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차 초등교사의 결심.
몇 년을 교사로서 지내다가 문득 든 생각이 있다. 학교도 국가기관인데 도대체 왜 학교마다 업무시스템이 제각각일까? 다시 말하자면, 국가에서 "이렇게 해라~"라고 정해져 내려오는 업무시스템이 없다. 말 그대로 그 학교의 '업무문화'다.
새 해가 되면 새 학년부장의 스타일을 새롭게 배워서 따라야 하며, 관리자가 바뀌면 새 관리자의 스타일을 눈치채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으며 업무를 순조롭게 처리할 수가 없다. 다른 학교에서 전보를 온 선생님이라면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짚어드려야 한다. 내가 전보를 가도 마찬가지.
거기다가 교사의 업무는 매년 바뀐다. 비슷한 직군 내에서 이쪽저쪽 움직이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연관이 없는 분야의 업무로 배정받기도 한다. 교육청 장학사나 주무관도 마찬가지라서, 새로 맡게 된 업무인데 장학사나 주무관까지 바뀐 해에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혼자서 여기저기 수소문해 가며 교육청 홈페이지와 관공서 홈페이지를 뒤져 각종 매뉴얼도 뽑아내고 어찌어찌 1년을 보내고 다음 해가 되면 업무가 또 바뀐다.
올해 새로 맡은 우리 반 아이들과 새 교실. 정성 들여 교실을 꾸미고, 학급 규칙을 만들고, 학급운영도 열심히 하고 학부모 응대도 하면서 3월을 보낸다. 벌써 진이 다 빠져 힘이 들 때쯤 교실이 익숙해지고 내 책상이 손에 익는다. 그렇게 수업도 열심히 하고, 자료도 열심히 준비하고, 아이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과 해야 할 것들을 일러주며 때때로 울려오는 학부모 전화도 받으며 1년을 보낸다. 그리고 새해가 되면 이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아이들과 새 교실이 나타난다.
선생님들은 이렇게 평생을 살아간다. 새로고침, 새로고침, 새로고침.
나는 결국 이곳을 떠날 것이다. 결연하게 마음을 먹었다. 가족에게도 말을 하였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생각날 때마다 엄포를 놓았다. 반드시 이직에 성공하겠다고.
'그래도, 이만한 직업이 없다.'
'열심히 공부해서 가지게 된 직업인데 참고 버텨봐라.'
'적당히 대충대충 하면서 살다 보면 승진도 하고 급여도 오르고, 그러면 괜찮을 거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교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반드시 나오던 단골멘트였다. 남들이 보기에 충분히 부러운 직업이고 일하기도 나름 괜찮으며 무엇보다 호봉이 계속 오르고 퇴직하고 나면 연봉도 주지 않는가?
그런데, 요즘은 교사를 그만둔다고 할 때 저런 말들을 하는 사람이 없다. 한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 과반이 넘는 수가 길거리로 나와 한 목소리를 내며 외쳐댈 때, 그 집단에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렇게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왜 저렇게 쏟아져 나올까?"
그 광경을 지켜보며 이런 질문을 던졌던 사람들은 더 이상 교사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교사의 부모와 가족들도, 교사의 친구들도, 교사의 자녀들도, 교사의 오랜 제자들도 그리고 그 교사의 동료교사들도 이제는 교사를 그만둔다고 말하면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교사 말고도 할 일이 수도 없이 많다.'
'1년이라도 더 젊을 때 빨리 떠나라, 시간이 지나버리면 나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다.'
'선생님, 도전을 응원해요!'
지난 10년의 시간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교사가 되기 위해 보냈고, 교사를 하면서 보냈던 20대. 이제 교사를 끝맺고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 보기 위해 준비하려 한다. 내가 가려고 하는 곳에서 이미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들보다 10년이나 더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파하기만 한다면 또다시 10년이 지났을 때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지금처럼 아파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20대를 보내며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들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고 나를 알아갈 수 있는 귀중한 시간들을 얻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이제는 정말 내가 좋아하고 재밌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나를 위해 살아가보고 싶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오늘도 아이들과 씨름하며 미래의 사회구성원을 양성하고 계신 수많은 선생님들.
항상 응원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