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1번 카드. 단 하나의 생각
충동적으로 17km를 걷는 걷기 행사에 등록했다. 친구마저 등록시켰다. 저녁에 가만히 앉아 17km를 생각하다 짝지에게 물었다.
“17km를 걷는 데 얼마나 걸리지?”
짝지가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5시간 정도.”
응? 5시간이라고? 42.195km보다 훨씬 짧으니까 오래 안 걸리는 거 아니었어? (계산법이 이 모양) 시작도 하기 전에 덜컥 겁부터 났다. 힘들 거야. 엄청 힘들겠지. 내가 먼저 하자고 했으니 힘들다는 말도 못 꺼내고 지쳐서 걷다가 영혼까지 털릴 때쯤 주저앉게 될 거야. 물 먹은 걸레처럼 집에 돌아와 널브러지겠지. 주무르고 두드려가며 며칠을 앓을지도 몰라. 고행의 시간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쓰러질 때 장렬히 쓰러지더라도 최대한 오래 걸을 수 있을 만한 몸을 만들어 놓겠다는 핑계로 며칠 하던 스쿼트를 쉬었으나 허벅지 앞쪽은 계속 당겼다. 그 상태로 슬리퍼를 끌고 다니다 발에 물집이 생겼고, 스니커즈 뮬을 하루 신었더니 정강이 앞쪽 근육통이 시작되었다. 발톱을 깎다가는 오른쪽 세 번째 발톱을 빨간 살이 보이게 깎아 놓았다. 이런 바보가 있나! 학교 계단을 오를 때마다 맹렬하게 자기반성을 하는 며칠이었다.
내 다리 컨디션을 아랑곳하지 않고 행사 당일은 오고야 말았다. HP를 미리 소모해 버리지 않기 위해서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최후의 순간까지 뒹굴뒹굴했다. 느긋하게 점심을 만들어 먹으며 행사 장소까지 가는 길을 잠깐 떠올리다가... 급히 시계를 보았다. 아차. 걸리는 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지나치게 느작거렸다! 애초에 17km도 가늠할 줄 몰랐었던 수 감각의 소유자이니 어쩔 수 없나. 그래도 내가 나한테 자꾸 위기를 선사하면 어쩌겠다는 거지. 자체 제작 반전 스릴러에 머리카락이 쭈뼛 선 채로 버스에 올라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너무 꼭 맞게 도착할 것 같아. 먼저 등록하고 물건 받고 있어.’
‘나 지금 늦어서 택시. 생각보다 머네.’
참, 내 친구였지.
네이버 길 찾기에서 55분이 걸린다는 길을 40분 만에 도착했다. 버스 기사님께서 워프를 타신 건가 갸웃거리며 감사한 마음으로 내렸다. 코로나19와 관련된 모든 체크를 마치고(그렇다. 그 시기였다.) 간식과 기념품을 받고 나니 얼굴이 벌게진 친구가 도착했다. TV에서 보던 마라톤 출발 장면처럼 참가자들이 한꺼번에 걷기 시작할 줄 알았는데, 감염병 예방 문제로 각자 출발하라고 하였다.
왼쪽 계단으로 내려가시면 된다는 친절한 안내를 따라 계단을 내려간 직후, 이제부터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멍해졌다. 옆을 봤더니 친구도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급속도로 길을 잃다니. 노란 리본만 따라가면 된다던데,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이는 천으로 만들었는지 아무리 인상을 쓰고 거리를 노려봐도 리본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리본을 빵으로 만들어서 새들이 다 주워 먹은 건가. 이렇게 다섯 시간을 어떻게 걸어야 하나.
“난 전부 같이 출발해서 다른 사람 따라가면 될 줄 알았어.”
“나도.”
“NPC(안내하는 분들이 곳곳에서 NPC처럼 길을 알려주실 줄 알았다. 현실은...)도 엄청 많을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어떡하지?”
“여기 어디지?”
