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의 탄생

메이저 1번 카드. 마법사

by 시애

토요일 아침을 낭비하는 방법으로 춤 연습만 한 게 없다.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공연을 신나게 보고 온 다음 날 아침에도 혼자서 ‘범 내려온다’의 스텝을 연습해 보다 곧 집어치우기로 했다. 머릿속에서 순서대로 조합한 동작을 팔과 다리로 내려보내 하나씩 실행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려서 도저히 노래의 리듬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한 것도 아니라서 흐느적거리면서 삐걱삐걱하고 있으니 좀비 흉내와 다를 바 없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왔다. 내 길이 아니구나.



철퍼덕 주저앉아 뜀틀 연습할 때를 떠올렸다. 달려가서 → 두 발을 구른 후 → 뜀틀의 2/3 쯤을 양손으로 짚어 → 뜀틀 반대쪽으로 몸을 보낸다는 프로세스를 손발에 전달하는 시간이 느려서 매번 뜀틀까지 달려가 애꿎은 배만 박고 오는 게 나야 나. 대학교 신입생 때는 내가 어영부영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자 동기들이 일제히 박수를 쳐 주었다. 자전거는 한 번 익히면 몸이 기억한다고들 하던데, 내 몸은 그런 거 없고 지금도 자전거로는 등속직선운동(멈춰 있거나 누가 밀어줘서 출발하면 방향을 바꿀 수 없거나)밖에 못 한다. 촌각을 다투는 도로에서 손발에 버퍼링 걸릴까 무서워 운전을 못 하고 있는 건 비밀이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걷는 걸 좋아해서라거나 알뜰한 타입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메이저 타로 1번의 주인공은 마법사다. 장미와 백합을 피워냈으며, 다른 것들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원소도 다 갖추고 있는 데다 머리 위를 보면 정신적 에너지마저 무한대이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능력은 신에게서 받은 것. 마법사는 하늘에서 받은 힘을 땅을 위해 쓰는 존재다. 연결고리인 것이다. 서로가 촘촘히 연결된 사회에서 우리는 나의 재능으로 다른 이들을 돕고 그 대가를 받아 또 다른 이의 재능을 산다. 내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쓸지 찾는 것은 평생을 두고 숙고할 문제다.



몸으로는 좀처럼 어른 한 사람 몫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말이나 글로 밥을 번다. 주로 2시 정도까지 끊임없이 말을 하고, 그 이후로는 문서에 글자들을 채워 넣는다. 나는 초등교사다. 내가 매일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을 하며 살게 될 거라곤 어릴 땐 상상도 못 했었다. 제자리에서 일어나 발표하는 것만도 다리를 덜덜덜 떨었다. 발표를 한 번 하고 나면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렸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반장으로 임명되었다(두둥). 배치고사 성적이 좋아 반장이 되다니, 지금 생각해 보니 몹시 비민주적이고 촌스러운 처사였으나, 그때는 항의해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갑자기 들이닥친 상황에 어찔어찔했다. 차... 렷... 한마디 하는 것에도 수업 끝날 때까지 떠는 애가 어떻게 반장을 합니까. 교과 선생님들이 많아지니 반장한테 하라는 건 또 어찌나 많은지 매일이 뜀틀이었다. 죽어라 배를 박았다.



교육 전문가답게 담임선생님은 곧 사태를 파악하셨다. 자리에 맞는 사람을 고르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지하시었으며, 이윽고 사람을 자리에 맞게 만들어보겠다는 야심을 품으셨다. 수업 방법이 바뀌었다. 담임선생님의 교과는 국어였고, 국어는 주당 수업시수가 많아 매일 수업하는 과목이었고, 본인 수업 시간 중 절반은 교과 진도를 나가고 절반은 우리들의 발표로 채우기로 하셨다. 번호별로 3분 이상씩 앞에서 자유 주제로 발표했다. 한 반에 서른 명이 넘던 시절이었으니 한 번 발표하고 나면 한두 주 정도는 멍하니 앉아 친구들 발표를 관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으나 말 못 하는 반장은 발표 시간마다 앞에 세우셨다(두둥두둥). 항의도 용기가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라 곧 포기하고 발표 원고를 썼다. 저녁을 먹고 나면 연탄불 뜨끈한 아랫목에 엎드려 연습장을 뜯어서 원고를 썼다. 어느 날은 시간이 너무 남았고 어느 날은 시간이 너무 모자라서 3분에 적합한 분량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무 말이나 썼다.



막상 교탁 앞에 서면 뜯어온 연습장을 볼 여유가 없도록 떨었다. 시야도 뿌옇고 머릿속도 뿌옇고 도대체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 이 상황을 모면은 해야겠으니 아무 말이나 막 하고 들어가 앉았다. 하도 나가니까 아무 말의 재료마저 떨어져서 어느 날은 바퀴벌레 얘기도 한참 했다가 종내에는 어차피 앞에서 보지도 못하는 원고를 더는 쓰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교탁 앞에 가서 섰는데, 미리 써놓지 않아 원고도 없고, 할 말도 없고, 내게 관심도 없는 애들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가, 깨달았다. 쟤들은 나를 잡아먹지 않는구나. 잡아먹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쟤들이 날 미워할 것도 아닌데, 아무 말이나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없지 않나. 잘하려고 하지만 않으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은 아이들의 시선을 먹으며 살고 있다. 그동안 나는 짧게 강의도 하고, 학교의 큰 행사 사회도 맡고, 어린이영화제 사회를 보기도 했고, 독서골든벨대회 사회를 보기도 했으며, 무슨 지역 축제 무대에서는 노래도 부르면서, 내게 시선이 모이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걸 그때마다 깨닫는다. 어릴 적에 발표 한 번 하고 나면 수업 시간 내내 심장이 뛰던 건 너무 좋아서 그랬나 하는 이상한 추측도 한다.



발표를 잘한다는 칭찬을 여러 번 들었다. 절대, 아니다. 지금도 나는 앞에 나가면 원고가 안 보여서 아무 얘기나 한다. 타고나지 못하고도 발현되는 재능이라는 건 사람들 앞에서 부르는 트로트 같은 게 아닌가 싶다. 단체로 노래방에 가서 마이크를 잡아야 할 때가 오면 아직도 덜덜 떨며 노래를 부르는데, 목소리가 어찌나 떨리는지 바이브레이션을 잘한다며 칭찬을 듣는다. 그러므로 다음번에도 덜덜덜 떨면서 트로트를 또 불러본다. 취기 섞인 찬사가 돌아오고, 다음번엔 내게 그 노래를 청하는 분도 생긴다. 계속하다 보면 재능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다. 그만두지 않을 수 있는 힘이 후천적 재능이다.






그래도 춤은 도무지 계속 못 추겠는데(또 다른 후천적 재능 발굴 실패), 중 1때 그 담임선생님은 흐느적거리는 나를 기어코 수련회 무대까지 올리셨다(으악). 단지 널 사랑한다며 열심히 연습했던 H.O.T.의 캔디 안무를 아직도 기억한다. 반장 전용 사회화 프로그램을 가동하셨던 걸까. 덕분에 사람 구실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그때 친구들이랑 뒷담해서 죄송합니다. 수업하기 귀찮아서 발표 시키시는 줄 알았어요.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