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21번 카드. 세계
배추흰나비의 애벌레를 키우고 있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는 《데미안》의 비유적인 문구가 애벌레에게는 실제 상황이다. 한때 자기 세계의 전부였던 알을 깨뜨리고 태어난 애벌레는 이내 알껍데기마저 모조리 먹어 치운다. 처음에는 알과 같은 색이었던 피부가 잎을 먹으며 잎의 색이 되어간다. 네 번의 허물을 벗으면서 부드러운 피부 아래로 딱딱한 껍질을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바깥쪽의 부드러운 피부를 벗겨내고 단단한 번데기가 된다. 이전의 세계를 부수는 것에도, 지금 딛고 선 곳을 흡수하고 성장하는 것에도, 다시 단단한 껍질을 만들어 자신을 가두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다.
나에게 가장 경이로운 지점은 번데기로 변한 직후다. 번데기 껍질 속에서 애벌레는 제 몸을 스스로 녹여 초록색 액체가 된다. 망설임 없이 최소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자신을 낱낱이 해체한다. 제가 뿜어낸 산성 용액으로 제 몸을 녹이면서 애벌레가 느끼는 것은 절망일까, 희망일까. 지금껏 쌓은 모든 것들을 기꺼이 놓아버리는 데 어느 만큼의 용기와 의지가 필요한 걸까.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초록색 액체는 유전 정보에 따라 재조립되어 완전히 새로운 개체로 거듭난다. 애벌레일 때와는 먹이도, 모습도 전혀 다른 나비가 되어 다시 껍질을 찢어버리고 세상에 나온다. 초록색 피부가 하얀색 날개로 바뀌는 과정은 볼 때마다 숭고하다. 자신을 스스로 완전히 허물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타로카드 78장 중 메이저 아르카나 22장을 번호대로 늘어놓으면 여행 이야기가 된다. 0번 카드 THE FOOL의 주인공이 긴 여행을 떠나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이다. 여행을 떠난 그는 길 위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배운 것들로 현실 세계에서 성공하게 된다(7번, 전차). 그러나 물질적인 성공이 삶의 전부가 아니다. 삶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10번, 운명의 수레바퀴) 주인공은 다시 내면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 자신만의 정의(11번, 정의)를 세우고 이전과는 다른 방향에서 세상을 보게 되면서(12번, 거꾸로 매달린 사람), 마침내 변화(13번, 죽음)를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비로소 자기 내면의 집착(15번, 악마)을 무너뜨리고(16번, 탑), 완전한 자신으로 새롭게 태어난다(21번, 세계).
메이저 아르카나의 마지막 카드인 21번 카드의 이름은 ‘THE WORLD’이다. 0번의 THE FOOL이 마침내 세계와 합일하였다. 가운데 사람의 다리 모양에 주목하면 12번 카드에서 매달려 고행하던 사람이 드디어 원하던 것을 이루었다고도 볼 수 있다. 영적 성장을 의미하는 보라색 천을 온몸에 감았다. 축하할 일이다. 10번 카드에서 공부 중이던 천사, 독수리, 사자, 황소도 공부를 마치고 모두 성장했다. 역시 축하할 일이다. 영광의 월계수가 붉은 리본으로 매듭지어졌다. 여행은 완성되었다.
애벌레를 보며 메이저 아르카나에 등장하는 여정을 생각한다. 안온한 알을 깨고 바깥 세계로 나온 애벌레, 애벌레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번데기 껍질을 준비하는 애벌레, 자신을 녹여 나비로 다시 태어난 애벌레.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이전의 자신을 완전히 무너뜨려야 한다. ‘죽음’과 ‘탑’의 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과정을 무서워하면 평생 애벌레로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을 몹시 무서워한다. 내 뼈와 근육과 체액을 감싼 피부처럼 기억과 아집과 습관을 둘러싼 경계를 잔뜩 쳐놓았다. 화상을 입으면 피부가 녹아 안의 것들이 흘러내리듯 내가 친 경계가 녹아 나의 아집이 흘러내리면 아플까 봐 두려웠다. 무엇에도 뜨거워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열기에 나의 경계가 녹지 않도록 열망과 열정이 있는 곳들을 피해 빙 둘러 갈 때가 많았다. 그런 길에는 변명과 핑계가 흔했고, 하나같이 ‘현실적으로’라고 쓰인 옷을 입고 있었다.
여전히 오동통한 애벌레로 사는 나를 본다. 책들을 ‘읽기만’ 한다고 선배에게 자주 혼이 났었다. 자신을 녹이는 시간이 너무 무서워서 잎을 먹어 치우기만 할 뿐 번데기 껍질을 만들지 않는 애벌레가 나다. 이래서야 살만 찌잖아. 그래, 나도 이제 낡은 고집을 모두 버리고 찬란한 나비로 거듭나기로 결심, 하면 아름답겠지만 실상은 내가 무슨 색깔의 나비가 되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마흔이 넘어서도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우선은 무슨 종류의 나비가 될지부터 정해야 몸을 녹여 재조립할 수 있겠지. 내 노력과 시간을 던질 ‘무언가’를 정하는 건 아직도 어렵다. 그걸 위해 놓아야 할 다른 것들이 벌써 아쉽거든. 이래서 여태껏 애벌레인 것이다. 기억과 아집과 습관을 하나도 놓지 못해서.
뭐, 우선은 애벌레로서 만족스럽게 살면서 나만의 나비 설계도를 천천히 찾아보는 수밖에 없지 않나. 섣불리 몸을 녹였다가 괴물로 재탄생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모기로 거듭나 다른 이들의 피를 빠느니 지금처럼 오래 자책하는 애벌레로 살겠다. 자책의 괴로움으로 꿈틀거리다 굳은살이 박이면 그게 번데기 껍질이 될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