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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n 13. 2016

고립무원의 판타지

아무도 없는 오두막에 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Charles Isabey/cabinporn.com


2015년 미국에서 책이 한 권 나왔다. 이름은 <캐빈 포른>. 오두막 포르노다. 보면 먹고 싶어지는 푸드 포른처럼 보다 보면 가고 싶고 갖고 싶은 오두막 사진이 들어 있다. 오스트리아, 모로코, 미국, 일본, 노르웨이, 전 세계의 시골이 속삭이는 것 같다. 복작거리는 도시가 짜증나지 않냐고, 한적한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냐고.


여론과 독자는 이 속삭임에 긍정적으로 화답하고 있다. <옵저버> <텔레그래프> 등의 영미권 언론과 독일의 <슈피겔>이 이 책을 칭찬했다. 아마존의 독자 반응도 좋다. 2016년 2월 현재 이 책은 별표 5점 만점에 4.5개의 별을 얻었다. <킨포크>나 일련의 포틀랜드 정서와 이어진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골 판타지 자체는 새롭지 않다. 캐스 키드슨처럼 시골 이미지에 강력하게 뿌리내린 브랜드도 있다. 하지만 <캐빈 포른>의 시골은 꽃무늬와 메이플 시럽의 시골이 아니다. <가디언>의 제스 카르트너-몰리는 이 책을 다룬 기사에서 중요한 사실을 지적했다. 이 책의 사진 속 오두막은 늘 대자연의 미약한 일부다. 오두막은 작다. 실제 크기뿐 아니라 사진 안에서도 풍경에 비해 아주 작게 표현된다. 이런 오두막에서라면 한두 사람만 살 수 있을 것 같다. 캐스 키드슨의 시골이 친교라면 캐빈 포른의 시골은 고립이다. 메이플 시럽을 나눠먹으러 간 게 아니라 날 귀찮게 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까지 온 것이다.


21세기는 대도시와 초 연결의 시대다. 끝없이 사람이 몰려드는 도시의 생활비는 점점 비싸진다. 우리는 비싼 임대료를 내기 위해 지치는 노동을 하고 수익의 대부분을 다시 도시에서의 생활비로 뱉으며 살아야 한다. 거기 더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가상 환경이 생겼다. 대도시에 사니까 그렇잖아도 신경 쓸 타인이 많은데 가상 공간에서까지 남의 신경을 쓰거나 이상한 사람들의 폭력적인 이야기에 노출되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가끔 도망가고 싶어진다. 카톡도 단체방도 와이파이도 블루투스도 좋아요도 리트윗도 공유도 일베도 깨시민도 없는 청정한 세계로. 캐빈 포른은 바로 그 고립욕을 건드린다.


진짜 아이러니는 <캐빈 포른>의 창립자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자크 클라인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비메오의 공동창립자 겸 디자이너다. 그는 2004년 비메오를 만들고 몇 개의 스타트업을 더 거치다 지금은 DIY라는 교육 동영상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뉴욕에서 좀 떨어진 시골에 오두막을 만들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캐빈 포른을 만들었다. 그는 사실 1년에 6주 정도만 거기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인터넷 세계의 한복판에서 돈을 번 후 오프라인의 고립을 주장하는 삶이라.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21세기는 쉽지 않다. 언제는 쉬웠나 싶긴 하지만.


월간 남성지 <루엘>에 실렸던 원고를 조금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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