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창업 도전기 (4) 실전
* 아이엠어바텐더 학원에 대해서는 스크롤을 내려 다음 절 "아바스쿨에서 네 번의 불금을 보내다"를 보기 바란다.
책바 창업을 꿈 꾸며 처음 고민했던 것은 주종이었다. 와인바에서 알바를 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별 생각없이 와인바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세 가지 이유로 기각되었다. 첫번째, 와인바를 하면 안주에 힘을 써야한다. 둘째, 와인이 별 맛이 안느껴진다는 것이다. 셋째, 식물과 관련된 내 배경과 엮으려면 와인보다는 진 등 다양한 식물 베이스의 더 적합했다. 이 중에서도 두번째 이유가 정말 결정적이면서 의외인 것이, 나는 정말 와인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와인을 마시는 행위 자체가 나를 위한 하나의 리츄얼이던 시절이 있었다(그게 알콜 의존증으로 가는 지름길이었지만). 가녀리지만 단단한 와인잔 스템을 잡고 코끝을 향해 들어올릴 때. 그때부터 느껴지는 쾌락의 향미와 그 향미가 몸체를 갖고 흘러내릴 때 입 동굴에 파도 치는 풍미. 아, 만화 <신의 물방울>의 온갖 미사여구가 이해될 만큼 내게 와인은 풍성함과 풍부함 그 자체였다.
서론이 길었는데, 아무튼 요지는 지금의 나는 와인을 예전과 같이 즐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2년의 절주가 입맛까지 바꿔놓은 것일까? 와인바 창업을 위해 와인 훈련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사서 먹어본 와인은 떨떠름했고, 향긋함이 나를 감싸안던 옛 기분은 느껴지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하지 않다'라는 게 내 지론인지라 떨떠름함을 느낀 즉시 내 바의 주종으로 와인은 탈락이었다. 대안이 필요했고, 그러다가 떠오른 술이 진(gin)이었다.
싱가포르 여행 중에 진바에 간 적이 있었다. 진이란 술이 있는 줄도 몰랐기에 추천 받은 바로 향할 때 모험심에 두근두근했다. 그 진바는 어두컴컴했고 히피스러운 바텐더는 깨알같은 글씨가 있는 메뉴판을 두고 갔다. 메뉴에는 온갖 종류의 진이 가득했고, 글씨들은 대부분 진에 들어간 식물재료를 설명하고 있었다. 쥬니퍼베리, 엘더플라워, 코리안더... 그 진바에 둘러앉았던 나를 포함한 세명의 눈이 반짝였다. 우리 셋은 수목원에서 교육생 신분으로 연을 맺은 삼총사였기 때문에 여러 식물로 가득한 그 메뉴판은 우리에게 글로 쓰인 정원이었다. 들어간 식물 재료를 두고 고민을 하던 중, 바텐더가 다가왔다. 두 가지 진 사이에 고민 중이라고 하자 망설임 없이 테이스팅 잔 두개를 내밀었다. 그 중에 엘더플라워가 들어간 진을 고르자 제법이라는 듯 씨익 웃으며 서빙을 해주던 바텐더. 어두운 조명 속에서도 그 미소는 빛났고, 멋모르고 골랐을 뿐이지만 괜히 인정을 받은 듯해 기분이 뿌듯했다.
그 기억이 났다. 와인 대신에 진은 어떨까? 와인이 내가 정말 깊이 알고 좋아했던 첫사랑이라면, 진은 낯설지만 다채로운 설렘을 가져다줄 새로운 연인처럼 느껴졌다. 나는 진을 많이 마시는 편도, 즐기는 편도 아니었지만 진에 들어간 수많은 식물재료와 그들에게서 정직하게 나타나는 노트들의 세계가 궁금했다. 문을 두드리고 싶어졌다. 식물과 가드닝을 공부했던 내 과거의 조각이 그 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진을 알아가려는 여정을 시작했다. 진에 대한 두터운 책 2권을 샀고(다 읽지는 못했다), 칵테일바에서 진 칵테일을 맛보았다. 진은 스트레이트보다는 다양한 칵테일로 즐기는 술이었기에 자연히 관심이 칵테일로 옮겨갔다. 와인은 따라먹는 술이지만 진 칵테일은 만들어먹는 잔술이기에, 나는 칵테일 만들기를 배우러 학원에 등록했다.
