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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n 25. 2016

백아연의 해탈

그녀는 이제 안다


‘쏘쏘’의 뮤직비디오에서 주인공 연기를 한 백아연 씨는 아파서 병원에 있는 사람으로 표현된다. 의료진은 달콤한 것과 미남을 그녀의 방에 집어넣는다. ‘노력해 봐도 쏘쏘 애를 써봐도 쏘쏘/감동이 없고 재미 없고 그저 그래’라고 말하는 백아연 씨의 감정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그러든 말든 백아연 씨의 표정은 너무 익힌 채소처럼 생기가 돌아오지 않는다.


백아연 씨의 노래 속 주인공이 처음부터 ‘쏘쏘’ 같지는 않았다. 그녀가 2015년 발표한 ‘이럴거면 그러지 말지’속의 여자는 ‘궁금해서 잠이 안 오’고 ‘나만 애가 탄다’. 이 노래 속의 상대역은 가사 속에서 연인인 듯 아닌 듯 굴다가 ‘비겁하게 숨어버린’다. 그녀는 ‘혼잣말만 늘어 가네/전하지도 못할 말만’이라는 가사를 마지막으로 노래를 마친다.


이쯤 되면 백아연 씨는 수줍은 마음 가사의 달인이다. 그녀는 ‘이럴거면 그러지 말지’로 누군가를 혼자 좋아했는데 서로 좋아하는 단계까지는 못 간 사람의 마음을 정교하게 표현했다. 이 노래는 음원 차트 순위에서 사라졌다 입소문을 타고 번져 차트에서 다시 올라서더니 빅뱅의 ‘뱅뱅뱅’을 제치고 2015년 상반기 음원차트 1위에 올랐다. 확실히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요소가 있었다는 의미다.


‘쏘쏘’는 ‘이럴거면 그러지 말지’의 속편같다. 2015년의 애태우던 그녀는 1년 후 ‘혼자인 게 외롭지는 않아’라는 건조한 말로 돌아온다. 이 노래는 ‘사랑하고 싶어’라면서 끝나지만 백아연 씨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노래 속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어서 심심해도 별로 나쁠 것 없이 잘 살고 있음이 느껴진다. ‘누굴 만나도 쏘쏘 혼자인 것도 쏘쏘/설레는 것도 나쁘지도 않은 기분’ 은 어떻게 보면 성불이나 다름없다.



나는 이 원고에서 ‘그래도 사랑은 좋은 거니까 한번쯤 용기를 내 보시라’고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쏘쏘’를 듣다 보니 그거야말로 아저씨의 낡은 주장인가 싶다. ‘이럴거면 그러지 말지’같은 상황을 겪은 여자에게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시라고 해도 될까? 불황이 세계를 감쌌으니 취업은 어려워지고 집값은 올라가는데 수입은 줄어든다. 남자는 여자를 혐오하고 여자는 남자가 무서워진다. 데이터에 입각한 판단이 중요해지는 만큼 데이터의 뒷받침 없는 모험적인 도전도 줄어든다. 지금까지의 사랑 노래는 보통 남자와 여자가 위험을 무릅쓰고 근거는 모자라도 희망적인 미래를 바라보자고 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쏘쏘’의 여자는 뮤직비디오와는 달리 아픈 게 아니라 정신을 차린 건지도 모른다. 마음을 줄 필요 없는 남자들에게 기력을 낭비하지 않을 만큼 현명해졌기 때문에 ‘딱히 맘이 끌리지가 않’고 ‘자꾸 어긋나는’ 것 아닐까. ‘쏘쏘’의 여자는 쓸모 없는 설레임을 버린 대신 냉정하고 차분한 판단력을 얻었다. 그 눈에 비친 세상이 ‘쏘쏘’라면 그녀의 말이 맞을 것이다. 여자들은 똑똑하니까.



뷰티 앱 매거진 <뷰티톡>에 연재하는 원고입니다. <뷰티톡>은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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