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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n 17. 2016

김동률의 회상

회상 가사 명인 김동률


김동률의 <그게 나야> 속 남자는 계속 생각한다. ‘너에게 모두 주고 싶던’, ‘너 하나로 충분했던’, ‘우리 서로 사랑했던’, ‘세상을 다 가진 양 들떠 있던’ 시간을. 여기에 쓰인 모든 시제는 과거형이다. 김동률 씨는 적절한 시제만으로도 실감나게 슬픔을 표현한다. 저 좋았던 일들이 다 지난 일이라는 거니까. 지금은 좋던 시간을 함께 하던 사람이 없는 거니까.


계속 뒤돌아보기만 하는 시간은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좋았던 날을 떠올리는 걸 멈출 수 없는 날 역시 있다. 노래 속 주인공도 ‘우리 서로 사랑했던 그 시절’을 ‘추억인 척’ 할 수 없다.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얼굴 보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또 그리’며 ‘그 시절을 아직 살아가는 한 사람’이 될 뿐이다.



치장된 비현실보다 건조한 현실이 더 인상적일 때가 있다. 노래 가사도 그렇다.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거라는 가사보다 조금씩 사랑하던 날들의 디테일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더 슬프다. 노래 속의 남자도 ‘세상이 무너질 듯 펑펑 울던 네 모습이 한번에 그려지지도 않는’ 시간에 접어들었다. 내 마음이 어떻고 너를 생각하면서 뭘 했고 엄청 못 잊을 거라는 가사와는 다르다. 벽에든 얼굴에든 장식이 과하면 피곤해진다. 내 감정에 비즈 장식을 해둔 것 같은 화려한 가사도 다르지 않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슬픈 일도 조금씩 퇴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간이 지날 수록 그때의 감정과 지금의 나는 멀어진다. 순간의 자극은 그게 뭐든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희미해진다. 어느 순간의 감정이 아무리 생생해도 그 감정을 이루는 기억의 세부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이 노래는 그 부분을 건드리며 절정에 이른다. ‘너는 정말 괜찮은지, 다 지운 채로 사는 건지’라고 말하며.


노래 속 남자는 왜 계속 지난 일을 생각할까. 노래 속 남자도 노래 바깥의 우리도 모두 알고 있다. 사랑하던 사람이 아직 좋으니까.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아직 잊지 못했을 때 우리가 하는 일은 거의 비슷하다. 계속 뒤돌아보고 후회하고 아쉬워하고 반성하고 자책하고 이 모두를 계속 반복한다.


그러니 그렇게밖에 지낼 수밖에 없는 날들이 있다.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후회하고 만약 그랬다면 어땠을까처럼 무의미한 문답만 반복하는 시간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는 없어서 뭔가를 계속 무너뜨리고 낭비하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 같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잠깐 주저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는 그냥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 너를 기억하면서도 희미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이 노래의 가사처럼.



뷰티 앱 매거진 <뷰티톡>에 연재하는 원고입니다. <뷰티톡>은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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