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빠이 40주년의 의미
위대한 잡지들은 한 세대를 정의한다. 헤이본 펀치는 1960년대의 플레이보이를 발명했고, 올리브는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예술적인 젊은 여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보통 잡지는 특정한 하나의 시대에만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게 뽀빠이를 이례적인 잡지로 만드는 부분이다. 이 잡지는 지난 40년 동안 각각의 세대를 대표할 뿐 아니라 일본에 다양한 문화적 흐름을 안내하는 일을 훌륭히 수행했다. 1970년대 후반의 캘리포니아 대유행, 1980년대 초반의 프레피 붐, 버블 시대의 물질적 과잉, 그리고 1990년대의 스트리트 문화. 그리고 가장 엄청나게도, 과거에 대한 깊은 존중으로 동시대의 문화를 혼합하는 이 잡지는 바로 지금 어느 때보다도 활기차게 느껴진다. 남자와 여자, 젊은이와 노인, 일본과 전 세계인이 뽀빠이를 읽는다.
왜 뽀빠이는 40년 동안 성공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 잡지의 근원적인 목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최신의 해외 문화를 찾아내어 일본으로 가져와 독자들과 그걸 나누는 것.
1976년, 뽀빠이는 어두운 시절과 달랐던 긍정적인 감정을 가져오길 바랐다. 일본의 학생 운동은 테러리즘으로 변질됐다. 경제 신화는 전국적인 공해로 인해 파괴되었고 1973년의 오일 쇼크로 비틀거렸다. 한때 일본이 동경하던 것의 원천이었던 미국도 깊은 존재론적 위기에 빠져 있었다. 베트남 전쟁의 비극, 닉슨 대통령의 사임, 그리고 정부 관련 음모론에 대한 깊은 공포증. 일본의 에디터와 스타일 리더들은 영감을 받기 위해 유럽으로 방향을 틀었다.
뽀빠이의 창립자인 키나메리 요시히사와 지로 이시카와는 일러스트레이터 코바야시 야스히코와 함께 1975년 고전적인 미국산 아웃도어 용품을 소개해서 ‘헤비 듀티’ 의류의 붐을 부른 메이드 인 U.S.A. 카탈로그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헤비 듀티는 너무 투박하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키나메리와 이시카와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미래를 향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열광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라이프스타일의 첫 모델을 캘리포니아에서 찾아냈다. 학생들이 맑은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프리즈비를 던지고, 폴로 셔츠처럼 운동복 풍의 옷을 입는 곳. 설립자들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활기를 주고 일본의 “표류기”를 치료하기 위해 뽀빠이 창간호에서 미국의 ‘웨스트 코스트 라이프스타일’에 집중했다.
뽀빠이는 도쿄의 거리에 UCLA 티셔츠를 유행시키는 등의 즉각적인 반응을 만들어냈지만 미 서부라는 유행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건 별 상관 없었다. 뽀빠이에겐 비밀 무기가 있었다. 그 무기는 그게 어디에 있는 무엇이든 언제나 “미래”를 찾아내려 하는 “팝적인 시선”이었다. 뽀빠이는 일본의 팝 문화와 나머지 세계 사이에 최초의 실시간 커뮤니케이션 링크를 만들었다. 뽀빠이 에디터들은 끊임없이 거대한 가방을 들고 미국으로 날아가 잡지에 실을 물건을 몇 백 개씩 갖고 돌아왔다.
이런 일들은 일본과 나머지 세계의 정보 격차를 거의 제거시켰다. 완전 창간호부터 뽀빠이는 Z-보이즈가 스케이트보딩을 다시 만들 때의 제프 호(Jeff Ho)의 제파 서프(Zephyr surf)와 스케이트 숍을 취재했다. 새로운 정보를 위한 뽀빠이 에디터들의 갈망은 매 호마다 증폭돼서 1980년대 중반엔 일본 독자들이 종종 미국인보다 미국 문화의 디테일을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뽀빠이는 또한 수백 개의 물건이 정보와 가격과 함께 배치된 “카탈로그 잡지” 포맷을 창안했다. 그렇다. 청소년들이 가게에 발을 들이기도 전에 쇼핑을 하는 컨슈머리즘의 승리다. 하지만 이 포맷은 문화를 외국 어딘가에 있는 무형의 기운이 아니라 적용되고 경험될 수 있는 구체적인 물건으로 만듦으로써 일본의 팝 문화를 질적으로 향상시켰다. 독자들은 이 포맷을 사랑했고, 오늘날 일본의 거의 모든 소비자 잡지는 ‘뽀빠이 오리지네이티드’라 할 이 레이아웃을 쓴다.
뽀빠이의 부제는 표지에도 쓰여 있는 “시티 보이를 위한 잡지(Magazine for City Boys)”다. 그리고 해외 각국에서 가져온 뽀빠이의 질 좋은 정보는 일본의 젊은이를 넘어 국경을 넘은 세대까지 건드렸다. 그들은 동등하게 도쿄, 런던, 파리 아니면 뉴욕에 있는 “시티 보이”다. 뽀빠이의 포맷에 “시티 보이”의 에토스가 섞였을 때 뽀빠이는 거의 프로토-인터넷이 되었다. 진짜 인터넷은 뽀빠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반대였다. 우리는 정제되지 않은 정보의 대홍수 속에 살고 있으므로, 어느 때보다 더, 어떤 문화가 가진 최고의 것에 집중하는 뽀빠이(Popeye)의 “팝적 시선(pop eye)”이 필요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뽀빠이는 스스로의 뿌리를 향해 정신적으로 귀환했지만 근본적으로 뭔가 중요한 것이 바뀌었다. 한때 뽀빠이는 일본 독자에게 세계를 상징했다. 하지만 지금의 뽀빠이는 세계를 향한 도쿄를 상징한다. 국제적인 관점에서 도쿄의 매력은 전통 문화가 아니라 모순된 것들의 매끄러운 조합이다. 쇼와 시대의 오래된 건물과 매끈한 마천루, 프렌치 오뜨 퀴진과 카츠카레. 뽀빠이는 도쿄의 가장 멋진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매 호마다 신중하게 이런 대조의 균형을 맞춘다. 도쿄라는 과포화되고 압도적인 도시에서 단련된 뽀빠이 에디터의 시선 덕분에 이들은 일본을 넘어 다른 대도시의 아름다운 가이드 역시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뽀빠이의 40년 여정은 한 잡지의 성공이 아니라 일본이 세계의 문화 안에서 권위 있는 큐레이터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는 이야기다. 국가적 보물과도 같은 “팝적 시선”을 통해.
W. 데이비드 막스
도쿄 기반의 작가, neojapanisme.com의 운영자 겸 에디터. 저서로 일본 남성복의 문화사인 <아메토라: 어떻게 일본이 아메리칸 스타일을 지켰는가> 가 있음.
일본의 남성 패션지 <뽀빠이>는 이번 달에 창간 40주년 기념호를 출간했습니다. 이 잡지 중간의 기념 페이지 맨 앞에 미국 칼럼니스트 W. 데이비드 막스의 원고가 있었습니다. 읽어 보니 재미있어서 번역해서 여기 올립니다. 스스로의 자축 페이지에 들어간 원고인 만큼 칭찬이 엄청납니다만 이 잡지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더 나아가 잡지라는 것의 미래에 대해 통찰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일영 병기로 쓰인 원고 중 영문을 번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