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버릴 수 없던

메이저 8번 카드. 힘

by 시애

깰바자가, 무다이, 백찌로……. 친구와 청사포 기념품 가게에 갔다가 부산 사투리로 만든 기념품들을 발견했다. 외할머니 옆에서 월요일 밤마다 가요무대를 보며 해외동포까지 염려하면서 자란 나는 드높은 사투리력으로 친구가 묻는 낱말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다 한 단어가 눈에 띄었다. ‘정지’. 그래, 정지라고 불렀었지. 나의 유년에는 부엌이 없었다. 정지만 있었다.






그 시절의 정지는 단순히 부엌만이 아니었다. 부엌이면서 보일러실이고 화장실이며 욕실이었다. 외할머니께서 한쪽에 쪼그리고 앉으셔서 연탄과 착화탄에 불을 붙이면, 나는 그 뒤에 등을 맞대고 쪼그려 앉아 오줌을 눴다. 구석의 LPG 가스레인지는 종일 목욕물과 된장찌개를 부지런히 끓여냈다.



꽃 같던 나이의 엄마는 나와 동생을 외할머니께 맡기고 시부모님을 모시며 음식 장사를 하셨다. 스물아홉에 나를 업은 채로 오랑캐같이 무람없는 빚쟁이들을 피해 인조처럼 도망 다니고 난 후였다. 밖으로 나서야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어설프게 시작한 가게는 제법 잘됐다. 앉을 새가 없어 엄마 종아리 핏줄들이 죄다 파랗게 올라왔다. 우리 남매는 간혹 장사를 쉬는 일요일에만 부모님을 보러 갈 수 있었다. 어린 나는 엄마와 아빠가 사는 집으로 가다 헤매고 마는 꿈을 자주 꾸었다.






어느 해의 일요일 오후였다. 부모님께서 무슨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나가봐야 하니까 동생이랑 둘이 있으라고 했다. 나는 멍청한 얼굴을 하고 허둥대며 나가는 어른들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뒤늦게 슬리퍼를 대강 신고 복도로 나가보니, 가게 방향에서 연기가 풀풀 솟고 있는 게 보였다.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귀뿌리부터 정수리까지 싸늘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느낌이 좋지 않다.



동생은 자고 있었다. 어른들 말을 어기더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동생은 아직 어리니까, 안 보는 게 좋을 거 같으니까, 나 혼자 가야지. 조용히 문을 열고 살금살금 현관을 빠져나왔다. 삐그덕 문을 닫자마자 펄떡대며 뛰었다. 시장길을 뛰다가 걷다가 하며 가게로 향했다. 자꾸만 얼굴이 홧홧해졌다. 숨이 차서 목과 가슴이 아팠으나 쉴 수가 없었다. 정말로 엄마 가게 자리구나. 뛰어갈수록 명백해졌다. 끝도 안 나는 시커먼 연기가 무서웠다.



죽집 골목 안쪽을 돌아 드디어 도착한 가게는, 역시나, 불타고 있었다. 가게가 있던 자리에 태어나서 본 가장 커다란 불이 활활 타올랐다. 옆 가게에서 시작된 불이 인근의 몇 개 가게에 옮겨 붙었고, 불을 끄는 사람과 우는 사람과 소리치는 사람과 구경하는 사람들과 그걸 찍으러 온 카메라에 기자들까지 뒤엉켜 소란했다. 정신이 없었다. 아수라장에서 나를 발견한 부모님은 벌겋게 부은 얼굴로 왜 왔노, 니는 안 봐도 되는데, 하며 중얼거리셨고, 우리 식구를 발견한 막내 삼촌은 아빠를 붙잡고 카메라가 옆에서 찍으나 마나 눈물 바람이었다. 나는 엄마를 걱정하다 가게 뒤에 살던 고양이를 걱정하다 다시 아빠를 걱정하다 울먹거리다 했다. 울음 중간중간에 불나기 전의 가게 모습이 떠올라 자꾸 새로 서러웠다.






어린 마음에도 큰일이 난 건 알았다. 이제 가게도 없어졌으니 우리 식구 다 같이 살길은 또 한참 멀어진 것도 알았다. 표정 없는 표정으로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니, 정지에 엄마가 있었다. 연탄아궁이를 등지고 쪼그리고 앉아 있던 엄마가 나를 맞아주었다. 평일 오후의 엄마는, 쪼그린 채로 시커멓게 탄 동전들을 벅벅 문질러 씻고 있었다. 그새 가게에 다시 다녀오셨다고 했다. 정말 뼈대밖에 안 남았더라며, 건져올 거라곤 이 동전들밖에 없더라고 했다. 은행에 가져가기 전 동전의 검댕들을 벗기려던 것인데 아무리 칫솔질을 해도 잘 벗겨지지 않았다. 탄 자국이 잘 벗겨지지 않아서 신경질을 내다가 엄마가 조금 울었다. 엄마가 울어서 나도 울었다. 그래도 엄마는 조그만 ‘다라이’ 속 동전들의 검댕을 끝까지 벗겨 다음날 지폐 몇 장과 반찬거리들로 바꿔 오셨다.



그날, 엄마께서 정지에 쪼그려 앉아 타버린 동전들을 힘차게 씻던 장면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한없이 먹먹하고 슬프고 그런데도 어쩐지 든든한 장면. 세상을 원망하고 인생에 분노하며 드러눕고 싶었을 만도 한데, 하루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신 적이 없었다. 엄마는 쓰러지지도 않았고, 울부짖지도 않았고,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도망가지도 않았고, 다만 타다 만 동전을 주워 와서 씻으셨다. 그게 어떠한 온도의 마음이었는지 이제는 절절히 안다. 그날의 엄마께서 정한 물로 씻고 계시던 것은 그래도 살아내겠다는 의지가 아니었나, 그런 생각도 해본다.



‘STRENGTH’라고 쓰인 카드의 주인공은 우락부락한 장군이 아니라 온화한 표정의 여인이다. 한없이 다정해 보이는 이 여인에게 백수의 왕 사자가 다리 사이로 꼬리를 내리고 애교를 부리고 있다. 사자로 대표되는 현실의 매서운 시련을 성숙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가만가만 쓰다듬으며 달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힘이다. 하루에도 십여 마리씩 바퀴벌레가 나오는 주택에서 시부모님을 모시며, 숟가락부터 하나하나 다시 장사 밑천을 마련하면서도 엄마는 씩씩하셨다. 부모님께서 한 번 다투는 모습조차 보지 못한 채로 나는 어른이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드디어 지붕 있는 차가 생긴 날(어느새 빗물이 내 온몸을 적시던 오토바이의 날들이여, 안녕)과 마침내 화장실과 욕실이 있는 집에 살게 된 날과 처음으로 식구들에게 대패삼겹살 대신 수입산 소고기를 구워 먹이며 아버지께서 기분 내시던 날들이 차례로 지나갔다. 그 사이 사이에 있었을, 어쩌면 서럽고 서글펐을 사자 같은 날들을 내가 끝내 모르고 큰 것은 엄마의 씩씩함 덕분이었을 것이다. 우리 몰래 새벽마다 식구들 마음을 태웠던 검댕을 다 벗겨내고 계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혼자 조금 울면서.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