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창업 도전기 (2) 북리뷰 시리즈 - 2
밀리의 서재에 다음 두 권의 책이 있는 건 행운이었다. <십분의 일을 냅니다>(이전 글 참고)를 덮자마자 <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를 펼쳤다. 두 책 모두 읽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덮은 후 남는 여운은 달랐다. <십분의 일을 냅니다>를 읽고 나서는 용기를 얻었지만 <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를 읽고서는 순간 의기소침해졌다. <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는 책바의 스토리가 중심축이 되기는 하지만 이 책은 일종의 자기계발서 같았다, <타이탄의 도구들>같은. 책바 정인성 대표님은 a) 자기 자신을 잘 알고, b) 끊엄없이 실행하고 도전하며, c) 고객을 세심하게 챙기는, 그야말로 위대한 거인, '타이탄'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책을 일독한 당시 내가 자기계발을 할 에너지 자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당시 나는 연구로 인한 자괴감에 짓눌린 상태라서 대표님과 나의 역량을 비교하며 위축되었다. 참으로 못나게도 그땐 그랬다.
지금은 일독한 지 한달은 지난 뒤다. 그 동안 마음의 회복이 많이 이루어졌고 다시 벤치마킹을 위해 책을 펼쳤다. 다시 봐도 자기계발서 같은 인상은 여전하다. <십분의 일을 냅니다>는 맨땅에 헤딩하며 겪는 시행착오가 위트 있게 묘사되어 친근감이 있었는데(relatable) 아무래도 이 책은 너무 교과서적인 성공의 스토리라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위화감이 남았다. 사실 둘 다 어떻게 보면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인데 글쓰기 방식의 차이가 컸다. 전자는 동네 오빠가 썰을 푸는 느낌이라면, 후자는 고학번 선배가 조언을 하는 느낌이랄까. 또 십분의일의 이야기는 에피소드 중심이라면, 책바의 이야기는 생각이 매우 체계적으로 정리된 글이었다. 그 점에서 책바의 노하우가 숙지하기는 더 쉬웠다. 사실 나는 책 읽는 바를 꿈꾸는 내게, 벤치마킹할 선진 사례로서는 잘 정리하는 방식의 글쓰기가 오히려 알맞았다(괜한 청개구리 기질 때문에 불편해서 그렇지).
이 책은 총 네 파트—내 일을 찾다, 책바를 열었습니다, 나답게 일하다, 나답게 산다—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내 일을 찾다'에서는 대표님의 화려한 이력이 소개되었다. 니플리스라는 아이템으로 대학생 때 이미 창업에 도전한 정 대표님은 이후 대기업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다가 책바를 창업했다. 이 부분에서 참 자극을 많이 받기도 하고 나의 이력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다. 대표님이 열심히 비지니스를 하던 젊은 시절에 나는 수목원과 식물원에서 분투하고 있었다. 대표님의 점들이 이어져 책바가 되었다면 식물 곁을 맴돌던 내 점들도 이어져 나만의 바가 될 수 있을까? 나도 "강한 실행력 유전자"를 가진 정인성 대표님처럼 일단 해보고 싶다.
하지만 무턱대고 할 수는 없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은 정말 유용하다. 특히 2부 '책바를 열었습니다'는 책바의 캐치프레이즈인 "술과 책의 공감각을 구현하는" 방식들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특히 유익했다. 하지만 벤치마킹할 내용은 물론 책 전반에 걸쳐 지뢰밭처럼 산재되어 있다. 그 중에 내가 가져가야할 포인트를 추리면 다음과 같다:
1. 케이스스터디
• 혼자 운영하는 작은 가게
- 최대 한도의 손님
- 손님 간 퍼스널 스페이스
• "전반적인 스킬과 운영을 배우려면 바에 가는 것이 제일 좋다." - p.60
• 도쿄의 북카페
2. 임장/시공
•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작게 실패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기투자비용을 낮출 필요가 있었다." -p.81
• 임대료 리스크 - 건물주가 어떤 사람인지 미리 체크
• 실력 좋은 작업자들은 바빠서 일정 관리 중요
• 세입자 입장에서 공사기간 최대한 확보하는 것 중요
3. 마케팅/컨텐츠
• 니플리스, 디젤매니어 후기 글로 바이럴
• 원소스 멀티유스 (p.155)
4. 비주얼
• 메뉴판을 책 형태로 만듦 (나도 생각한 아이디어인데 역시 새로운 건 없다)
• (nudge) 메뉴판을 곳곳에 놓아 주문을 유도
5. 운영