어디에서 칵테일을 배워야할까? 나는 사실 별 고민없이 검색 후 첫번째로 클릭한 페이지에서 본 '아이엠어바텐더스쿨'을 등록했다. 참고로 칵테일을 배울 곳은 대한민국에 한 5곳, 서울에 4곳, 부산에 1곳 정도밖에 없다고 한다. 아이엠어바텐더스쿨, 줄여서 아바스쿨은 다른 곳들을 더 찾아보지 않아도 위치, 일정 상 내게 최적이었다. 위치는 집과 학교에서 지하철로 30분 거리인 홍대입구역, 수업시간대는 선택지가 다양한데 그중 금요일반(주1회 4시간)은 연구를 병행하는 내게 딱이었다. 월수/화목 반보다는 에너지가 분산되지 않기 때문이다. 금요일 실기반은 오후 4시에서 8시까지였는데 필기반까지 수강할 경우 한시간 일찍 3시에 시작했다. 나는 다섯시간 수업은 너무 피곤할 듯 하여 필기는 독학하기로 하고 실기반을 등록했다.
아바스쿨에 대해서는 긴 말 않겠다. 다만 칵테일 세계에 아바스쿨, 특히 부원장님이신 최규영 선생님을 통해 입문하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첫 시간에 교재와 앞치마를 받으면 여정이 시작된다. 3회차가 되면 조주기능사에 나오는 40종을 모두 만들게 되고 마지막 4회차에서는 조주기능사 모의고사를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바텐딩이 몸에 익는다. 게다가 원한다면 리뷰이벤트에 참가해 칵테일세트(지거, 믹싱글라스, 스테이너, 바스푼)을 증정해주니 한달 수업을 잘 소화하면 바텐딩을 위한 몸과 도구가 구비된다.
바텐딩을 체화시키는 탄탄한 수업 컨텐츠, 이에 더해 아바스쿨의 네트워크 덕분에 나는 이 곳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경륜이 풍부한 선생님께서는 바 창업의 꿈을 진지한 고민으로 상담해주셨고, 같이 수업을 듣는 동료들은 요리사, 호텔리어, 소믈리에, 호텔조리학과 학생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이라 많은 조언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대학교 연구실의 고인 물인 내가 이런 분들을 만나 대화할 수 있다는 게 아바스쿨이 준 가장 큰 혜택이 아닐까? 게다가 아바스쿨 커뮤니티는 바텐더 구인 플랫폼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에 당장 취직을 원하는 이에게는 기회의 땅이라고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내가 아바스쿨 커뮤니티에 가입하자마자 처음 본 글이 우리 집 3분 거리의 바의 채용 공고였다. 현 시점에서는 지원을 고민 중인데 아바스쿨 선생님께 상담 후에 결정하려 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2025년 6월에 바 창업의 꿈을 갖고 7월에 주종을 와인에서 진으로 튼 후에 8월에 바텐더로 거듭나고자 학원에 다니고 있다. 심지어 지금은 경험을 쌓을 겸 동네 바에 지원할지 고민 중이다(뽑아줄 지는 미지수지만). 지난 3개월 동안 신분은 대학원생 그대로지만 몸과 머리에는 바텐더, 아니 바마스터가 되기위한 양분을 쌓고 있다. 오랜만에 나를 추동하는 힘을 느낀다. 지금 모멘텀을 놓쳐버리면 모든 것이 흐지부지될 것 같은 불안감도 밀려온다. 한편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 따라 연구에만 몰두하는 게 옳을까 하는 생각도 스친다. 그쪽의 꿈도 완전히 놓아버리진 못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처음 진을 맛본 싱가포르의 한 바에서, 미소가 반짝이던 바텐더가 건네준 한잔, 각자의 잔들 앞에 둘러앉아 긴장을 풀어내던 우리들. 그 과거도 내 꿈이다. 알바를 하던 '음주가의 책방'에서 따로 또 같이 와인을 홀짝이며 책을 읽던 그 고요함. 그 과거 역시 내 꿈이다. 어쩌면 나를 추동하는 힘은 노스텔지어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