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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찬용 Jul 17. 2016

어반 자카파의 너무 강한 자극+드릴 말씀

트랩 비트같은 가사


어반자카파의 신곡 ‘널 사랑하지 않아’는 한결같다. 4분 조금 넘는 노래에서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11번 나온다. 세 명의 멤버가 각자의 음색으로 고음과 저음을 섞어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말을 열한 번이나 들려주는 것이다.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평소에 들어도 마음이 안 좋은데 실연 때문에 고통스러울 때 이 노래를 들으면 좀 싫을 것 같다.


가사처럼 이 노래엔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뿐이다. 헤어지는 순간을 묘사한 처음을 빼면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후렴구가 계속 반복된다. ‘널 사랑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눈물 흘리는 너의 모습에도 아프지가 않아/다른 이유는 없어 미안하다는 말도 용서해달란 말도 하고 싶지 않아/그냥 이게 전부야 내 진심인거야’ 가 이 노래의 전부다. 사연을 생략시켰다는 점에서 이 노래의 가사는 이야기가 아니라 장면에 가깝다. 이게 21세기 발라드인가 싶다.


뮤직비디오는 노래와 비슷한 듯해도 다른 길을 간다. 적어도 여기엔 이야기가 있다. 주인공 유승호 씨가 반차 낸 직장인 차림으로 예쁘장한 식당에 들어온다. 테이블에는 회사 다니는 남자친구 오빠를 엄청 자랑스러워하는 대학생 느낌의 이호정 씨가 앉아 있다. 둘은 마주 앉아 서로 스테이크를 썰어 준다. 영상이 흐르는 동안 어반 자카파는 성실하게 ‘널 사랑하지 않아’라고 외치고 있다. 유승호 씨도 내내 슬퍼 보인다. 헤어지자고 말하려나 싶다. 스테이크도 불쌍해 보인다.


‘널 사랑하지 않아’라는 말이 일곱 번째 나올 때 드디어 일이 일어난다. 화장실에 다녀온 유승호 씨는 앉아 있던 이호정 씨를 부르더니 호주머니에서 뭔가 꺼낸다. 나는 ‘널 사랑하지 않아’라고 적어둔 쪽지라도 주려나 싶었다. 내 빈약한 상상력과 달리 유승호 씨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낸다. 노래는 점점 고조된다. 유승호 씨가 이호정 씨의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는 순간 어반자카파는 모두 힘을 합쳐 널 사랑하지 않는다고 아홉 번째로 외친다. 이호정 씨는 희고 고른 앞니를 드러내고 웃으며 유승호 씨를 껴안는다. 유승호 씨는 초여름의 복숭아처럼 싱그러운 이호정 씨가 안아주는데도 굳어 있다.


이 노래의 가사와 뮤직비디오는 비슷한 길로 모인다. 가사에는 사연 대신 선언만 있고 뮤직비디오에는 맥락 대신 반전만 있다. 선언과 반전의 공통점은 자극성이다.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풀이될수록, 떨떠름한 표정의 유승호 씨가 헤어지자는 말 대신 다이아몬드 반지를 꺼낼수록 자극성은 점차 강해진다. 흰 국물에 매운 고추를 넣어 우린 나가사키 짬뽕의 매운 국물처럼 이 노래는 얌전해 보일 뿐 굉장히 독하다. 청자의 원초적인 신경을 자극한다는 점에선 트랩 비트와 큰 차이가 없다.


내가 일해 온 패션/라이프스타일 잡지 업계엔 마감의 고통이 고조될 때 아주 매운 떡볶이를 시켜먹는 곳이 꽤 있다. 그걸 시킬 때는 대개 모두 피로하고 신경이 곤두선 늦은 밤이다. 모두 잠들거나 놀고 있는 시간에 모여 앉아 말도 안 되게 매운 떡볶이를 먹으며 지금의 자극을 지울 정도로 강한 자극을 끼얹는다. ‘널 사랑하지 않아’는 내게 그런 떡볶이처럼 느껴진다. 빨갛지 않을 뿐 아주 매운 떡볶이. 난 헤어진 사람에게 이 노래를 추천하고 싶지 않다. 장염 걸렸을 때 매운 떡볶이를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남성잡지 <에스콰이어>피처 에디터로 일합니다. 이번 달 20일에 나오는 8월호에서부터 원고를 보실 수 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늘 그렇듯 깊은 감사와 안부를 전합니다.


++아, 브런치 계속 합니다ㅎㅎ 부지런히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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