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말자

메이저 14번 카드. 절제

by 시애

2017년 12월 2일, 말티즈 한 마리가 우리 가족의 삶에 들이닥쳤다. 갑자기 나타나 아빠 다리에 직립보행 포즈로 매달렸던 것이다. 자동차 전용 도로였다. 소변이 급해 차에서 내렸던 아빠는 다리에 붙은 조그만 생명체를 차마 도로에 떼버리지 못하고 집까지 안고 돌아오셨다. 두 주쯤 수소문했으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태어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셈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되었다. 그동안 한 번 짖지도 않고 숨죽이고 있던 강아지는 동물병원에 가는 차 안에서 내내 몸을 떨며 섧게 울었다. 괜찮아. 우리는 너를 버리려고 차에 태운 게 아니야. 아무리 등을 쓸어줘도 달랠 수가 없었다.



같이 살게 된 말티즈는 가족들의 애정을 듬뿍 먹고, 개망나니로 성장했다(개니까). 까탈스러웠다. 마음에 들지 않는 먹이는 입에 대지 않고 굶고 굶다가 토악질을 했다. 산책에 나서면 보이는 모든 개와 모든 새에게 기세등등하게 짖어댔다. 잠시라도 식구들이 안 보이면 카랑카랑하게 짖는 통에 혼자 두고 외출할 수가 없었다. 산책길에 어른 키 높이의 계단 아래로 냅다 뛰어내려서 기절한 적도 있다. 갑작스런 상황에 목줄을 놓치고 만 부모님이 기함하셨었지. 나와 남동생이 범생과 순둥이 조합이라 사춘기 반항에도 속 끓여본 적 없던 부모님이 뒤늦게 맞이한 시련이었다.






남매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 구성원들은 조용하고 꿋꿋하다. 경제적인 문제로 어릴 때부터 주말에만 볼 수 있었던 부모님께 나는 최선을 다해 ‘부모님 도움 없이도 잘 지내고 있음’을 어필했다. 주말마다 교실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들을 재잘재잘 떠들었고, 억지로 밥도 많이 먹었고, 항상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자식에게 부부싸움 한 번 보이지 않고 빈한한 시간을 버티셨다. 부모님은 남매에게 험한 소리 하신 적이 없고, 남매는 내가 중학생이 되던 해부터 한 번 다퉈본 적이 없다. 평화로운 가족이다.



평화로운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나는 병원에 갈 때마다 왜 이제야 왔느냐고 의사 선생님께 타박을 듣는 고얀 참을성을 장착한 어른으로 컸다. 매번 이를 악무는 바람에 제멋대로 자리 잡은 치아를 오랜 시간 교정해야 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런저런 일들에 웃어 보이며 잘 참아냈다. 오래 만났던 첫사랑과 헤어지고 나서도 엄마에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괜찮아.”



아빠가 암 선고를 받고서도 우리 가족은 평화로웠다. 믿을 수 없게 평화로웠다. 아무 문제없으니 너희들은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항암치료를 받으셨다. 괜찮다고 하셨다. 위를 아예 떼어냈다. 괜찮다고 웃으셨다. 서로의 걱정과 슬픔과 미안함을 알면서도 다 같이 모여 웃고 있으면, 숨이 막혔다.



메이저 아르카나 14번 카드의 이름은 ‘절제’다. 붉은 날개를 단 천사가 한 발을 물에 딛고 서서(엄청난 균형 감각!) 두 손에 든 잔의 물들을 공중에서 옮기고 있다(굉장한 염력!). 사실은 얼마나 힘들겠어. 그래도 흐트러지지 않고 평온한 표정을 유지하는 것이 절제다. 천사 뒤로 나 있는 길 끝에 번쩍이는 왕관이 보인다. 참고 참고 참으면 영광이 있으리라. 왕관을 쓰려는 자, 먼저 그 무게를 견뎌야 하리니.



해마다 아이들에게 너는 존재만으로도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부모님은 네가 어떤 모습이라도 다 사랑하신다고 말하면서, 정작 나는 내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자랑할 만한 딸이 되어 폐 끼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했다. 그러잖아도 무거운 부모님 어깨 위에 나까지 짐을 얹을 수 없었다. 내 감정은 꾹꾹 누르고, 부모님이 원하실 것 같은 포즈로 행동하고 말하려고 했다. 먹고 싶다, 갖고 싶다고 말한 적 없었고, 힘들다는 말도 해본 적 없다. 당신 걱정하지 말라셔서 걱정하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참고 참고 참았다.






그런데 이 작은 말티즈는 무엇도 참지 않았다. 캉캉 짖었고, 으르렁거렸고, 온몸을 던져 기쁨을 표현했고, 엉덩이를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자기감정을 자기가 책임지지 않는다니. 다른 사람을 탓하고 다른 사람에게 위로해 달라고 하다니. 심지어 온종일 생산적인 일이라곤 무엇도 하지 않고 민폐를 끼치면서 저렇게 당당하다니. 그런데 개난리(개니까)를 치며 개소리(개니까)를 해도 우리 가족은 말티즈를 사랑한다. 너무너무 사랑한다. 쓸모 있는 존재가 아니어도, 걱정을 끼쳐도 미움받지 않는구나. 하고 싶다고 말해도 되고, 싫다고 말해도 되는구나. 그래도 되는구나.



내 속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싹 그러모아 내다 버리고 싶다고 오래 생각했었다. 감정 자체를 느끼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설렘이 없으면 실망도 없고, 그러면 나는 덜 애쓰고도 더 잘 기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현관문을 열 때마다 펄쩍펄쩍 날뛰는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저렇게 열렬하게 기뻐할 수 있는 순간이 있는 삶이 더 가치 있지 않을까 싶어진다. 반대의 마음들을 감내해야 할지라도. 오만 가지 감정들, 조금만 덜 눌러볼까. 누리며 살아볼까.



물론 그런 생각을 몇 번 했다고 해서 단박에 내가 다정다감하고 의사 표현을 명확하게 하는 사람이 될 만큼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삼십 년 넘게 감정을 꾹꾹꾹 누르고 이를 악물며 살아온 마음의 습관이 일순간 교정될 리가. 그러나 조금 가벼워졌다. 씩씩하고 밝고 무탈한 딸, 그런 왕관의 무게를 버티지 않아도 된다잖아. 그래도 된다는 걸 보고 있잖아. 언제든 내가 괜찮지 않을 때가 오면 괜찮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게 되어서, 진짜로 괜찮아졌다. 믿는 구석이 생겼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