다. 이 셋은 고등학교 때 안양 1번가의 V 노래방에 자주 갔던 추억이 있다. 성유승은 JY LEE와 박찬용이 함께 노래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너네 쓸데없는 짓 그만 하고 정신 좀 차려라”고 말하면서도 녹음 현장에서는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는 후문이다.


JY LEE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스스로가 하자는 장인정신을 갖고 있는 음악인이다. 그는 ‘안양의 여름’을 작업하면서도 기타와 공동작곡, 편곡은 물론 베이스기타, 신서사이저, 코러스, 믹싱 등까지 한번에 해내며 다시 한 번 음악 천재의 면모를 보였다. 드럼은 JY LEE가 좋아하는 음악인인 렘넌츠 오브 더 폴른의 이종연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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