• 개업 후 3년 폐업률 최대 - 넉넉한 자금 확보 필수
• 표정과 몸짓을 관찰하기/ 손님의 취향, 습관에 대한 응대를 체화하기
• 고객은 불만족을 잘 말하지 않는다
• 나이키의 경쟁자는 닌텐도, 책바의 경쟁자는 날씨와 거리
• 책바는 손님이 카운터에서 주문하는 시스템
• 내 노동량 밖의 일은 손님이 더 움직이게 설계
• 마감곡 프로젝트로 애착을 높이고 부드러운 마감
• 빌보드 차트, 책바문학상 등으로 참여, 애착을 높이고 물성 있는 결과물 생산하기
•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 1년에 두세번은 출장(을 빙자한 여행)
테이크홈메시지(Take-home-message)를 나열해보니 정말 많다. 성장과 생산에 대한 요구에 지쳐버린 나라서 프로덕티브의 끝을 달리는 대표님께 삐딱선을 탔을 뿐, 사실 정말 존경스럽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책 읽는 바를 열고 싶은 이들을 위한 <타이탄의 도구들> 같다. 하지만 타이탄의 도구들이 모든 사람에게 알맞은 것은 아닌 것처럼 책바의 모범 답안이 내 미래의 바를 위한 정답 또한 아닐 수 있다. 책바는 책 읽는 바의 선발 주자로서 보란듯이 성공했고 OSMU로 콘텐츠를 확장하는 살아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제 책 읽는 바는 더 이상 신선하지 않고 다른 차별점이 필요하며, 상상할 수 있는 컨텐츠를 책바에서 많이 시도했기 때문에 차별화는 더 까다롭다. 물론 그대로 벤치마킹할 지점도 있겠지만 똑같기만 한다면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표님이 꼽은 행복의 이유 만큼는 꼭 벤치마킹할 것이다. 정인성 대표님은 공간으로 주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결과에 대한 빠른 피드백을 받으며, 정신과 육체노동이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책바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이것은 내가 음주가의책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느꼈던 것과 거의 상통한다. 다만 그때는 알바생으로서 투철한 서비스정신은 없었기에 피드백에는 둔감했었다. 하지만 한글 가사가 나오는 배경음악에 손님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거나, 에어컨에 몸을 움츠리는 손님을 볼 때, 일회용품은 한사코 놓고가는 단골을 캐치할 때 자연스럽게 대응하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었다. 바 마스터를 꿈꾸는 지금, 책바 마스터의 글을 통해 손님에게 사려 깊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손님과 나의 행복 모두와 연결된다는 것을 되새겼다.
마지막, <밤에 일하고 낮에 쉽니다>에서 보이는 바 마스터로서 '밤에는 일하고 낮에는 쉬는' 내 미래의 라이프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이건 벤치마킹이 아니라 어느 바의 바텐더라면 당연한 일이다. 평일 오후에 한적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지만 불금이나 주말 저녁의 사교를 포기해야 하는 삶. 매일 매일 같은 루틴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또 때로는 정든 단골을 떠나보내야 하는 삶. 그런 삶은 지금 내 삶과 닮았기도 다르기도 하다. 자율적인 출퇴근이 가능한 연구실이라 남들 일하는 평일 오전에 요가나 수영을 하는 시간은 바텐더의 삶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나방처럼 창극, 판소리, 오케스트라 등 저녁 공연을 주중, 주말할 것 없이 보러다닐 기회는 크게 제한되겠지. 평일 하루나 이틀 정도는 휴무를 하더라도 가장 매력적인 행사가 벌어지는 금요일이나 토요일에는 가게 문을 반드시 열어야 할테고 말이다.
정리하자면, <밤에는 일하고 낮에 쉽니다>는 a) 책 읽는 바 창업과 운영을 위한 도구들뿐 아니라, b) 바 마스터의 가치, 행복과 라이프스타일을 풀어 쓴 책이다. 정민성이라는 사람 그리고 책바라는 공간은 뗄 수 없다. 정 대표님의 행복은 책바에서 오고, 컨텐츠를 OSMU하듯 행복도 책바에서 뻗어나오는 듯 하다. 처음 읽을 때는 텐션 넘치는 대표님의 가르침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두 번째로 읽으니 그 가르침 속에 묻어나오는 손님과 공간에 대한 진심이 느껴진다. 나도 진심을 다해 나라는 사람을 담아내고, 연결되고, 확장할 수 있는 공간을 갖기를, 이 책을 덮으며 다시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