자기 복제 같은 소리를 주고받으며 무작정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 해도 일단 걸어야 했다. 걷다 보니 나와 같은 기념품을 가진 이들이 간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벽의 모기처럼 어디선가 나타나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는 신비한 존재들이었다. 그보다 더 신비한 건 옳은 길을 찾았다가도 다시 헤매기를 되풀이하는 게 분명한 우리의 길 찾기 능력이지만.
기세등등하던 햇빛이 사그라드는 걸 지켜보면서 걷고 걸었다. 어릴 때 갖고 놀던 마론인형이 떠올랐다. 등 뒤의 버튼을 누르면 낭랑한 목소리로, 안녕, 네 이름은 뭐니?, 우리 인형 놀이하고 놀까?, 오늘은 정말 재미있었어, 순서로 끝없이 말하는 인형이었다. 우리는 어쩌지, 여기 어디야, 저긴가, 아닌가, 맞겠지, 저기 사람 있다, 방금 있었는데 어디 갔지, 따위의 표현을 반복하며 걸었다.
그러느라 걷는 걸 그만둘 타이밍을 놓쳤다. 네 시간 반쯤 한껏 길을 헤매다 보니 끝까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도착지에 다다랐다. 기를 쓰고 도착한 게 아니라서인지 어깨와 다리도 아직 말랑말랑한 채였다. 도착점의 NPC들은 고생하셨다며 상냥하게 웃고는, 체온을 쟀다. 코로나19 시대의 환대와 함께 완보 기념 메달을 받아 드니 우습기 그지없었다. 처음부터 17km를 다 걸을 생각이 아니었다. 적당히 걸은 후 친구와 협상해 그만둘 생각이었다. ‘여기가 어디야’에만 골몰하고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걸을 수 있었다. 세상엔 그런 길도 있는 것이다. 처음이라 얼떨결에 주파해 버리고 만 길. 적당한 선을 몰라서 최선을 다해 걸어버리고 마는 길.
타로카드의 마이너 아르카나를 이루는 네 개의 원소 중 ‘칼’은 이성의 상징이다. 생각이고 판단이며 결정이기도 하다. 칼의 1번 카드에는 구름에서 솟아난 거대한 손이 커다란 칼을 힘차게 잡고 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구름에서 나온 손은 신이 주신 축복과 기회를 의미한다. 너무 많은 생각 앞에서 우리 마음이 얼마나 오래 서성이는지 생각해 보면 단 하나의 칼은 축복이다. 게다가 월계수와 올리브 잎이 드리워진 왕관을 약속하는 칼이다. 더할 나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자루의 칼, 일 인분의 생각이다. 우리는 자주 타인 몫의 생각이나 과거 또는 미래를 사는 내 몫의 생각까지 다 끌어안고 허둥거린다. 칼은 언제나 한 번에 하나씩만. 양손에 과도를 든 채로 과일을 깎거나 여러 개의 검을 동시에 들고 검도를 하려다가는 번번이 실패하기 십상이다. 칼을 미리 많이 품고 있으면 몰려오는 적들에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잘못하다 넘어지면 가슴에 품고 있던 칼들 탓에 내가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나를 찌를까 두렵다고 품고 있던 칼들을 죄다 밖으로 꺼내어 휘두르다간 옆에 있는 사람을 다치게 하기 딱 좋다.
그러니 생각도, 결정도, 판단도 한 번에 꼭 하나씩만. 여기가 어디지, 어디로 가지, 를 부지런히 생각하느라 자신을 책망할 틈이 없는 것만으로도 한 발짝 더 내디딜 힘이 생기더라. 그렇게 눈앞의 한 걸음만 생각하며 걷다 보면 얼떨결에 목표지점에 도착할지 모르지. 세상엔 그렇게 도달할 수 있는 길도 있는 법이고, 어쩌면 매일 생애 처음인 길을 걷는 우리 삶을 말랑한 어깨인 채로 건너는 방법도 그것일지 모른다.